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만든 맛
동해의 바다는 직선으로 다가온다. 굽이 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차갑고 투명하다. 끝에 묵호항이 있다. 겨울이면 이곳은 더욱 또렷해진다. 공기는 날카롭게 맑아지고 바다는 깊은 푸른빛으로 가라앉는다. 차가운 깊이 속에서 올라오는 생선이 있다. 살을 단단히 조이고 지방을 품은 채 계절을 견뎌낸 이름, 방어다.
묵호항의 방어는 겨울이 완성한다. 찬 바다를 오래 헤엄친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을 채운다. 지방은 차가울수록 더 단단히 응축된다. 회 한 점을 들어 올리면 결은 탱글 하게 살아 있고 칼날의 흔적은 반듯하다. 입에 넣는 순간 쫀득, 이어서 사르르 풀리며 고소함이 번진다. 뱃살은 특히 부드르르 녹아내리며 입안에 기름진 단맛을 남긴다. 이 맛은 단순히 기름지다거나 부드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차가운 바다의 시간이 혀 위에서 풀리는 감각이다.
묵호항 방어의 재료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깊은 동해, 겨울 수온 그리고 시간이다. 특히 겨울 방어, 흔히 대방어라 불리는 시기의 개체는 지방층이 두텁고 붉은 살과 흰 지방이 선명하게 갈린다. 그런 대비는 바다와 파도의 경계처럼 또렷하다. 곁들임은 절제되어 있다. 간장, 와사비, 혹은 초장이 전부다. 때로는 김 한 장에 싸서 먹기도 한다. 과한 양념은 필요 없다. 이 고기는 스스로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묵호항은 오랫동안 동해안 어업의 중심지였다. 새벽이면 배들이 들어오고 어판장은 빠르게 깨어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방어가 내려지는 순간 은빛 비늘은 아직 바다를 품고 있다. 상인들은 짧은 말로 가격을 주고받고 사람들은 가장 좋은 한 마리를 고른다. 겨울철 묵호항은 자체로 하나의 장면이다. 입김이 희미하게 번지는 새벽 그리고 막 올라온 방어의 묵직한 존재감이다.
방어는 겨울에 가장 맛있다. 가장 차가운 계절에 가장 풍부해진다. 이런 단순한 사실은 어딘가 닮아 있다. 사람의 시간도 그렇다. 견디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안에 쌓이는 것은 더 단단해진다. 묵호항의 방어 한 점은 그렇게 말한다.
“추운 계절이 지나야, 진짜 맛이 온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