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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Apr 19. 2021

나의 동료들

내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권하윤 작가님께 연락드린 건 재작년 초였다. 작품을 혼자 좋아하다 <보통의 감상>을 기획하며 용기 내 연락한 덕분에 작가님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쓴다는 것도 기뻤는데, 마침 작가님도 그 글을 좋아해 주시며 <보통의 감상>에 실린 글을 번역해 해외에 작업을 소개할 때 쓰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그 번역은, 정말 오랫동안 내 글을 읽어준 사랑하는 친구가 맡았다. 친구가 보내온 번역본을 살펴보다 괜히 찡했다. 수없이 겹친 인연과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글자 하나가 벅차고 소중했다.

대학 때 일이었다. 학교 앞 카페에서 옆 테이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잘은 모르지만 각자 어떤 전문가인 동시에 친한 친구로 보였다. 친구들과 나는, 나중에 우리도 저렇게 멋진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얘기를 나눴다.

얼마 전 근황을 나누던 중 누군가, 작가님 곁엔 어떻게 그런 멋진 친구가 많냐고 했다. 오래전 카페에서와 달리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처음부터 멋진 친구를 사귄 게 아니라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낸 친구들이 어느새 그리 된 거라고. 그래서 지금 내 앞에 앉은 당신들이 계속해서 좋은 친구로 지내며 각자 알아서 잘 살면 어느 날 서로에게 그런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 거라고 말했다. 멋진 친구는 갑자기 새로 사귀는 게 아니라고.

정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 친구들은 각자 성장했고, 의심 없이 일을 맡기거나 함께 꾸릴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일하며 만난 동료들도 쑥쑥 자라나 자꾸 저만치 나아가거나, 곁에 있던 나까지 멀리 데려간다. 단지 친구나 아는 사이라서 함께 일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들이 건너온 시간을, 거기서 쌓인 실력을 알고, 그걸 믿을 수 있기에 함께 일한다.

우연이 아니다. 모두 멈추지 않고 일하고 작업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놓고 자기만의 세계를 성실히 쌓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생생히 짐작한다.

엊그제 만난 후배는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신작으로 꽉 채운 도록을 건넸다. 작년에 우린 십 년 만에 만났고, 시간이 무색하게 오늘의 이야기와 내일의 계획을 나눴다. 그리고 그는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단단하고 알차게 채운 결과물을 가지고 내 앞에 나타났다. 역시나 만나지 않았어도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갔다.


우리가 삼십 대의 작가와 비평가로 다시 만날 줄 상상 못 했던 것처럼, 언젠가 또 상상치 못한 시간을 쌓아 서로를 놀라게 할지 모른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친구의 작업에 대해 써보고 싶다 생각했다.

또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의 감상>을 낸 선드리프레스는 나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각자 작가로서,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서 우리의 콘텐츠를 시도하기 위해 세운 출판사다. 누가 그랬다. 어떻게 어릴 때 친구와 그리 오랫동안 가까이 만나고 심지어 함께 일하냐고. 그게 사실.. 우리도 잘 모르겠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같이 일하려 노력한 게 아니라 그저 친구로 지내며 각자 열심히 살다 모였을 뿐이다.

우리는 작년에 첫 책을 냈고, 출판업이 처음이라 좌충우돌했지만 소정의 성과를 이뤘고, 오늘은 내 책을 계약하는 동시에 다른 작가의 책도 계약했다. 나는 올해 내 책 2권을 쓰는 동시에 타인의 책을 기획, 편집하는 일에 새롭게 도전하게 됐다. 내 글을 누구보다 믿어주는 친구 덕분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믿는 그 친구의 실력을 믿기에 다시 나를 믿는다. 이제 우린 조금 더 큰 꿈을 조심스럽게 꾸고 있다. 지금은 김칫국이라며 웃지만, 어떤 날엔 가능할 거라 믿는다. 우리는 서로 덕분에 더 힘을 낼 것이므로.

혼자 일한다 생각했지만 사실 책상 앞에서 혼자일 뿐, 같이 성장하는 친구나 동료가 늘 곁에 있었다. 나 혼자선 한계가 있지만, 자기 세계를 굳건히 이룬 타인과 교류하며 내 세계도 한 뼘 더 넓어진다. 다른 노력 없이 그 친구를 안다는 것만으로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많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도 아껴야지. 혹여 스쳐가는 사이라도, 돌고 돌아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므로, 그때 서로가 서로이기 때문에 더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지. 타인이 내게 그랬듯이, 나도 타인의 세계를 더 넓혀주고, 누군가의 등 뒤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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