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

아버지와 구급차를 타고 하염없이

by 웃자

아버지는 구급차를 타기 전부터 혼잣말을 하셨다. 상황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셨고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부동산 사기꾼에 대한 말을 반복했다. 공인중개사가 집값을 깎아주기로 했는데 뒤늦게 제값을 모두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호흡이 괜찮은지 물어봐도 부동산 사기꾼 이야기를 하셨고 느닷없이 산소호흡기를 벗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구급차를 타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낯선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 말씀대로 동네 병원에서 영양제와 해열제를 맞지 말고 아들이 나서서 바로 서울로 갔어야 했는데 후회가 몰려왔다. 아버지는 전원주택을 마련해서 가족과 노후를 보내는 꿈을 꾸었다. 혼자서 혹은 아들과 함께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배산임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마음에 드는 곳은 너무 비싸고 가격이 적절한 곳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마도 구급차를 타기 며칠 전에 구경했던 전원주택이 마음에 들었는데 부동산에서 구두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급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다.

섬망은 중환자실에서 나온 후로 점점 악화되었다. 짜증과 욕설이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작전이나 음모를 꾸미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아들이 아버지를 병원에 팔아서 장기를 적출했고 고문을 했다는 음모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간다는 음모도 있었다. 아버지는 병상 반경 2미터를 벗어나지 말라고 말했다. 병실에서 잠시 나가서 식당, 매점, 화장실에 가면 5분 간격으로 빨리 오라고 전화했다. 만약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온갖 곳에 연락해서 아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들은 병실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잠을 설쳤다. 아버지는 1억원을 주치의에게 건네고 퇴원하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퇴원해서 지리산을 구경하고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가족들과 식사하고 싶다고 울면서 말씀하셨다. 회사 직원과 거래처 사장에게 5천만원씩 들고 오라고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놀라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봤다. 아들은 사정을 설명하고 아버지 비위를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증상은 조금씩 나아졌다. 아버지가 새벽에 잠들지 못했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셨다.

섬망은 기력이 많이 떨어지거나 낯선 곳에 낯선 사람과 있으면 생길 수 있다고 의사가 설명했다. 그리고 보호자가 환자와 일반적인 대화를 하면 도움이 된다고 위로했다. 친절한 설명과 따뜻한 위로는 섬망 증상 앞에서 무력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보냈다고 아들을 원망했고 죽더라도 두 번 다시 중환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섬망에 시달리며 내뱉었던 험한 말을 떠올리면 누구라도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 것도 몰랐다. 의식은 희미했고 청각과 촉각으로 주변을 탐지했다. 누군가 죽어가는 신음과 누군가를 죽이는 것 같은 날카로운 기계음이 끊이지 않았다. 몸을 구속하는 질긴 끈은 살을 파먹었다. 눈을 뜰 수 없었지만 창백한 빛이 쉴 새 없이 눈꺼풀을 파고 들었다. 목구멍으로 축축한 바람이 강제로 들어왔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목이 말랐다. 물 한모금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불구덩이가 타올라서 몸 전체를 삼켰다. 모든 것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음에서 돌아왔지만 섬망 때문에 본인도 가족도 엄청난 고통에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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