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쌓인 눈에서 놀며
낭만을 떠올린 다음날 새벽,
“드륵, 드륵, 드르륵”
무언가 둔탁한 물건으로
바닥 긁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크고 규칙적인 이 소음이 지속되어
창 밖을 봤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드륵, 드륵, 드르륵”
20여분 이어진 끝에 소음이 멈췄다.
‘뭐지?’
마당 밖을 나선 후에야
아침 내내 났던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됐다.
넉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였다.
넉가래는 플라스틱 거대한 삽 모양의 기구로
원래 용도는 모르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눈 치울 때 주로 쓰인다.
‘넉가래’라는 이름도 그제야 겨우 알았으니
집에 그런 도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급한 대로 아파트 살 때 베란다 청소용으로 사뒀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와
늦었지만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동네 분이 관리사무소에 가면
사무실에서 안쓰실 때 잠깐씩
빌릴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넉가래를 빌려와
집 앞 눈을 밀어 치웠다.
내 집 앞 길에 쌓인 눈은
내가 치워야 하는 거였다.
아파트 살 때는 관리사무소, 경비아저씨가
모두 해주던 일이라 몰랐던 것이다.
그거 20분 했다고 등에서 땀이 났다.
남편에게 깨끗이 치워진 길을
엄지 척 사진과 함께 찍어 전송하고
아래 이런 코멘트를 달았다.
오. 운. 완 b!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며칠 잠잠하다
그다음 주에도 눈은 종종 왔고
2월까지 계속 내렸다.
예전엔 눈이 며칠이나 오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이젠 밤새 눈이 얼마나 오는지를 체크해야 했다.
우리 집 앞에 차들이 지나가기 전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기 전에 치워야 한다.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차가 한번 지나가면
타이어에 눌린 눈은 안 쓸린다.
날이 따뜻해진다면
낮에 그 눈이 녹을테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강추위가 계속되는 기간 동안
눌려 못 치운 그 눈은 얼음덩어리가 된다.
얼음덩어리 위에 쌓인 눈은 더 위험하다.
임산부인 나를 대신해
남편이 출근 전 눈을 치우려 노력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남편 출근시간 전에만 내리는 게 아니었다.
내가 치워야 하는 날도 늘자,
넉가래를 번번이 빌리러 가기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빗자루로 치우는 건 힘들어서
철물점에서 넉가래를 하나 사 왔다.
이게 뭐라고 기뻤다.
겨울철 주택살이 머스트 해브 아이템,
‘넉가래’가 우리 집에 들어온 후
눈 치우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내 집 현관문 밖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정돈해 본 일은
처음이었다.
‘분식집 물 처럼,
주택살이에도 셀프가 있구나!‘
그러나 셀프서비스는
눈 치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