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하지 맙시다. 한국말은 일단 끝까지 들어봐야....
시벌?
쉬뷀?
쓰벌?
학교를 파하고 부리나케 책상 위에 학원 가방을 내던지는 아이.
온갖 과제며 프린트물을 펼치고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과제처리를 한다.
바삐 놀리는 손과 함께 리듬 맞춰 아이의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A줌마는 어지러운 광경보다 귀에 꽂히는 비속어에 관심이 많다.
언짢은 일이 있는지 싶어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지켜보니 시선을 돌리고는 화들짝 놀랜다.
"오해하지 마, 오해야 오해!! 학원쌤이 일만 SHOVEL의 법칙이라고,
일만 번 시발! 아니 삽질(Shovel)을 해야 갓생을 살 수 있대서 아하하하"
"일만 번, 씨발을 외치고 있는 중은 아니었고?'
";;;;"
일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
-K. Anders Ericsson-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으로
성공의 척도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흔히 인용되는 법칙이다.
1993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이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지만 정작 대중에게 이를 알린 건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그는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에릭슨의 연구를 인용,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1만 시간 가늠해 보기
요약하자면 전문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훈련의 결과라는 것인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마추어 연주자의 결정적 차이를 연주 시간에서 찾으며
우수한 집단일수록 그 시간이 1만 시간에 가깝더라는 것이다.
국민 스포츠 스타로 주로 언급되는 손흥민, 김연아 등의 사례를 이야기할 때도 꼭 '일만 시간의 법칙'이
종종 인용되곤 하는데 너무나 당연한 글 뒤에 세트처럼 따라붙는 무슨 무슨 법칙을 보면
글이란 건 꼭 누군가의 도장을 꽝 찍어야 믿을 만해 지는가 보다 싶다.
돌아가 이 '일만 시간의 법칙'은 타고난 유전적 능력이나 환경(가정환경/경제력유무/길잡이유무 등)이
무시되고, 창의력이 관건인 분야에선 영 맥을 못 추는지 분야별 편차가 존재한다는데서 비판을 받는다.
단순한 시간 누적이 아닌 의도적 훈련을 전제조건으로 삼았으니
무작정 일만 시간 도장 깨기를 시작한 분이 계시다면 다시 한번 점검을 추천한다.
'당연한 말+법칙'의 조합에 이어 얼마 전 재미난 비유를 발견했다.
대치동 점집이라는 어느 논술 학원의 테스트 결과 설명회에서다.
아이들의 두뇌성향을 검사 결과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눠 제공하는데
완전우뇌/우뇌/좌뇌/완전좌뇌 정도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여기서 우뇌와 좌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빗자루'와 '삽'을 예로 든다.
우뇌의 정보처리방식은 마치 '빗자루'의 비질과 같다는 것이다.
우뇌는 시야가 광범위해 넓은 분야의 정보를 마치 비질하듯 빠르게 모으는 반면
좌뇌는 마치 삽질하듯 정보를 처리한다. 전체를 보기보다 한 곳을 집중적으로 깊게 파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만 시간의 법칙은 한 곳을 집중적으로 깊게 파는데 유리하게 설계된 '뇌'를 탑재한
좌뇌형 인간에게 효과적인 것 아닌가. 여러모로 우뇌형 인간에게 가혹한 처사다.
법칙 따위도 비껴가는 뇌라니.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의 책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에서도 '일만 시간의 법칙'과
상통하는 다양한 업적을 써 내려간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을 증명하듯 열거한다.
그 중에서도 『백이전』이라는 책을 1억 1만 3천번 읽은 독서광 김득신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일만시간 그 이상의 독서광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을 제치고 완전한 책읽기 그랜드 마스터로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졌으니 1993년에야 미국 교수에게 명명된 덕력을 시간을 거슬러 확실히 증명한 셈이다.
이쯤에서 빗자루를 한 손에 쥐고, 광활한 대지를 향해 일만 번의 비질을 즐겁게 해나갈
우뇌를 위해 A줌마가 헌시한다.
나는 깊게 파지 못한다.
대신 넓게 훑는다.
삽을 든 자들은 묵묵히 땅을 판다.
한 구역을 정해 깊이 또 깊이,
결국 땅 밑 어딘가에서 금맥을 캔다. 그건 대단한 일이다.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처럼 빗자루를 든 자는 어떠한가.
나는 깊이보단 넓이를 본다. 방향은 계속 바뀌고, 호기심은 주체되지 않는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고, 종종 흥미가 식는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길목을 찾는다.
다른 이가 아직 눈길 주지 않은 영역을 슬쩍 먼저 지나간다.
나는 가끔 ‘가볍다’는 말을 듣고,
‘산만하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정보를 모으고, 연결하고, 확산시킨다.
나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창의성의 불씨를 흔든다.
나는 빗자루형 인간이다.
깊이 대신 넓이로 세상을 읽는다.
내 방식도 하나의 방식이라 믿는다.
그러니 부디 불광불급(不狂不及)은 아닐지언정
다재다능(多才多能)함으로 이 세상 이롭게 할 것이니
우뇌형 인간이게도 살아갈 자리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