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면, 만호의 아버지는 늘 그렇듯 리어카를 끌며 다가왔다. 그가 끄는 리어카는 낡았지만, 매일 부지런히 굴러가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운동장에 퍼진 리어카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날도 어김없이 들렸다.
"네, 아빠. 여기 종이랑, 플라스틱, 유리병까지 다 모았어요."
만호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창고 뒤편, 그가 모아둔 폐품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빛바랜 종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부스럭거리고, 유리병은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잘했구나, 우리 만호 덕분에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밥 한 그릇 걱정 없겠네."
아버지는 만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길에는 고마움과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폐품 하나하나를 리어카에 싣는 동안, 만호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손은 능숙하고 신중했다. 마치 오래된 장인이 일을 하듯, 그가 폐품을 다루는 모습은 익숙하고도 정성스러웠다.
"아빠, 이거 다 모으면 우리도 부자 될 수 있을까요?"
만호는 장난스레 물으며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잠시 멈춰 웃음을 터뜨리며 리어카를 한 번 쿵 하고 끌어당겼다.
"부자가 되는 건 돈이 아니야, 마음이지. 우리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히 부자인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리어카를 밀기 시작했다. 리어카가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렸다.
그들 뒤로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스며들었다. 만호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맞아, 우린 이미 부자야. 아빠랑 나랑, 이렇게 함께니까."
저녁바람에 실린 그들의 발걸음 소리는 작은 마을 골목을 따라 멀리 퍼져 나갔다.
강호 국민학교 뒷산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동네엔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중장비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지진처럼 온 마을을 진동시켰다. 몇 년간의 공사 끝에 땅이 평탄해지더니, 어느 날 그 자리에 거대한 대단지 아파트가 우뚝 솟아올랐다.
"저 아파트에는 누가 살게 될까?"
동네 어르신들이 공사장을 지나가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답은 금세 드러났다. 의사, 사업가, 금융인, 고위 공무원들—도시의 성공한 이들이 하나둘씩 그 아파트로 이사 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들까지 이곳으로 몰려오며, 아파트는 동네 사람들에게 마치 닿을 수 없는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만호는 친구와 함께 그 아파트 앞을 지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우리랑 뭔가 다르지 않아?" 만호가 말했다.
친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들의 차도 다르잖아. 반짝거리고 먼지 한 점 없어 보여. 그들 세상엔 먼지가 없는 것 같아."
만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맞아, 그리고 거기 사는 아이들은 항상 새 옷을 입고 다녀. 마치 천이 아니라 구름을 걸친 것 같아. 우리랑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아."
"우리가 여기 사는 건…"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흙먼지 속에서 겨우겨우 숨 쉬는 거 같지 않아?"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삶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딘가로부터 밀려 나온 사람들처럼 보였고, 세상에 남겨진 흔적처럼 그곳에 존재했다. 그들의 자전거는 녹이 슬었고, 입은 옷은 해졌지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땅을 밟고 살았다. 흙먼지가 옷에 들러붙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숨결은 흙먼지와 섞여 마을을 떠돌았다.
"그러니까, 부자들은 먼지와 섞이지 않는 거야." 만호가 조용히 말했다.
"그들은 그냥 떠 있는 거지. 우리처럼 땅에 닿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잠시 생각에 잠긴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 말이야, 우리는 이 땅에서 자라나고 있어. 그들은 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이 흙에서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잖아. 그러니 어느 쪽이 진짜 부자인지, 누가 알겠어?"
저녁노을이 그들의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고, 두 친구는 말없이 다시 길을 걸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묵직했지만, 마음속에는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자각이 스며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어느 날, 교실이 조용히 소란을 거두어들이고 있을 무렵이었다. 서울에서 막 이사 온 나래는 유명한 부잣집 딸이자, 입만 열면 서울말을 쓰는 아이였다. 교실 안의 아이들이 슬쩍슬쩍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서울에서 왔대, 부자라던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짝은 엿장수 아들, 만호였다. 점심시간 동안 학교 창고 뒤에서 폐품을 정리하던 만호의 옷은 먼지투성이였고, 손에도 여러 종류의 오물이 묻어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씻어도 손가락 사이에 남은 얼룩들은 그의 하루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교실에 돌아온 만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때 나래가 고개를 돌리더니 코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너, 냄새 나…"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작은 향수병을 꺼냈다. 만호는 어리둥절했다.
"미안해…"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작은 목소리로 연신 사과했지만, 나래는 듣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향수병을 흔들어 뚜껑을 열고, 만호에게 향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향기는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가, 교실 가득 번졌다. 하지만 그 순간, 만호는 무겁고 어색한 기운에 몸이 묶인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향수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마치 그 냄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덮어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하루 종일 쌓아온 노력과 땀, 먼지와 함께 쌓여 있는 그의 자존심까지도.
"미안해…" 만호는 다시 한번 작게 중얼거렸다. 그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묵묵히 향수의 세례를 받아들였다.
그날따라 반장이 없었다. 아이들은 속으로 아쉬워하며 웅성거렸다. "반장만 있었으면 나래를 혼내줬을 텐데..."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조용히 있던 현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주 역시 서울에서 전학 온 부잣집 아이였지만, 그녀는 나래와는 달랐다. 항상 조용하고, 모두에게 친절했던 현주였다. "그게 무슨 짓이야?" 현주는 나래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교실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나래는 그 말을 듣고 비웃으며 쏘아붙였다. "네가 뭔 상관인데?" 둘은 곧바로 서울말로 거칠게 말다툼을 시작했다. 말이 점점 날카로워지면서 아이들은 숨죽이고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현주는 자신이 부당하다고 느낀 것에 물러서지 않았고, 나래는 쉽게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공방은 한참 동안 이어졌고, 마치 서로의 자존심을 끝까지 꺾지 않겠다는 의지로 말들이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은 속으로 현주를 응원하고 있었다. "현주야, 힘내라..."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했던 현주가 부당한 상황에 맞서고 있는 모습에 모두들 그녀의 편이었다.
하지만, 나래는 점점 더 격해졌다. 그러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나래는 현주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짝!"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숨을 멈췄다. 충격에 휩싸인 현주가 멍하니 나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도 나래는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책을 집어던졌다. 책 모서리가 현주의 얼굴을 스치며 긁혔다. 순간, 현주의 하얀 얼굴에 가느다란 생채기가 남았고, 그 자리에 붉은 피가 서서히 맺혔다. 교실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피 한 방울이 현주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며, 아이들은 그저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 있었다. 현주는 천천히 손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말없이도 깊은 슬픔과 상처가 배어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반장이 교실로 들어왔다. 반장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이들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조용히 부반장 철수를 불러 물었다. "철수야, 무슨 일이야?" 철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마치 무거운 공기처럼 그 어떤 저항도 용납되지 않는 듯했다.
"나래, 그만해." 그는 냉정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은 바람처럼 부드럽게 퍼져나갔지만, 동시에 바람은 돌을 흔들 만큼 강했다. 그러나 나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반장을 향해 불만스러운 눈으로 쏘아붙였다. "네가 뭔데 상관이야? 선생님이라도 돼?" 그녀의 목소리는 고요한 교실을 찢는 듯 날카로웠다. 아이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반장이 말하는데도 듣지 않다니. 반장은 항상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에, 그가 개입하면 누구든 고분고분하게 말에 따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래의 저항은 모두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실 안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장은 잠시 나래를 바라보더니, 더 이상 억지로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울고 있는 만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위로했다. 만호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며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그런 다음, 반장은 다정하게 현주의 손을 잡고 말없이 양호실로 데려갔다. 얼굴에 생채기가 난 현주는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모두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반장은 누구를 비난하지도, 크게 꾸짖지도 않았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무겁게 다가왔다.
그때 교실 문이 다시 열리고, 학교에서 악명 높은 김현수 선생님, 별명이 ‘미친개’인 그가 들어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가 들어서면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반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현주를 양호실로 데려가겠습니다." 김현수 선생님은 반장을 무시한 채, 교실을 휘어잡는 시선으로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반장은 급히 현주의 손을 잡고 양호실로 향했다. 그리고 난 후, 교실 안에는 더 큰 소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을 나선 뒤, 김현수 선생님은 울고 있는 나래에게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내래, 무슨 일이야? 어제 어머니가 다녀가셨어." 나래는 과장해서 더 큰 울음소리를 내며, 자기 위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현주가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고, 반장은 자기를 때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순간,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다짜고짜 만호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놈이 문제구만!" 그의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그리고 매섭고 강하게 내려와 만호의 뺨을 때렸다. 몸집이 작은 만호는 한참을 뒤로 밀리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네가 폐품이나 만지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김 선생님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찼다. 그는 만호의 뺨을 때린 것으로도 모자라는지 쓰러져있는 만호에게 발길질을 했다. "거지새끼. 밟아 터자뿔라."
무자비한 폭력과 무절제한 욕설이 만호의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만호를 때리자, 교실 안은 공포에 빠졌다.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숨을 죽이고 마치 자신이 두들겨 맞는 것처럼 벌벌 떨었다. 김현수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고, 그의 손과 발이 무섭게 움직일 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모두들 차갑게 식은 얼굴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속으로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 오직 반장만이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반장이 다시 돌아오길, 문이 열리고 그가 다시 교실로 들어와 이 끔찍한 공포를 끝내주길 바라며... 그때 반장이 다시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실 문이 다시 열리자,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반장에게로 향했다. 반장은 천천히 들어오며 상황을 살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만호와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만호를 향해 분노로 서 있는 김현수 선생님. 교실 안에는 이미 공포와 불안감이 가득했다.
반장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교실 안의 모든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과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선생님, 만호를 그만두세요."
반장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김현수 선생님은 반장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도 이놈이랑 한 패냐? 네가 나서서 뭘 어쩔 건데?"
그 말에 반장은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반장도 이제는 이 폭력적인 상황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선생님, 아이를 이렇게 때리는 건 잘못됐습니다. 만호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김현수 선생님은 반장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이 녀석이 문제를 일으켰어!"
하지만 반장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만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만호는 그냥 자기 일을 한 것뿐입니다. 폐품을 모으는 게 왜 잘못인가요? 그게 우리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실 안은 더 이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반장이 용기를 내어 선생님에게 맞서는 모습을 경외감으로 바라보았다. 김현수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잠시 반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좋아. 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네가 책임져 봐라."
그리고는 만호를 향한 폭력을 멈추고, 자리를 떴다. 교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떠나자, 아이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반장은 만호를 부축해 자리로 데려갔다. 만호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눈물 속엔 고마움도 섞여 있었다.
"고마워, 반장…"
만호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반장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만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괜찮아. 앞으로도 넌 혼자가 아니야."
그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 안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반장은 아이들 사이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반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진짜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현주와 반장 5.
현주와 반장은 해운대 시장의 번잡한 골목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그들만의 고요한 시간을 유지했다. 그날 밤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오랜 시간 동안 무거웠던 감정들이 서서히 흩어져가며, 그들은 새로운 길을 향해 첫 발을 내디딘 것처럼 느꼈다.
"우린 앞으로도 이렇게 걸어갈 수 있을까?"
현주가 조용히 물었다.
반장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이번엔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은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현주의 마음을 더 가볍게 했다. 그동안 쌓였던 아픔과 두려움은 그들 앞에 펼쳐진 새로운 날들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
현주는 부드럽게 말했다.
반장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들의 손끝이 닿은 순간, 작은 손잡이가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연대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제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그날 밤의 대화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였다. 그들이 지나온 고통과 시련을 뛰어넘어, 함께하는 새롭고 밝은 날들을 향해 나가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우리, 천천히 가자. 서로의 길을 지키며."
반장이 말하자, 현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한번 걸음을 옮기며, 저녁노을이 사라진 자리에 어둠 대신 희망을 남기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