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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Feb 20. 2022

눈에 순응

Life accommodation

늙은이 같은 단어는 내가 진짜 늙어가는 것 같아 웬만하면 쓰기 싫은데, 미국에 눈 오는 것을 볼 때면  꽤 올드한 ‘순응’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며칠 전에 날이 따뜻해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지난달의 눈들이 하루 사이 다 녹았다. 눈이 녹아 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들었고, 모든 길들이 비가 온 것처럼 축축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새벽에는 기온이 엄청 떨어져 추워졌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하루 만에  싹 녹았던 눈이, 다시 엄청나게 쌓였다. 남편은 눈을 치우러 나가 삽으로 노동을 하며 추위에 1-2시간을 보낸다. 


길이 미끄러운 아침, 나는 긴장감을 가지고 운전해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었다. 지난주 발목에 금이 가서 보행보조도구를 차고 있는 아들의 보조도구가 젖을까 봐, 학교 주차장부터 아이를 안아서 학교 안으로 넣어주었다.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상가의 상인들이 쓰레받기 같은 넓적한 삽에 눈 녹는 소금을 잔뜩 쌓아 나와서는 일일이 손으로 보도에 뿌리는 모습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추가된 잡일일 텐데도, 그들은 큰 불평도 불만도 없어 보였다. 이 씬(Scene)에서 인간의 ‘순응’ 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미국은 특히 날씨가 삶의 큰 변수가 된다. 허리케인으로 많은 수의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더위로, 추위로- 그렇게 이어지는 독감으로 꽤 많은 사람이 죽는다. 눈도 똑같다.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양이 하루 밤새에 쏟아지기도 하고, 그 상태로 말도 안 되게 꽁꽁 어는 추위가 며칠이고 지속되기도 한다. 


인간은 주어진 자연에 순응할 수밖에 없나 보다. 남편도 눈을 치우러 나가면서 ‘아, 눈 치우기 진짜 싫다’라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눈이 오면 치워야 하고, 더워도 추워도 견뎌야 하고, 언제 올 지 모르는 허리케인에 갑자기 부상당하지 않도록 주변의 shelter 가 어딘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내가 절대 주체적이지 못하게 되는 하나의 변수가 바로 날씨다. 아침에 늘 날씨를 체크하고, 오늘도 극적인 날씨가 펼쳐지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주어지는 날씨에 순순히 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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