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선생의 악행은 점점 더 뻔뻔해졌다.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시험 성적을 조작하고, 학부모들에게 은밀히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나래의 엄마를 조용히 불러 말했다.
“나래 성적이 조금만 더 오른다면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에 따른 보답이 있어야겠지만요.”
나래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며칠 후, 김현수는 시험지를 미리 손에 쥔 채 나래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 채 진행된 이 거래로, 나래는 시험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중위권에 머물렀던 나래가 갑자기 부반장인 철수와 비슷한 최상위권으로 급부상한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나래의 성적이 급격히 오른 것에 대해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철수는 나래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너… 정말 이번 시험 준비 많이 했나 봐?”
나래는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운이 좋았나 봐.”
그녀의 대답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김현수 선생의 어두운 비밀을 알지 못했다. 그저 그의 미소 뒤에 감춰진 탐욕과 부패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래의 성적 상승을 둘러싼 의심이 조용히 퍼져 나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중간권이었던 나래가 갑자기 상위권에 올랐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는 쉽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교실 곳곳에서 속삭임이 이어졌고, 몇몇은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나래가 이번 시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몰라. 우리가 나래를 의심할 게 아니라, 다 같이 축하해 주는 게 맞지 않겠어?”
반장의 말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그의 말 한마디가 교실 안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바꾸었고, 나래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날 이후로 나래의 마음속에는 반장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커져갔다. 그의 따뜻한 배려와 흔들림 없는 믿음은 나래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그녀는 반장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 나래에게 반장은 이제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되었고, 그의 격려는 그녀에게 새로운 힘이 되었다.
김현수 선생의 성적 조작은 점점 대담해졌다. 이번에는 아파트에 사는 해인의 가족이 그의 표적이 되었다. 해인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큰 안과를 운영하는 의사였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이었다. 김현수는 이러한 배경을 노리고, 해인의 엄마에게 접근해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다.
“해인이가 더 좋은 성적을 받게 하고 싶으시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인의 엄마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김현수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액의 돈을 받은 김현수는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해인의 시험지를 직접 교체하는 방법으로 성적을 조작했다. 철저하게 시험지를 바꾸고 점수를 매긴 후, 해인은 마치 노력한 결과인 양 높은 점수를 받아 최상위권에 올랐다.
해인의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하자,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은근한 의문과 수군거림이 이어졌지만, 김현수 선생의 영향력 아래 누구도 쉽게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해인의 부모는 결과에 만족하며 김현수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김현수는 더 기세등등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악행은 이제 교실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도덕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래와 해인의 성적이 갑작스럽게 상승하면서, 강호국민학교의 우등생 구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원래 반장과 부반장 철수, 그리고 현주가 이끌던 선두 그룹에 나래와 해인이 합류하게 되면서, 교실은 다섯 명의 우등생이 경쟁하는 '5파전'의 구도로 흘러갔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 다섯 명을 두고 흥미 어린 시선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반장과 부반장 철수는 갑자기 뛰어오른 나래와 해인의 성적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표면적으로는 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성적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묵묵히 경쟁을 이어갔다.
현주는 변화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나래와 해인의 급부상이 불편했다. 그녀는 철수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갑자기 둘 다 성적이 올랐다니 이상하지 않아?”
철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신중히 답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 길이 있어. 흔들리지 말자.”
이렇게 다섯 명의 우등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며 경쟁구도를 이어갔다. 교실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과 함께, 누가 진정한 1등으로 남을지 모르는 흥미로운 전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영주와 노숙자3
노숙자는 마침내 술집을 그만두고, 영주와 함께 작은 과일 가게를 꾸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밤마다 어둠 속에서 일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젠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신선한 과일을 다듬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들이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특별한 일 없이 소박했지만, 평범함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스함은 두 사람에게 더없이 큰 위안이 되었다.
가게는 작고 아담했지만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에는 정신없이 바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영주는 노숙자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우리, 힘내자!"
노숙자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응, 영주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작은 가게 안에서 바쁜 하루를 마치고 나면, 영주와 노숙자는 생계 이상의 무언가를 함께 이루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의 과일 가게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행복의 공간이었고, 함께 일구어가는 삶의 의미를 매일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었다.
노숙자가 힘겹게 무거운 과일 상자를 들고 있을 때면, 영주는 어김없이 다가와 웃으며 무게를 함께 나눴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노숙자는 짧은 숨을 고르며 영주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얼굴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지곤 했다.
“우린 잘하고 있어, 그렇지?”
노숙자가 그를 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답했다.
“응,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건 우리만의 시작이잖아. 작은 가게지만, 여기서부터 더 나아갈 수 있을 거야.”
그들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작은 과일 가게는 일터가 아닌, 두 사람의 꿈과 희망이 자라나는 공간이 되었다. 무거운 상자 속에도, 긴 하루의 피로 속에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응원의 마음이 스며들었고, 그로 인해 가게는 작은 빛과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쉽지 않았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고, 손에 배어드는 과일즙을 씻어내며, 고단한 시간을 이어갔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행복이 다가올 때마다 두 사람은 큰 위로를 느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그 안에서 조금씩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과일을 손질하며 손끝에 묻은 달콤한 즙, 가게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과일 향은 이제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일의 흔적이 아니라, 함께 나눈 시간의 향기였고, 두 사람을 잇는 무언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피곤한 날에도, 지친 몸으로 가게 문을 닫을 때에도, 향기와 감촉은 그들에게 작은 미소와 따스함을 선물해 주었다.그들의 삶은 더없이 소박했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위한 진심과 평범한 행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평온한 행복을 지켜보는 병준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는 여전히 노숙자를 사랑했다. 사랑은 시간과 함께 깊어졌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그녀가 영주와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병준은 알 수 없는 씁쓸함과 아쉬움이 가슴속을 휘저었다.
한참 동안 병준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마음속갈등과 고뇌를 견뎌야 했다. 결국,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로 결심했다. 감정을 붙들고 있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난 그저, 멀리서 지켜볼게,”
병준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들의 삶에 더 이상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물러서 있는 것이었다. 그가 품었던 사랑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사랑을 두 사람을 위한 축복으로 바꾸려 했다.
병준은 언젠가 자신도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멀리서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았다. 가끔 그들 앞을 지나칠 때면, 병준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고, 미소 뒤에는 한때 자신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뜨거운 감정을 눌러 담은 고요한 체념이 있었다.
병준은 혼자서 해운대바닷가를 걸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곤 했다.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가 발끝을 스치고, 밤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는 그의 마음처럼 깊고 고요했다. 노숙자와 영주의 삶이 점차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지켜볼수록, 병준의 가슴 한편에는 쓸쓸함이 자리 잡았다. 쓸쓸함은 마치 잔잔히 일렁이는 바다의 물결처럼 마음속에 고요히 번져나갔다.
하지만 병준은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제 그들을 응원해 주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야.'
그는 노숙자와 영주가 함께 꿈꾸는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사랑이 무색해진다고 해도, 그 사랑을 억누르고 물러서는 것만이 그녀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여겼다.
병준은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그가 비록 그녀의 삶에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더라도, 그저 멀리 서라도 그녀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해운대 밤바람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병준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 감정을 조금씩 흩어 보내며, 고요히 바닷가를 걸었다.
그날 저녁, 병준은 가게 밖에서 과일을 정리하는 영주와 숙자의 모습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웃고 있었다. 영주의 손에 묻은 과일즙을 숙자가 장난스럽게 닦아주자, 두 사람 사이에는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그 모습은 따스한 빛으로 둘러싸인 듯했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느 것도 그들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어 보였다.
병준은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음 한편에 쓰라림이 일었지만, 감정을 묵묵히 삼켰다. 자신의 사랑이 닿지 않는 곳에서라도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다짐했다.
'그래, 이게 가장 좋은 길이겠지, '
병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조용히 두 사람을 축복하며 자리를 떠났다. 달빛 아래, 가게 안의 따뜻한 불빛은 병준의 뒷모습을 배웅하듯 그를 비췄고, 병준은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어느새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음 한편에 스며든 평온한 체념이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잘 살아라, 둘 다,”
병준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 속에 녹아들 듯 사라졌고, 그 말에는 오래 품어왔던 감정과 이별의 결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잠시 더 그 자리에 머물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어느새 가볍게 정리된 듯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사랑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병준은 혼자 걸어가며 생각했다.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미련이나 질투가 아닌, 순수한 행복을 향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을 위해 새로운 삶을 그려가기로 했다. 그들을 위한 마음도, 자신을 위한 결심도 모두 정리한 채로, 병준은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별빛이 흐드러진 밤하늘 아래에서 그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미소는 슬픔을 뒤로한 채 찾아온 평온한 안녕의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