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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랑 Nov 03. 2024

서울 전교 1등의 전학     

병준과 영주




서울 전교 1등의 전학     


윤정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첫날부터 김현수 선생은 윤정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서울에서도 전교 1등을 했던 아이다. 정말 우수한 학생이지!”  선생의 목소리에는 윤정에 대한 기대와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윤정의 아버지는 학교 인근에 있는 콜라 공장의 새로운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그가 대표 자리를 맡으면서, 가족도 함께 이사 오게 되었고, 윤정 역시 강호 국민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미 반 친구들 사이에서 ‘서울 1등’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목받았다.


윤정은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서울에서 누리던 인정을 이곳에서도 받고 있었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윤정이 전학 오던 날, 교실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철수는 아침에 엄마가 신신당부했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를 흘깃 바라보았다. 집에서 엄마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말했다.


“철수야, 새로 오신 대표님 딸이 전학 온 거잖니. 무슨 일 있으면 도와드려야 한다, 알겠지? 너, 잊지 말아야 해!”


철수는 마음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었다. “네, 엄마. 알겠어요.”


윤정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김현수 선생은 그녀를 반가운 미소로 맞으며 소개했다. 철수는 자리에 앉아 윤정을 바라보았다.


윤정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지만, 아이들의 눈빛에는 존경과 약간의 경외심이 섞여 있었다. 나래가 가까이 다가가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윤정아, 반가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윤정은 나래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잘 부탁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철수는 엄마의 당부를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윤정아, 내가 부반장인데, 혹시 학교 생활에 궁금한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철수의 말에 아이들 사이에서 부러움 섞인 탄성이 나왔다.


윤정은 철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부반장이구나. 고마워, 철수야.”


철수는 그녀의 감사 인사에 살짝 머쓱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뿐 아니라, 교실을 나가면 어른들까지도 윤정을 향해 조심스러운 태도로 굽신거렸다.


“철수야, 윤정 아가씨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지?” 라며 지나가던 어른들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윤정은 자신을 향한 낯선 시선들 속에서도 묵묵히 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의 미소 속에 어딘가 외로움이 서려 있는 듯했지만, 누구도 그녀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 채, 조용히 그녀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윤정은 생각보다 쿨했다.

다른 아이들의 관심과 존경에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학교생활에 깊이 얽히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반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녀는 첫날부터 반장에게 도발적인 말을 던졌다.


점심시간에 반장이 다가와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친절히 설명하려 하자, 윤정은 가볍게 눈썹을 추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네가 반장이라며? 공부도 1등이라며?”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귀를 기울일 만큼 날카로웠다. 윤정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당차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턴 내가 1등 할 거야. 너한테 질 마음 없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반장은 잠시 말없이 윤정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눈을 맞췄다. 말을 마친 윤정은 차분히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곧바로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울 1등’으로 전학 온 윤정이 조용히 학교에 녹아들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윤정의 당당함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반장은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윤정은 전학 온 뒤 치른 첫 시험에서 예고한 대로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녀는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고, 반장은 국어에서 단 한 문제를 틀려 2등에 머물렀다. 교실에는 긴장된 침묵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윤정을 향한 경외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철수와 현주, 그리고 김현수 선생의 특혜를 받는 다래와 해인조차도 윤정의 성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윤정은 당당한 표정으로 시험 결과를 받아들였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미 예견된 결과처럼 보였다.


반장은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윤정은 그 말에 응답하지 않은 채,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여유롭고 자신감으로 가득 찼으며, 누구의 관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교실에서 그녀는 점점 더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갔고,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품과 거리감이 아이들 사이에 퍼져갔다. 윤정의 성적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강호 국민학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듯, 당당히 그 자리에 섰다.




아이들은 윤정의 전교 1등 소식에 웅성거리며,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윤정에 대한 감상과 소문이 오갔지만, 정작 반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축하해, 윤정. 네가 1등이야.”


반장의 진심 어린 축하에 윤정은 잠시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경쟁자를 대할 때마다 보았던 질투나 경계심과는 다른, 반장의 따뜻하고 반듯한 태도는 그녀에게 낯설었다. 순간적으로 말없이 그를 응시하던 윤정은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고마워. 근데 이제부터는 내가 쭉 1등일 거야,”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책을 펴 들었다. 여전히 반장을 대하는 태도는 시큰둥해 보였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는 한층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


반장은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1등의 자리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윤정은 고개를 숙인 채 책 속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남긴 작은 파문이 조용히 일렁이고 있었다.

             



병준과 동진


영주와 숙자는 마침내 결혼을 결심했다.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결혼식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오자, 두 사람은 설렘과 긴장 속에서 준비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찍 귀가한 두 사람은 결혼식 전날인 만큼 서로에게 미소 지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게에 남은 일은 병준이 조용히 대신 맡았다.


병준은 묵묵히 가게를 정리하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두 사람을 위한 축복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곁에서 조용히 돕고,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은 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 것이었다.


그날 밤, 병준은 가게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다, 잠시 주저앉아 속으로 속삭였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둘 다.”


내일이면 그들이 서로의 곁에서 진정한 인연으로 거듭날 것을 알기에, 병준은 서글프지만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가게는 조용한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병준은 과일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며 손님이 떠나간 빈 가게의 고요함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둠이 깊어지기 시작할 무렵, 가게 앞에서 불안한 그림자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병준은 잠시 일을 멈추고 밖을 바라보았다. 낯익지만, 여전히 불편한 얼굴들, 동진과 그의 조직원들이었다.


병준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들이 영주가 가게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리 지어 찾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동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가게 안을 엿보았다. 표정에는 불안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고, 그의 몸짓은 초조하게 흔들렸다. 그는 병준을 보자 비아냥거리는 듯 미소 지었다.


“영주, 어디 숨었나?”

동진이 조용히 하지만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조직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병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병준은 차분하게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여기엔 없네. 그리고 여긴 네가 있을 곳도 아니야, 동진아.”


동진의 얼굴이 굳어지며, 그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

“참 잘도 숨기는군, 병준. 그렇다고 너도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어.”


병준은 그들의 시선에 물러서지 않고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는 속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만, 자신이 이 자리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진의 위협 앞에서 병준은 오히려 더 결심을 다지며 말했다.

“영주는 더 이상 너와 엮일 생각이 없어. 이젠 두 사람을 놓아줘야 하지 않겠어?”


동진은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병준을 노려봤다.

“너나 그 녀석이나, 다들 착각하고 있군. 내 뜻대로 될 때까지 그들을 놔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어둠 속에서 긴장감이 가게 안으로 서서히 번져갔다. 병준은 그들을 막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그들을 앞에 두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선 동진과 그의 조직원들을 보며, 병준은 차갑게 그들을 응시했다. 그는 동진의 눈에 깃든 불길한 기운을 알아채고, 이곳에 결코 우연히 온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동진 역시 병준을 보자 당황한 기색을 잠시 띠었지만, 이내 비웃음으로 표정을 바꿨다.


너 혼자라니, 운이 없군,”

동진은 조롱하듯 말했다.


병준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여긴 나 혼자면 충분해.”


그렇다. 그는 강호 국민학교의 넘버 1, 병준이었다.


하지만 동진의 얼굴에 비꼬는 듯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병준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신호에 따라 조직원들이 우르르 가게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과일 상자를 발로 차며, 진열된 과일을 바닥에 쏟아내고, 가게 안을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과일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짓밟혔다.


병준은 이를 악물며 동진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이곳을 망가뜨리면 나와 영주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동진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내 목적은 간단해. 가게를 지키고 싶다면, 영주가 조직으로 돌아와야 할 거야. 그가 나 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걸 이제 그만두라고.”


병준은 동진을 향해 강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기서 멈춰, 동진. 그들이 선택한 삶을 너 따위가 망칠 자격은 없어.”


하지만 동진은 비웃으며 병준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 어떻게 할 거냐고? 네가 이 모든 걸 막을 수나 있다고 생각해?”


병준은 동진의 냉소와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모든 각오를 다진 채 동진과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야,”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병준의 눈빛에는 영주와 노숙자를 지키겠다는 결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순간, 병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의 머릿속에 과거 강호 국민학교 시절, 싸움짱으로 이름을 날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억눌러온 본능이 다시 살아나며,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준은 망설임 없이 조직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좋아, 덤벼봐, "

병준은 낮게 중얼거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주먹이 번개처럼 날아들었고, 조직원들은 예상치 못한 반격에 순간적으로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 동진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던 가게에서 병준 혼자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병준은 계속해서 여러 명을 상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한 명이 그의 어깨를 잡으려 하자 그는 재빨리 몸을 틀어 조직원의 손을 뿌리치고, 그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 충격에 조직원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가게 안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고, 과일과 진열대가 이리저리 부서졌지만, 병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고, 얼굴엔 오랜 세월 억눌러온 결연한 결심이 드러나 있었다. 이곳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에, 조직원들은 주춤거리며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동진은 화가 난 듯 이를 갈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모두 덤벼!"


하지만 병준의 맹렬한 기세에 겁을 먹은 조직원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병준은 숨을 고르며 동진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그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병준은 말없이 그들을 향해 서 있었고, 그의 존재감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병준은 강했다.

과거 동네 싸움에서라면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동진을 비롯한 조직원들은 동네 불량배가 아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날렵하고 공격은 거칠었으며, 병준을 제압하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병준은 최선을 다해 그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그의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한 명씩 뒤로 물러났고, 순간적으로 조직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마침내 한 조직원이 시퍼런 칼을 꺼내 들었다.


주먹과 발길질이 연이어 병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차츰 밀려났고, 입가에는 피가 맺혔으며, 몸 곳곳에는 타격의 흔적이 깊게 남았다.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병준은 이를 악물며 끝까지 버텼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영주와 노숙자의 가게를 지켜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결코 쉽게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의 눈에 강하게 담겨 있었다.


병준은 혼자였고, 상대는 끝이 없을 듯 밀려들었다.

숨이 거칠어지고, 그의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마침내 병준은 지쳐갔다. 조직원들은 그의 느려진 움직임을 틈타 점차 병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동진의 신호에 따라 그들은 일제히 병준에게 덤벼들었다. 날카로운 주먹과 발길질이 병준의 몸에 연달아 꽂혔다.


하지만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의 몸은 점차 지쳐갔고, 손과 발이 무거워지며 힘이 빠져갔다. 병준은 다시 한번 일어서려 했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공격에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다. 마침내 마지막 한 방을 맞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숨이 가빠지고, 시야가 흐릿해졌지만, 병준은 여전히 가게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병준은 이를 악물며 버텼지만, 점점 지친 몸은 반응하지 않았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중심을 잡아보려 했지만, 마침내 그의 몸이 휘청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순간에도 병준의 눈빛은 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조직원들은 쓰러진 병준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병준은 고통 속에서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불꽃이 남아 있었다. 그가 쓰러져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마음은 결코 동진에게 패하지 않았다.


동진은 쓰러진 병준을 내려다보며 냉소를 머금었다.

"넌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는 다 막을 수 없어, 병준."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우월감이 깃들어 있었다. 동진은 병준이 완전히 무력해졌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이긴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병준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도 동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후회도, 두려움도 없이 오직 결연한 의지만 가득했다.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동진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혼자서는 모든 걸 막을 수 없지. 하지만… 누군가는 지켜야 할걸 지켜야 하는 법이야."


그 말에 동진의 얼굴에 잠시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병준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그를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쓰러진 자가 아닌, 아직까지 지지 않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병준의 결의는 그 자리에 끝내 꺾이지 않는 기둥처럼 남아 있었다.


동진은 병준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비웃었다.

“이제야 좀 제자리를 찾은 것 같네. 영주와 노숙자는 내가 다시 찾아가면 돼. 넌 여기서 꿈도 꾸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강호 호랑이 병준이도 별 수없네.”


병준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불꽃이 남아 있었다.




가게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과일은 여기저기 나뒹굴었고, 진열대는 부서져 산산조각이 났다. 동진과 조직원들은 목적을 이뤘다는 듯 차가운 웃음을 남기고 가게를 떠났다. 그들이 사라진 후, 병준은 바닥에 쓰러진 채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온몸에 고통이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영주와 노숙자의 행복을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의지가 그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들이 가게에서 영주를 발견하고 급히 119를 불렀다. 병준은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중상을 입은 채로 입원하게 되었다. 의사들은 그의 상태를 보고 심각한 부상을 진단했고, 병실에서 병준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뜨거운 결의 남아 있었다.


가게는 조용히 무너졌지만, 병준의 희생은 그 자리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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