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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랑 Sep 26. 2024

전학생

현주와 반장 6.




전학생     


반장은 쓰러져 있는 만호를 바라보더니 다가가 부드럽게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만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반장의 손길에서 묘한 안심을 느끼는 듯했다.      


"양호실로 가자, "      

반장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교실에 흩어진 긴장감을 서서히 녹여내는 듯했다. 교실 안 아이들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반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의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에 아이들은 묘하게 위로받는 듯했다. 교실 창밖으로는 저녁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반장의 뒤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며칠 후, 교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은 전학생이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지윤이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마치 씨름 선수처럼 단단했다. 등 뒤로 강하게 뻗은 어깨와 넓은 가슴은 그가 어린아이가 아닌, 이미 어른 같은 인상을 풍기게 했다. 몇몇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저 애가 전학 온 아이래. 씨름 선수였다고 하던데."      


지윤은 딱딱하게 교실을 가로지르며 자리를 잡았고, 그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딘가 거친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무언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며칠 후, 체육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교정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아이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지윤이가 노숙자와 시비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노숙자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윤은 그녀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가 욕설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 장면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서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윤은 거침없이 행동했고, 그에게서는 인간적인 배려나 동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전투에 임하는 병사처럼 냉혹하고 단호했다.      


노숙자는 저항하려 했지만, 지윤의 덩치와 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곧 싸움이 벌어졌고, 그는 노숙자를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씨름 선수 출신답게 그는 손쉽게 노숙자의 몸을 쓰러뜨렸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지윤은 그녀의 위에 올라타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노숙자의 얼굴에 멍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그 장면을 보고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부는 고개를 돌렸고, 일부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교정은 한순간에 전쟁터가 된 듯, 무겁고 찬 공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서 지윤을 말리지 못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과 거친 행동은 이미 모두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놓은 상태였다.      


몇몇 아이들은 속삭였다.       

"저 아이, 진짜 위험해 보인다."       


그들의 속삭임이 지윤의 냉혹한 행동 속에서 불안한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반장이 나타났다. 교정을 휘젓던 소란 속에서 유일하게 차분해 보이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반장이 가까이 다가오자, 노숙자는 그를 보며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작은 머리핀이었다. 노숙자는 조심스레 그 머리핀을 머리에 꽂더니,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가에서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물은 오랜 시간 억눌린 감정이 터져 나오는 듯, 고요하지만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반장의 눈에 순간 화가 번졌다. 그는 지윤에게 다가가,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만해!"       

반장은 외치며 지윤을 거칠게 밀쳐냈다. 항상 냉정하고 침착했던 반장이 처음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지윤은 반장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잠시 당황한 듯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반장은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마치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분노가 터져 나올 듯했다. 그리고 그는 지윤을 향해 천천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싸움짱으로 유명한 병준이었다. 병준이의 눈은 화염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더욱 살벌해졌다. 모두가 병준이를 보며 긴장했다. 병준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반장의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지윤을 제압했다. 지윤은 전혀 저항할 틈도 없이 병준의 손길에 나동 그려졌다. 씨름 선수였던 지윤조차 병준의 강력한 힘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졌다. 역시 병준이었다. 그의 싸움 실력은 소문이 허풍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장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병준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힘껏 말렸다.        


"그만둬, 병준아. 이건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야."       


반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흥분된 기색이 있었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병준도 천천히 이성을 되찾는 듯 보였다. 병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의 불꽃이 꺼져갔다.      


교정은 다시 조용해졌다. 반장의 단호한 모습이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지윤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고, 병준이도 더 이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교정의 아이들은 모든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반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싸움이 끝났어. 이제 그만하자."       

그의 목소리는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다. 햇살이 어느새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그 따스한 빛이 교정에 드리워진 긴장감을 천천히 녹여내는 듯했다.      


"노숙희는 내 동생이야. 누구든 숙희를 건드리면 내가 가만있지 않겠어!"       

병준이는 교정을 울릴 만큼 무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은 마치 경고처럼 아이들의 가슴에 날아들었다. 병준이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의 말에 교정은 더 무겁고 긴장된 공기로 뒤덮였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고, 아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순간, 노숙자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과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두려움보다 슬픔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반장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신이 겪은 모습을 반장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운동장 저편으로 발길을 돌렸다.      


반장은 그 순간,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노숙자를 향해 있었고, 그녀의 작아진 어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혼자서 달아나듯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노숙자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그녀의 뒷모습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교정의 끝자락으로 사라져 갔다. 반장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사라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삼켜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정에 남아 있던 침묵은 무겁고 깊었다. 반장은 여전히 노숙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동안 강하고 당당했던 모습 뒤에, 그는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뒤엉켜 있음을 느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며 운동장에는 먼지가 일었고, 그것은 마치 그들의 상처와 함께 흩날리는 듯했다.


아이들은 서서히 제자리에 돌아갔고, 교정의 소란은 점차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날 일어난 일은 아무도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지윤이 일으킨 사건은 단순한 싸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모두가 품고 있던 내면의 혼란과 상처를 표면 위로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반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병준을 바라보았다. 싸움의 승자는 병준이었지만, 그는 결코 승리를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병준의 얼굴에는 무언가 씁쓸한 감정이 감돌고 있었다. 그도 노숙자의 상처를 보고 자신이 그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병준이 천천히 반장에게 다가왔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흐르는 것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싸움을 마친 지윤도 조용히 몸을 일으켜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털어내며 병준과 반장을 바라봤다.


"이젠 끝난 거야, " 반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숙를 지켜야 해, " 병준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누구도 그녀를 다치게 놔두지 않을 거야."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싸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어.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지키려면,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야."


병준은 그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분노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노숙자가 겪은 고통을 바로잡기 위해선 단순한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반장의 말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교정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알았다. 그날의 사건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노숙자와 지윤, 그리고 반장과 병준 모두가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며 더 나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할 순간이었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반장은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우린 모두 조금씩 강해져야 할 때야."


그의 말은 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현주와 반장 6.


현주와 반장은 그렇게 밤바다를 배경으로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파도 소리는 그들의 대화를 부드럽게 감쌌고,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들 조금씩 풀려나갔다. 마음속 무거운 짐 서서히 바닷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듯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각자의 삶 속에서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맞춰가고 있었다. 현주는 잃어버린 꿈을 찾아가고 싶었고, 반장은 자신만의 길을 확고히 다지려 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 서로 동반자가 되어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줄 몰랐어."

현주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 같아."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자."


바람이 잠시 멎으며 둘 사이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침묵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는 말없이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이해가 있었다.


그날 밤, 바다 앞에서 자신들이 나갈 길에 대해, 서로를 향한 신뢰와 우정에 대해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반장은 미래를 향한 자신의 결심을 더 굳게 다졌고, 현주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기 위한 힘을 얻었다. 그렇게 함께 나갈 준비가 되었다.


그날 밤, 해운대의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도 그들의 마음은 따뜻했고, 두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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