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과의 협업 과정에서 생긴 일. 그러니까 0의 갯수가 중요한 거라고
오늘, 실수계의 메인디쉬 하나를 고백한다. 며칠이나 베개를 눈물로 적셨던 나의 치욕스러운 실수.
(가끔 작가들 만나면 안주거리로 꺼내곤 하는데 그때마다 반응이 좋다.)
2019년, 나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작업만 하기에는 역시 주머니사정이 너무 빈약하니 이런저런 알바를 하던 차에, 지역문화재단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 왔다. 시민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내게 맡긴다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재단에서 미팅을 했다. 지하철역 고가 아래에 공연이 펼쳐지는데, 이 공연의 무대 백드롭과 이십 미터쯤 되는 지하철역의 교각 아래를 설치미술로 구성하는 작업이었다. 레퍼런스는 무려 삐까뻔쩍 자본의 결정체, 현대카드 디자인 전시.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내게도 큰 건수가 왔구나. 하지만 너무 아마추어처럼 좋아하진 말자. 표정관리해, 표정관리...(헤벌쭉)
설명을 마친 대리님이 종이에 내게 줄 수 있는 사업비를 말대신 글씨로, 휘갈겨 적었다. 그 금액은 무려 천 오백 만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금액도 프로젝트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기에 마냥 기뻤다.
나는 나를 믿고 큰 프로젝트를 맡겨 주었으니,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나한테 남는 것 없이 사업비를 다 지출해서 재단을 만족시키면, 또 다른 기회가 분명 올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기획안을 써서 재단에 제출했고, 재단은 삼십만원 쯤 추가로 보태 주겠다고 했다. 현대카드 디자인 전시에 뒤지면 안된다, 하는 마음에 공간구조물 제작과 LED 전기공사, 무대백드롭까지 야무지게 준비해 놓고 드디어 행사 이틀 전. 재단에서 계약서를 쓰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계약서를 왜 여태 쓰란 말을 안 했지. 싶었지만 뭐,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읽으며 손이 벌벌 떨렸다.
계약서엔 천 오백 만원이 아니라 백 팔십 만원이 쓰여 있었다.
"어...천 오백 만원 아닌가요...?"
"네...??????백 오십이죠 작가님...재단은 돈이 없어요..."
싸늘한 정적이 사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이미 950만원 쯤을 사비로 지출해버렸고, 반품이나 취소가 어려운 상태였다. 안사람과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서로 어떡하지, 그러게 어떡하지. 라는 말만 몇 번 나누었다. 어쨌거나 이틀 뒤는 행사일이고, 나는 그걸 해내야 했다.
다음 날, 나는 어지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무대설치와 설치작업물 제작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다. 설상가상, 설치를 의뢰한 업체의 사장님은 약속한대로 구조물을 만들어 오지 않았다. 미완성인 채로 커다란 판넬들을 차에서 실어날랐다. 애초에 나는 디렉션만 주면 되는 거였지만, 사장님은 내게 페인트 롤러를 건넸고, 어쨌든 완성해내야 하는 내 입장에선 그걸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일할 사람은 너무 적었다. 해가 지고 밤 12시가 되었다. 큰 뼈대는 세웠지만 전기작업은 시작도 못했고, 무대 비슷한 것도 만들지 못했다. 사장님은 내일(행사당일)까지 어떻게든 마무리해 놓겠다며 나를 집에 보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쎄한 기분이 들어 새벽에 행사장에 나왔는데, 모든 건 미완성인 채로 사장님이 사라져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새벽 내내 천둥번개가 쳤다. 결국 아침이 와버렸다. 오후 두 시까지 모든 걸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 비는 세차게 내리고, 강풍주의보에 서 있기도 힘든 날씨. 사장과는 아침일찍 겨우 통화가 연결되었는데, 미안하지만 자기는 다른 볼 일이 있어 못오고 대신 직원을 한 명 보내겠다고 했다. 말이야 방구야. 하지만 나에게 이젠 화 낼 힘도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재단 관계자분들, 나, 안사람, 사장의 직원분, 자원봉사 온 대학생분들이 힘을 합해 해내야만 했다.
포장되지 않은 교각 아래의 땅은 진흙이 되었다. 한 걸은 내딛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 이런 땅 위에 무대 백드롭 벽을 튼튼히 세우는 게 쉽지 않아, 현장의 모든 남성이 벽 세우는 데 힘을 합쳐 낑낑대고 있었다. 반면 나는 20미터를 채울 구조물의 마무리작업-시트지, 전기작업-에 몰두했다. 전기작업이 잘못되어 감전되기도 하고, 몰아치는 비바람에 구조물은 이리저리 넘어지며 인간인 나를 덮쳤다. 온 몸을 다치고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도, 나는 벌떡 일어나 수습해야 했다.
이 와중에 대리님은 앵그리버드 표정으로 나를 따라다니며, "작가님. 전기부터 하셔야죠. 작가님. 저쪽부터 마무리하셔야죠." 끈질기게 닦달을 했다. 아니 나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잖습니까...? 잔소리 할 시간에 좀 도와주시죠. 라고 하고 싶지만 받아칠 여유도 힘도 없어 네, 네 하며 몰두한 결과, 작업은 행사 오픈 시간인 두 시가 되기 이십 분 전에 끝이 났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나는 계속 젖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오늘 하루 밀려드는 시민분들을 응대해야 했다. 이와중에 '시장님' 이 오셨다. 그를 향해 버선발로 뛰쳐 나가 마치 자기가 다 한 것처럼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대리를 보니 기가 막혔다. 자랑할 만 하지. 백오십만원이 아니라 천오백만원 짜리 프로젝트가 구릴 리 없으니까. 도시의 각 역사를 돌며 매달 행해지는 프로젝트였는데, 내가 봐도 그 중 역대급이긴 했다. 역대급 비쥬얼, 역대급 고됨, 역대급 멘탈 바사삭, 역대급 개인 호주머니 탈탈. 당일에 지출한 금액을 다 합쳐 결국 약 천만원이 증발하고 말았다.
나는 저녁 본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철수까지 함께 했다. 흙탕물을 흡수시켜 보겠다고 누군가가 신문지와 박스를 덮어 놓아서 그걸 일일히 손으로 긁어서 치우기도 했다.
하루종일 내 마음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금액을 잘못 본 건 어쨌거나 내 책임이니, 재단 관계자들에게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양아치 사장을 컨택한 데다, 최악의 날씨를 만나고 다치기까지 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여러 사람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미안한 건 반려인이었다. 형편없는 실수로, 없는 살림에 오히려 마이너스를 가져왔으니까.
한편으론 대리님이 글씨를 날려 쓰지만 않았어도, 레퍼런스로 현대카드 뭐시기를 보여 주지만 않았어도 내가 뭐에 씌인 듯 숫자를 잘못 보지 않았을 텐데. LED범벅된 엄청난 규모의 내 기획안을 보고 절대 백오십만원으로 안될 것을 알았을 텐데 왜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지. 계획서를 행사 이틀 전에 쓰게 하지만 않았어도. 하는 억울한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장 힘든 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나는 며칠을 앓아 누우며 눈물로 베개를 적신 후에야 간신히 웃을 수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맞는지, 지금이야 반려인과 웃으면서 "숫자를 잘 보라고~숫자를!" 하며 농을 친다. 지난 오싹한 경험이 나를 조금이나마 성장시켰을까? 성장했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해. (계약서는 무적권 미리미리 요구하자. 숫자를 잘 보자. 특히 뒤에 0 이 몇 개인지 잘 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