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며 보니
집 앞에 가로등이 하나 있었다.
컴컴한 밤길 아니고 등이 하나 있으니
어딘가 더 안전할 것 같아 좋았다.
밤길 안전과 별개로 내가 놓친 것이 또 있었으니
집 안에 블라인드, 커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저 가로등이
너무 밝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과 밖에서의 마음이 이리 다를 줄이야!
안방의 커다란 창으로 엄청난 가로등 불빛이
직사광선처럼 눈 위로 내리 꽂혀
이사 온 첫날은
어느 때보다 눈부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 한 와중에 우리는 이케아로 달려갔다.
당장 안방에 암막커튼 설치가 절실했다.
급히 사이즈를 쟀는데
창문이 아파트보다 더 넓고 높이도 더 높았다.
안방 창이 커봐야 얼마나 크냐 할 수 있지만
30평대 아파트 베란다 창과 동일한 사이즈,
아니 높이는 더 높은 사이즈의 창이었다.
매장에 있는 커튼들 중에 가장 크고
가장 빛 차단이 잘 되는 암막커튼
2세트(4폭)를 구매해 달고 나서야
밤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일단 잠은 해결됐으니 1층 거실이 남았다.
거실 창 폭에 맞춰 제작해야 했는데
오프라인 가게를
이용하자니 그 비용이 수십만 원이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건 우드 블라인드라
더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합리적인 가격선에서 온라인 주문을 했다.
블라인드가 오기 전까지,
밖에서 우리 집 안이 너무 잘 보였지만,
우리가 뭘 먹고 뭘 보는지
동네사람들이 다 알 지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말, 연시 연휴가 겹치며 제작과 배송이
더뎌진 탓에 사흘, 나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블라인드는 오지 않았다.
아무리 주문제작이라지만
로켓배송시대에 너무한 처사 같아 화가 났다.
내가 아무리 화가 난들 다른 대안이 없으니
잠자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블라인드가 도착하기까지
우리 동네 사람들,
동네 산책하는 강아지들,
길고양이들은
해가 진 후 우리 가족의 생활상을
원치 않아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블라인드는
주문하고 보름이 지날 때 쯤 도착했다.
남편과 함께 블라인드를 설치했는데
우드 블라인드가 이렇게 무거운지 처음 알았다.
‘과연 이 무게를 매달고 있어도
커튼박스는 괜찮은 걸까?‘
남편이 피스를 박아 위에서 고정하는 동안
나는 아래에 서서 그 블라인드를 받치고 있었다.
무거운 우드 블라인드를 양 팔로 들고 있자니
어린 시절 의자 들고 벌서기가 생각나며
묘하게 기분이 나빠질 뻔했다.
그래도 싸게 샀으니까,
더 이상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 됐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대로 딱 왔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블라인드를 설치하고 며칠 뒤 아침,
잘 자고 내려와 블라인드를 걷었는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부신 눈.
“째르째르, 얼른 내려와 봐. 눈 왔다.”
아이 옷을 단단히 입히고 마당에 함께 나갔다.
조심조심 눈을 밟던 아이는 이내 눈 위에 누웠고
이리저리 뒹굴며 한참을 놀았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고,
반찬통에 눈을 채워
이글루 비슷한 것도 만들었다.
아이가 노는 사이 나는
김이 펄펄 나는 뜨끈한 차를
머그컵에 담아 눈 밭에서 홀짝였다.
‘주택에서 사는 게 이런 낭만이 있네?’
마치 여행온 것 같았다.
여행왔는데 내 짐이 다 같이와서 너무 편안한 기분.
그러나 눈이 내리는 게
퍽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