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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pr 08. 2024

무언가를 시작할 이유

행복하지도불행하지도 않은 밋밋한그 일상 어딘가에서 그림을 다시 시작한이유


   

13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태어나고 크고 작은 일들과 웃음과 슬픔이 있었다.     

틈틈이 아이공부를 봐줘야 했고 주말에도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 주말에 아이들과 어디든 나가야 했다.     


그날들은 문득 즐거웠고 문득 불행했다.     


어느 날부턴가 매일 하던 그 일이 의미가 없었고

즐겁지가 않았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매일매일 끼니와 육아에 충실하며 지낸 시간들에 복수라도 하듯이 나에겐 크게 번이 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는 있었지만 그림을 조금씩 그리려다가도 아기였던

 아이들이 울거나 아프거나 하는 쉴틈 없는 시간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뭐라도 그려볼까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나는 서서히 지쳐갔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됐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렸던 그 시간에는 늘 내 손이 많이 필요했고, 주말마다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 나의 육아는

 연중무휴 계속됐다.


독박육아의 시간들이 이제 와서 생각해 봐도 고되긴 했지만 그 시간들에 대한 특별한 억울함은 없다.


남편도 독박 가장이니 우리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옴팡지게 치열한 그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고 큰아이가 초등에 들어갈 무렵

책장 속에 숨겨둔 예전에 나의 그림들을 꺼내서 보고 있었다.


“엄마, 예전에 그린 그림들 재밌는데, 이젠 그림일기 안 그려요?”     


그 순간 머리가 띵했다.     


“아. 그게... 예전그림을 어떻게 찾았네?”

라는 말로 둘러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신없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문득문득 내 안에 공허하고 불행한 감정들을 때때로 마주해야 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었지만 그 어떤 것도 시작하기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을 시작할 때 망설인다는 것은 그것을 하기에 내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때문일 거다.


그런 계산으로 할까 말까 하는 머뭇거림은 3년이란 시간을 우유부단하게 고민하게 했다.     


 내 마음이 공허할 때면 동네 아이친구 엄마들과 분주한 약속을 잡으면서 마음속의 불안함을 떨쳐내고도 싶었다.


그렇게 현재의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 날이면 집에 와서는

또다시 뻥 뚫린 마음이 되곤 했다.          




주부로 살면서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을 핑계이유는 999가지가 되었으리라.     


애들까지 키우면서 어떻게 다른 일을 해?

그러면 집안일은 어떡하고.?

그러지 않아도 바쁘잖아!

  

주부로 살면서 아무도 나에게 그림을 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만화를 그리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힘내서 함께 해보자는 이가 없어서 더 목마름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되는 999가지의 핑계를 댈 수 있는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나의 무력감이 하늘을 치 솥을 무렵,

난 무엇을 더 간절히 하고 싶었다.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쉬었던 탓에 그림도 그리기가 두렵고 어떤 것도 해보기가 겁이 났다.     


할까 말까 해볼까 말까 하는 고민만 몇 년을 하면서 보내던 어느 날.     


책장에서 오래전에 썼던 드로잉북과 물감이 보였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서였을.

그날의 난 무언가를 그리고 기록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너무 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스케치북에 뭐라도 끄적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무언가를 하면서 설레던 적이 정말 얼마만인지 가슴깊이 뜨거워짐을 느꼈었다.     


시작하는 게 힘든 거였는데...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오랜 경력단절의 주부가 무언가를 새롭게 다시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주부로 오랜 시간 있다 보니까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필요한 것이

내게 그만한 대가를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가성비 가득 찬 마음.


그런 계산들이 많아지니까 더 시작하기가 주저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내일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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