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흔적만 남았다. 목소리와 얼굴은 동영상과 사진 속에서 여전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례는 치렀지만아직 보내드리지 못한 것 같았다. 지난 병수발 기록을 뒤적였다.죄송했다. 따뜻하게 위로를 드리지 못했고 차갑게 병수발을 들었다. 괴로웠다. 섬망과 통증으로 마음에 없는 말씀을 하셨을 때 어린 시절에 섭섭했던 일들을 들먹이며 원망했다. 망설였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싶었지만 기록은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와 보냈던 마지막 시간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병수발을 돌아보고 아버지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병원과 집에서 틈틈이 기록했는데 되도록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할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는 회복하실 거라고 믿어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저번주 토요일까지 온전하셨다. 다만 평소보다 많이 주무셨고 눈빛이 흐려서 걱정이 되었다. 동생은 기력이 조금 없으신 것 같지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동생이 볼 일을 보러 갔을 때 아버지는 영양제를 맞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 종합병원으로 가는데 유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당황해서 얼버무렸고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고 돌아왔다. 집에서 아버지는 기운을 차렸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하셨다. 다음날 아버지는 종합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했고 해열제를 맞았다. 동생은 아버지가 식사도 잘 드셨고 말씀도 잘하셨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다음날 아버지는 호흡곤란 때문에 구급차를 타고 동생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나는 짐을 싣고 운전해서 뒤따랐다.아산병원 응급실은 우리가 도착하기 10분 전에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폐쇄되었다. 어쩔 수 없이근처에 있는 다른 병원 응급실에 갔다. 여기도 대기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119와 여러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와달라고 전화했지만 사무적 말투로 매뉴얼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답변할 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채로 다섯 시간이 지났고 구급차에 비치한 산소가 떨어졌다. 응급실에 부탁해서 산소를 세 통이나 사용했다.
아버지가 의식을 회복하고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 보호자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가다가 응급실 근처에서 찍었다.
저녁 아홉시에 아산병원 응급실이 다시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라도 그곳에 갔는데 또다시 기다려야 한다면 더이상 아버지가 버티실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답답하다고 산소호흡기를 벗고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셨다. 아산병원 콜센터에 전화하니 보호자에게 응급실을 연결할 수 없으니까 의료진이 연락하면 응급실에 연결해 준다고 말했다. 당직 의사는 우리 병원 환자도 아니고 산소를 세 통이나 사용해서 더이상 산소를 줄 수 없으니까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비가 억수로 내렸다. 비에 젖은 채 고민했다. 동생은 여기서 기다리고 나는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사정을 설명하니 30분 내로 도착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동생은 구급차를 타고 날아왔다. 그렇게 아버지는 겨우 응급실에 들어가서 조치를 받았다. 하루나 이틀 일찍 서울에 왔으면 좋았을텐데 유서를 언급하셨을 때 차분하게 여쭈어 봤으면 좋았을텐데 후회가 몰려왔다.
사설 구급차 비용에 대한 법적 기준
응급실 앞에는 구급차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구급차에 누워서 순서를 기다렸다. 코로나 확진자는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로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럴때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구급차 창문을 닫으라고 큰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답답하다고 하소연했지만 공회전하는 구급차 에어컨은 미지근한 바람만 쏟아냈다.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구급차는 중환자를 싣고 응급실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아산병원 응급실 앞에서 동생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했을 때 옆에서 대기하던 모든 구급차들이 동시에 출발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응급실에 들어갔지만 아버지 뒤에서 기다렸던 중환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코로나로 죽는 사람보다 코로나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응급실 앞에서 사설 구급차 비용을 바로 결제했다. 시간이 지나고정신을 차렸을 때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바가지를 쓴 것 같았다. 씁쓸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이송처치료의 기준을 찾았다. 혹시라도나중에가족이나 친구가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면 사전에 첨부 별표를 기준으로 비용을 파악하면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