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구멍을 채우는 일
앞에도 한 차례 등장한 우리 집 식세기 이모님이 다시 파업에 들어가셨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라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보다가 결국 1544로 시작하는 서비스센터에 구조 요청을 했다.
3분남짓 대기한 끝에 친절한 상담사분과 연결이 닿았다. 막상 연결이 되고 보니 어떤 것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턱 막혔다.
“어… 제가요. “
머뭇거리는 내 말에 상담사분은 친절한 인사를 다시 한번 건네왔고 숨을 한번 고른 뒤 얘기했다.
“식기세척기를 사용 중인데요, IE 메시지가 뜨더니 세척 중간에 식세기가 멈췄어요.”
별 것 아닌 이 말이 왜 퍼뜩 안 나왔나 모르겠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뭐라 말할지 미리 생각해 두고 전화를 해야겠다. 상담사분은 IE에러라고 지칭하며 급수이상이라 했다. 모델명을 불러달라는 말에
“모델명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고 되물었고 안내를 받고 1분여를 찾은 끝에 깨알 같은 글자로 적힌 모델명을 불렀다. 상담사분은 출장기사님이 다음 주 월요일에나 방문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서비스 예약을 해 두고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기사님이 집에 오셨다.
묵직해 보이는 가득 찬 배낭을 메고 웃는 얼굴로 등장한 기사님은
“IE에러가 뜨셨다고요?
IE에러 원인은 세 가지가 있어요. “
라며 설명을 해 주셨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일단 이번에 급수펌프를 교체할 것이고, 그래도 추후 또 IE에러가 뜨면 그때는 다른 부속품 두 개를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사님은 일 시작 전, 물이 많이 샐 수 있으니 안 쓰는 수건 대여섯 개를 가져다 달라하셨다. 물 흡수가 잘 되는 광목 수건 여섯 장을 얼른 가져다 드렸다.
부속품 교체는 식세기가 든 부엌장 걸레받이를 뜯어내고 식세기를 빼서 부속품을 교체하고 다시 넣는 과정을 거치면 됐다. 이렇게 적고 보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우리 집 부엌장이 무언가 잘못 설치됐다는 것! 걸레받이가 꽉 끼여 빠지지 않았고, 식세기가 들어간 위치의 앞쪽과 안쪽의 폭이 달랐다. 제거 과정에서 부러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후 겨우 떼 낸 걸레받이는 부엌장에 짓눌려 있었다. 겨우 걸레받이를 제거하고 나니 이번엔 식세기가 빠지지 않았다.
문득 식세기 설치 할 때도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게 생각났다. 그 기사님도 앞 폭과 안쪽 폭이 다르다고 했다. 꽉 낀 식세기를 겨우 빼내고 순식간에 부품교체가 완료됐다. 다음 문제는 빼낸 식세기를 넣는 일이었다. 기사님의 힘들어하는 끙끙 소리와
“어휴, 이거 안되네.” 혹은
“어우”
하는 나직한 혼잣말이 되게 큰 소리처럼 들렸다. 내 집인데 좌불안석 어쩔 줄 몰랐다. 최대한 일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시야에 닿지 않고, 말소리는 바로 들리는 위치에 자리 잡고 앉아 기다렸다.
사실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긴 했다. 시간이 꽤 걸린다 생각하긴 했지만 끝나고 보니 한 시간쯤 지나 있었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된 후 기사님은 떠나셨다.
기사님의 노고덕에 우리 집 식세기 이모님은 비로소 다시 부활하셨고, 언제 멈췄냐는 듯 다시 활기차게 그릇을 세척하셨다. 오랜만에 뽀득하고 따뜻하게 세척된 그릇을 보니 안도감과 편안함이 밀려왔다.
역시 식세기 이모님 최고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각종 생활가전과 관련해 서비스를 신청하고, 약속을 잡고, 수리를 받느라 낯선 이를 대면해야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이사할 때 인터넷, 가스기사님, 그 외에 보일러, 세탁기, 식기세척기는 물론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정수기도 그에 해당한다. 그분들은 생업을 하는 중인데, 그 생업의 과정 옆에 멀뚱히 서 있게 되는 순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적하지 않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걸까?’
‘방해되니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걸까?’
‘그냥 내 할 일 하는 게 나은가?’
사실 말을 건다 해도 처음 본 분에게 딱히 할 말도 없다. 그렇기에 그런 순간은 우물쭈물, 미어캣처럼 목을 빼고 기다리다 가시는 길에 후다닥 작은 간식을 챙겨 드리고 마무리된다. 어색함을 최대한 표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아마도 모두 다 티가 났을 것이다.
‘좀 자연스러울 수는 없었니, 나야?! ’
이게 좀 아쉽다.
한 해, 두 해 이런저런 경험이 늘 수록 허술했던 내면의 구석구석이 하나씩 채워져 가는 것 같아서 나이 먹는 것은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낯선 사람과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 아마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