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엄마만 바라기였던 그녀였다.
심지어 퇴근해서 들어오는 아빠를 낯설어하며 가지 않고, 집안에서도 엄마가 안 보이면 울던 아이였다.
두 살 터울의 오빠는 아무에게나 잘 가고 어디서나 적응을 잘하는 아이를 보다가 어디 가도 나를 떨어지지 않는 딸은 아들과 달리 여러모로 불편했다.
딸은 늘 나와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것을 좋아했고, 활동적인 엄마인 나는 그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뭐 그래도 어쩌하겠냐마는 조금 크니 함께 다닐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다른 성향의 아이를 이해해야 하는 인내심에는 한계를 느끼곤 했었다.
딸은 자기와 눈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감정을 알아주기를 원했던 모양이었지만, 미숙했던 엄마는 그런 감성적인 아이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엄마로서 할 도리만 하는 엄마역할을 하는 엄마였던 것이다.
그 아이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뭔가 말할까 말까 하던 그 눈빛들이 항상 많았는데 그것이 그럻게 눈에 밟히게 떠오르는 기억이다.
성격유형이 E였던 나와 달리 딸은 I 다.
남편과 내가 다르듯이 성격은 나를 닮지 않았나 보다라고만 생각하고 나와 다르다는 점을 밀어내듯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딸을 밀어냈을지도 모르겠다.
잘 자라나는 듯했던 시기에 오빠의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 이때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뒤에 오는 딸의 후폭풍은 더욱더 거칠고 무기력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권위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엄마였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계기가 되는 피가 마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집안의 모든 사랑과 관심이 오빠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딸은 중2가 되면서부터 나를 바라보던 시선을 친구에게도 돌리면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방 괜찮아 질거라 생각하며, 자기 할일을 못하고 제때 지키지 않는 약속에 엄청난 화를 내며 이전처럼 이해해 주기보다는 엄격한 잣대와 엄마의 입장에서만 했던 말과 행동들이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아이를 더 쓸쓸하고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진로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도 삐걱거리며 말싸움이 잦았고, 딸은 원하지 않는 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부모 상담주간에는 꼭 시간을 내서 딸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곤 했다.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딸은 학교에서 선생님께도 오해되는 행동을 보이곤 했기에 선생님의 이해와 시선을 바꿔서 바라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상담을 진행했다.
그럼 선생님들은 그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엄마인 내가 가서 이야기를 하고 가정에서도 그런 부분을 알고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있다고 하면 선생님께서도 받아주시고 안심하는 표정을 보이시곤 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나는 꼭 학교 선생님과는 상담을 해서 딸의 이런 행동을 할 때
이해와 사랑으로 지도해 주시기를 정중히 말씀드려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게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학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은 매일 나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컴퓨터로 결정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딸은 학교에서 원하는 학교에 온 것이 아니라며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곱게 보지 않는 몇몇 선생님들께는 한마디로 요주의 인물이 된 상태였다.
보수적인 여고를 다니게 된 딸에게는 숨 막히는 여고시절이 시작이 된 것이라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