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병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주로 새벽에 잠들지 못할 때 말씀하셨다. 예전에도 자주 말씀하셨던 것이라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고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다. 가난이 싫었다. 군대에서 월남 파병을 자원했다. 제대 후에 파병 수당으로 부모와 형제를 위해서 작은 집을 마련했다. 결혼해서 아이들이 태어났고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일했다. 혼자서 부모와 형제를 돕고 처자식을 부양해야 했다. 무거운 어깨짐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유가 없었다. 회사에서 밤새 일하느라 귀가하지 못했다. 점점 처자식과 멀어졌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가끔씩 아이들과 외식하고 여행을 떠났다. 손녀가 태어났고 전원주택을 마련해서 가족들과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평생 고생만 하셨고 병들고 늙어서 마지막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할아버지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쇄업을 하셨는데 수완과 인복이 좋았다. 안타깝게도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온가족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다.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았고 두번째 부인을 들였다. 어느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갈비뼈를 비닐 봉지에 한가득 담아서 왔는데 할머니가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부터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동네 절에 젊은 중이 살았는데 소년이었던 아버지의 관상을 보더니 말년에 가서야 밥술이나 먹겠다고 말했다. 안그래도 가난 때문에 힘든데 악담을 들은 것 같아서 크게 싸웠다. 그만큼 가난은 지긋지긋했다. 군대에서도 배가 고파서 밥통을 훔쳐서 배가 터지도록 먹다가 숨이 막히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아버지는 똑같은 이야기를 유머를 섞어서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냉담하게 할아버지가 너무 싫었다고 토로했다.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동료들이 죽고 다치는 아수라장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동안 자세한 말씀을 하지 않았고 여쭈어 보지도 않았다. 언젠가 팀 오브라이언의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읽으면서 아버지는 머나먼 그곳에서 무엇을 품에 간직하고 살아남았을까 궁금했다. 연인의 사진, 가족의 편지, 미래의 희망,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두운 병실에서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는 특별히 가지고 다닌 것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자원했는데 후방 부대라서 지뢰만 조심하면 위험하지 않았고 제대 후에 가족을 위해서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예상과는 달라서 당황했다. 지옥의 묵시록, 람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영화를 보면서 만약에 내가 참전했다면 아마도 가족 사진과 함께 베트남에서 죽었을 것 같다고 상상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아버지의 파병 수당으로 마련했던 집을 큰아버지가 자기 명의로 변경해서 팔았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