아홉수 극복하기

프롤로그

by 웃자

올해 서른아홉에 아홉수는 아버지의 죽음과 코로나 시대의 재취업이라는 사나운 모습으로 찾아왔다. 억울했다. 평범하게 살았고 특별하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감당하기 힘들었. 앞으로 다가올 아홉수도 걱정되었다. 마흔아홉에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십대 직원들이 암투병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제부터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쉰아홉에 아이들은 독립해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대학생 때 나도 부모님께 의지했는데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예순아홉에 살아 숨쉬고 있을까. 죽음은 두렵지 않고 사후세계는 관심사가 아니지만 고통 없이 웰다잉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아홉수는 과거에도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다. 열아홉에 상경해서 하숙방에 틀어박혔다. 스물아홉에 뒤늦게 취업해서 직장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이어갔듯이 이번에도 어떻게든 극복하면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버지의 병간호를 돌아보고 문사철 문과생이 재취업해서 생존하는 이야기를 남긴다.

아홉 다음에는 영이다. 오늘은 어제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차갑게 식어서 아무런 말씀이 없었고 연기가 되어서 하늘로 가셨다.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본인도 가족도 재발 전이암을 항암제로 치료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당연히 끝까지 회복의 희망을 간직했다. 더이상 치료가 힘들어서 호스피스 병원에 가겠다고 말씀하신 다음날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마지막 며칠은 통증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은 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들은 그대로 남았다. 과연 나중에 나는 따뜻한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아버지는 평소에 공황장애로 고생했는데 중환자실 트라우마와 섬망 때문에 가족에게 비수를 꽂는 말씀을 많이 했다. 만약에 아버지처럼 몸과 마음이 아프면 누구라도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 사후에 생판 남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돌아보고 나의 죽음을 대비하고 싶다.

계속 죽음에 대한 책을 읽었다.

생전에 아버지는 깔끔해서 간병인을 견디지 못했다. 간병인도 아버지의 끝없는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결국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과 집에서 교대로 병수발을 들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조금씩 통장 잔고가 줄었다. 불안했다. 코로나 시대에 서른아홉 문사철 문과생이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대학교 졸업 후에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더많이 떨어질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합격해서 다음달부터 출근할 예정인데 면접관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동종 업계도 아니고 상경계 전공도 아니지만 경력이 신기해서 서류에서 통과했다고 말했다. 십수 년 전에 운좋게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는데 공과생의 무시를 받으며 공학개론을 공부하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던 기억이 났다. 회사가 기울면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녔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부를만한 경력을 쌓지 못해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면접관이 채용공고에 올렸던 부서가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일해도 좋겠다고 말해서 안도했다. 문사철 문과생의 생존기를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