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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랑 Nov 03. 2024

나쁜 선생

영주와 노숙자 2




나쁜 선생


"해인아, 오늘 숙제 정말 잘했어!"

김현수 선생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해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우리 해인이, 언제나 성실하네."


해인은 쑥스러워하며 웃음을 지었고, 나래와 환기 역시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김 선생은 그들에게만 들릴 듯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희 아버지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려면,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철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같은 광경을 목격해 왔다. 김 선생은 아파트 아이들 앞에서만 유난히 다정한 얼굴을 보였고, 그들의 웃음에는 다분히 편애와 특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던 중, 동진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저런 선생님이 공평하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이었나 봐. 우리 같은 애들은 그냥 안중에도 없는 거지."


철수도 조용히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리에겐 따뜻한 미소는커녕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잖아."


그들 곁을 지나가던 김 선생의 눈빛이 그 순간 차갑게 번쩍였다. 그는 마치 그들의 속삭임을 들었다는 듯, 냉랭한 눈길을 던졌다.


"철수, 동진. 수업 준비나 해라. 괜히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 말에 아이들은 움츠려 들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른거리는 서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김 선생의 친절은 분명 다정해 보였지만, 그것이 전해지는 대상이 선택된 사람들에 한정된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김현수 선생의 차별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집이 가난한 영주나 동진, 길수는 수업 시간에 늘 뒷자리에 배정되었고, 숙제를 조금이라도 못 해오면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그보다 더 어려운 형편의 만호, 상문, 지윤, 용수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실 앞에 불려 나가 손바닥을 맞거나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자란 노자, 병준, 준수에게 김 선생이 어떻게 대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너희 같은 애들은 참 가르치기 힘들어, "

김 선생은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한 번씩 말했다. 그의 말은 마치 그들의 존재 자체를 탓하는 듯한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다.


수업 중에도 김 선생은 고아원 출신인 병준을 쏘아보며,

"너, 왜 그렇게 멍청한 거냐? 고아원에서 뭐 배운 게 없나?"라고 비아냥거렸다.


병준은 그 말에 눈을 감으며 속으로 삼켜낸 울음을 참아냈다. 준수는 머리를 숙인 채 침묵했지만, 침묵 속에는 두려움과 수치심이 뒤엉켜 있었다.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들도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위한 보호망도, 손을 내밀어줄 사람도 없는 그들에겐 김현수 선생의 편견 어린 시선과 폭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른 나이에 그들은 세상의 불공평함과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속에 남은 상처는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결코 쉽게 아물지 않을 듯했다.




특히 어린이 회장인 환기에게는 노골적으로 엄마가 왜 학교에 요즘 안 오냐고 다그치며 환기에게 트집을 잡아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김현수 선생은 특히 어린이 회장인 환기에게 더욱 노골적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환기야, 요즘 네 엄마는 왜 학교에 안 오시냐? 학교 행사에 참석도 안 하고… 그런 부모 밑에서 네가 뭘 배울 수 있겠니?"


그의 말은 비꼬는 듯했고, 환기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환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수치심이 뒤엉켜 가슴을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들 앞에서 그의 가정 상황이 폭로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그의 집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가정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질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김현수 선생은 환기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너 같은 애가 무슨 회장이냐?"


그는 환기 작은 실수에도 호통을 치며 체벌을 가했다. 교실 안에는 침묵이 가득했고,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환기의 얼굴에는 어른스러워 보이던 흔적이 사라지고, 그저 상처받은 어린 소년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환기는 속으로 밀려오는 울음을 억누르며, 자신이 지켜야 할 자존심과 무너져가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이 남아 있었고, 불꽃은 꺼져가는 가정의 빛과 함께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영주와 노숙자 2


영주와 노숙자는 마침내 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고,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며 당당히 사랑을 표현했다. 어느 날, 영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그리고… 함께 새롭게 시작해 보자."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약속은 사랑의 맹세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영주가 오랜 세월 얽혀 있던 조직과의 끈을 완전히 끊고, 그녀와 함께 평온한 삶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의 손에 닿은 그녀의 온기가, 이제는 그를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다.


노숙자는 그의 결심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야, 나도…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을 그려보았다. 길은 험난할지라도, 이제는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결혼을 약속한 그 순간, 그들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었고, 함께 문을 넘어설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선택한 새로운 길은 생각만큼 평탄하지 않았다. 영주가 조직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자, 조직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특히 동진이 가장 먼저 영주를 위협하고 나섰다. 어릴 적부터 반장의 그늘 속에 가려 살아온 동진에게 영주는 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그의 마음속에 쌓인 열등감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왜곡되었고, 이제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둠으로 변해 있었다.


"너 혼자만 잘 나가려는 거야?"

동진은 영주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숙자와 결혼해서 새 삶을 살겠다? 네가 무슨 권리로 그런 행복을 차지해?"


영주는 흔들림 없이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동진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그의 말끝에는 질투와 분노가 스며 있었고, 노숙자를 향한 감정은 더욱더 삐뚤어져 갔다.


"너와 그녀가 함께라니… 난 그걸 두고 볼 수 없어."

동진은 이를 악물며 영주에게 협박을 퍼부었다.


"나도 잃을 건 없어. 네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건드릴지도 몰라."


영주는 순간 그의 위협 속에서 어릴 적 함께 자라온 동진이 아닌, 낯선 이의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넘을 수 없는 골이 생겨 있었고, 골은 동진의 뒤틀린 감정으로 인해 더 깊어졌다. 조직의 어둠 속에 갇힌 동진은 이제 영주에게 있어 단순한 적이 아닌, 자신의 사랑과 새로운 시작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로 다가왔다.




“네가 이렇게 쉽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동진은 비웃음을 머금고 영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번뜩였고, 그 안에는 이미 위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구였던 동진은 이제 영주에게 더 이상 우정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오직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잃어버린 자존심과 무너진 과거를 되찾으려는 복수심에 휩싸여 있었다.


영주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동진아,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우린… 예전에는 친구였잖아.”


동진은 조롱하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친구? 그런 감상에 젖어 있는 건 네 팔자야, 영주야. 나는 너와 달라. 나는 여기서 벗어날 생각 없어. 그리고 네가 떠나려는 것만으로도 내 모든 걸 빼앗은 기분이라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억눌렸던 감정과 왜곡된 질투가 스며들어 있었다. 영주는 더 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음을 느끼며,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진의 복수심과 조직에 대한 집착은 이제 그를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끌고 있었고, 그 길 위에서 그들은 친구가 아닌 서로의 갈 길을 막아서는 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고, 더 이상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해운대에 작은 과일 가게를 열고 조용히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곳은 단순한 생계의 터전이 아니었다. 그 과일 가게는 그와 노숙자에게 있어 희망의 빛과 같은 것이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가게에는 언제나 신선한 과일의 향기가 가득했고, 손님들과의 소소한 대화 속에서 영주는 묵직한 평온함을 느꼈다.


“사장님, 오늘도 좋은 과일 있나요?”라는 손님의 물음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은 달콤한 사과가 들어왔어요. 하나 맛보실래요?”


그런 날들 속에서 영주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노숙자와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 가게를 꾸미는 작은 일들, 그리고 사람들의 따스한 인사까지. 이 모든 것이 영주에게는 새로워진 삶의 의미를 채워갔다. 그가 이제 추구하는 것은 화려함이나 거대한 꿈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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