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아버지와 구급차를 타고 하염없이

by 웃자

새벽 다섯 시에 병원에서 양평으로 향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서울에서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양평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냈다. 한숨도 못자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면서 천천히 운전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라서 회복하실 거라고 예전처럼 같이 웃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어디에나 아버지의 흔적이 가득한데 아버지는 없었다. 짐을 정리하고 정산한 후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언제 중환자실에서 무슨 소식을 알려줄지 모르기 때문에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가까운 숙소를 찾았다. 환자와 보호자가 선호하는 호스텔에서 씻고 눈을 붙였다. 새벽에 곡소리가 들렸다. 곡소리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동생은 일어나서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숙소를 옮기자고 말했다. 그날 바로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로 옮겼는데 이번에는 이삼일에 한번씩 신음소리가 들렸다. 힘들었지만 곡소리보다 참을 만했다.

요양원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하루에 한번 전화로 아버지 상태를 간단히 설명했다. 전화는 새벽이나 아침에 왔다. 하루종일 전화 한통을 기다렸다. 의사가 알려주는 아버지 상태에 따라서 그날 하루가 달라졌다.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거나 눈과 손으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말을 들으면 희망 속에서 다음날 전화를 기다렸다. 회복하실 확률이 절반 정도라거나 호스피스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절망 속에서 다음날 전화를 기다렸다. 침대에 누워서 처지가 비슷한 환자와 보호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서 뒤척였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더라도 두 번 다시 기도삽관을 하지 않겠다는 환자의 글이 있었다. 응급실에서 아버지가 의식이 없어서 동의 없이 시술을 했는데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이 중환자실에서 기계호흡을 하고 각종 수액을 달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결국 돌아가셔서 후회한다는 보호자의 글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중환자실 면회가 금지되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레지던스

어둡고 좁은 숙소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하셔서 같이 지내기를 기도했다. 아니면 최소한 자식들에게 마지막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종교는 없지만 매일 기도했다. 텔레파시를 믿지는 않지만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힘내라고 마음으로 말했다. 답답하면 근처 공원에서 하염없이 걸었다. 점심밥은 숙소 식당에서 먹고 저녁밥은 배달시켜 먹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마트에서 속옷을 샀는데 결국 동생이 집에 가서 옷을 더 챙겨왔다. 하루종일 전화 한통을 기다리면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숙식비가 부담되기 시작했다. 병원 근처 숙소는 비싸고 장기체류해도 할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시간 내 거리에서 달방이 가능한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절반 가격으로 일주일 단위로 지낼 수 있는 레지던스를 구했다. 지하주차장이 넓고 호실마다 개별적으로 세탁기가 있어서 좋았다. 빌딩숲이 아니고 주변에 편의시설도 많고 사람사는 동네 같아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가 지방에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가면 레지던스에서 체류하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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