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지트, 너의 이야기>
예술을 사랑하는 외과 의사, 초은님.
처음엔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단골 손님이었지만,
이젠 제 공연과 나지트의 소소한 이벤트에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가장 따뜻한 관객이자 친구예요.
눈빛과 말투, 눈빛에서도 느껴지는 다정한 에너지 덕분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죠.
초은님은 나지트가 지향하는 분위기 그 자체 같아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무해한 사람.
초은님의 다정함을 닮고 싶어서, 주신 편지를 몇 번이나 돌려 봤나 몰라요.
나지트를 좋아해주셔서,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지트가 초은님의 위로라면, 초은님의 방문은 제게 선물같아요.
안녕, 나는 초은이야. 첫번째 은혜라는 뜻이지!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를 고르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이 한 마디를 꺼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 “직업이 네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되게 두지 말고, 직업을 수단 삼아서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 그래서 “나는 의사야”라는 말보다는 “내 직업은 의사야”라고 이야기하는 편이야. 이상한 고집이지?
난 외과의사를 직업으로 삼았고, 부지런히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중이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을 만나게 된거지. 물론 일을 배우고 수련을 받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면 절대 거짓말이야. 주저 앉아서 엉엉 울기도 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도 않는 우울과 자책에 빠지기도 했어. 하지만 ’고맙다‘, ’덕분이다‘는 한 마디만 들어도 마음이 풀리는 걸 봐서는 아마 난 의사를 그만두진 못할 것 같아. 난 내 직업을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야 :)
일반적으로 정규시간과 당직시간으로 나눠서 이야기할 수 있어. 정규시간은 요일마다 정해진 일정이 달라서 수술하는 날과 외래보는 날이 있어. 수술하는 날은 보통 오전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5시쯤이면 마무리되고, 외래보는 날은 보통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 정도면 마무리되지. 정규시간 전에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날은 오전 7시에 회의를 하고, 회의가 끝나면 정규업무를 하러 가. 수술 전날에는 수술하기 위해 입원하신 환자분들을 만나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전반적인 수술 준비를 해. 이 환자가 마취를 견디기에 적합한 환자인지, 수술 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당직시간은 정규시간과 정규시간 사이의 시간을 의미하고, 매일 있는 건 아니고 당번 정하듯이 돌아가면서 당직근무를 해. 예를 들어 화요일 당직이면, 화요일 정규시간근무 - 화요일 당직시간근무 - 수요일 정규시간근무 로 연속적인 근무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돼. 당직이 아닌 날에는 퇴근해서 내 개인 시간을 가져.
솔직히 정답은 모르겠어. 수십년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 정답을 알려나?
그래도 내 나름의 방법을 부지런히 찾는 중이야.
실제로 백의고혈압(White-coat Hypertension, 병원에서 측정한 혈압이 평소에 비해 높은 현상)이 있을 정도로 환자가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 상황이란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그래서 대화의 시작은 꼭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또 나를 소개하며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해.
그리고 환자와 내가 대화하는 시간은 늘 ’정보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이해하기 쉽게 익숙한 것들에 비유하며 예를 들어서 설명하기도 해. 나는 자주 많은 환자를 만나서 익숙한 것들이 환자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 투성이라는 걸 잊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 그래서 늘 진료의 마지막엔
'제가 지금까지 설명 드린 내용 중에 궁금하시거나, 이해 안되는 내용이 있으신가요?'
라는 고정 멘트가 생겼어.
내 일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예술을 사랑해. 특히나 장르에 관계 없이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고, 공연을 보고 나서 끊임 없이 공연에 대해 떠드는 게 즐거워. 공연을 보고 나면, 무대 위의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 하고 그 무대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을 한없이 응원하게 돼. 같은 공연이어도 그날 공연을 보는 나의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질문이 다르고, 어느 날은 엉엉 울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엄청 웃기도 하니까. 그리고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 확신해. 진짜 너무 매력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아?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에게 있어 공연은, ’문제를 해결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며 늘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 그래서 무대 위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행복! 난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해. 행복이 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 지, 어떨 때 내가 행복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행복한지.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이, 살다보면 매 순간이 행복하기만 하긴 어렵다는 걸 많이 경험해. 그래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행복버튼’을 손 닿는 거리에 여러개 놓아 두면 좋을거야. 내게 행복이 찾아와주면 좋겠지만, 꼭 그러란 법 있어? 내 ‘행복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누군인지를 알고 있으면 내가 그 행복을 찾아가면 되니까. 요즘 나에게 ‘행복버튼’은 공연과 나지트야!
나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손 닿는 거리에 자주 행복이 있는 삶이길 늘 기도해.
사랑과 염려를 가득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