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정 Oct 06. 2021

디저트 천국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간단한 음식을 뜻하는 단어: 후식, 디저트, 데세흐Dessert. 디저트의 어원은 치우다/정리하다를 뜻하는 프랑스 단어에서 나왔다. 식사 시간에 적어도 한 시간을 투자하는 전통 프랑스식 코스에서 디저트는 마지막에 달콤한 행복을 주기 위해 설계되었다.


 디저트가 훌륭하면 앞서 나온 요리가 실망스러워도 식당에 대해선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는 어느 심리학 연구 결과가 나올 만큼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과는 중요하다. 다사다난했던 요리의 행렬 끝에 등장하는 달콤한 주인공인 셈이다. 디저트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신화를 믿고 있는 게 아닐까. 거대한 배추와 아보카도와 칵테일 새우가 빽빽이 자리 잡은 숲을 지나 황금빛 버터 갑옷으로 무장한 스테이크 마왕을 물리치고 유황 냄새가 나는 치즈 강을 건너 도착한 장소에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답고 달콤한 디저트를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는 신화를.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나 역시도 그런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 달콤한 디저트가 주는 쾌감은 매우 강렬하다. 부드럽고 경쾌한 리듬을 가진 크림과 견고하고 달큼한 리듬의 카라멜이 조화로운 밀푀유,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녹이는 밤크림과 풍부한 우유 크림에 바삭한 프렌치 머랭을 곁들인 몽블랑, 입안 가득 퍼지는 향기로운 장미향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스파한까지. 은유적으로, 목숨을 걸고 찾아가 구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수많은 디저트가 도처에 존재한다. 수많은 디저트를 구하기 위해선 운동이 필수인 것은 비유가 아니고 현실이지만.


 프랑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대부분 디저트를 먹지 않으면 식사가 아직 안 끝났다고 말한다. 레스토랑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크렘 브륄레나 플레이팅 디저트, 레몬 타르트를 챙겨 먹거나, 피에르 에르메나 시릴 리냑 등 유명 제과점에서 사 온 디저트를 사서 집에서 먹거나, 정 안되면 맥도날드에 가서 밀크 쉐이크라도 먹는다. 주목받는 파티시에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고 유명 제과점은 개장 전부터 줄을 서야만 원하는 제과를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를 디저트 천국이라 할만하다. 


 디저트 천국은 한 단계 높은 경지를 향해 가는 중이다. 예술로서의 패션을 뜻하는 오뜨-꾸튀르 Haute Couture처럼 예술로서의 제과를 지향하는 Haute Pâtisserie를 추구하는 제과점이 늘어나는 추세다. 형태를 남기지 않는 소비를 지향하는 제과에 장인 정신에 가까운 노력을 들이는 파티시에를 보는 일은 때로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제작에 하루 이상 소요되는 디저트도 있다. 꽃이 곧 질 것을 알기에 그 순간 온 힘을 다해 피어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필연적으로 입 속으로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보석처럼 스스로 빛나는 제과의 모습 역시 아름답다.


 프랑스로 제과를 배우러 온 이유는 그러한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게 제과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삶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 먹어도 그만 먹지 않아도 그만인 것. 굳이 살아가는 데 필요 없는 것. 이러한 관점은 비단 제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건축이나 미술이나 인테리어에도 적용된다. 굳이 의자가 예쁠 필요가 있어? 굳이 유명한 건축가의 건물이 필요해? 굳이 미술을 보러 갈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런 것들을 찬미하고 향유하는 문화가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어딘가에서는 제과 구성을 연구하기 위해 며칠을 투자하고, 어딘가에서는 등받이 각도를 정하기 위해 수십 명이 회의를 하고, 어딘가에서는 원하는 벽돌 질감을 얻기 위해 장인을 찾아 헤매고, 어딘가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화가 전시회를 방문해 감격한다.


 인생은 때로 쓸 데 없는 일이 필요한 게 아닐까. 타인이 뭐라고 해도 스스로에게만은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달콤한 디저트나 예술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 등은 눈에 보이는 이득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소모는 마음을 달래준다. 그런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대중을 감동시키는 무언가는 대부분 그런 일에서 나온다. 


 프랑스는, 특히 파리는 그런 점에서 쓸 데 없는 일을 총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은 지 200년이 넘은 승강기 없는 옛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도시 개발을 하지 않고 구매하는 비용보다 수리 비용이 더 많이 나가는 20세기 초반에 나온 자동차가 즐비하고 예술 전시를 위해 교통량이 가장 많은 교차로를 주말에 폐쇄하고 여러 가게와 레스토랑이 직원 휴가를 위해 여행 성수기인 여름에 한 달씩 문을 닫는다.


 소설과 제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쓸 데 없을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에서 위안을 받는다. 소설과 제과를 통해 나는 어떤 길로 나아가게 될까. 이러한 고민은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는 몰라도 우리 대부분은 끝내 행복해지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앞서 언급한 신화처럼 여러 단계를 끝내고 마지막에 달콤한 디저트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샐러드 숲과 악당 본식을 물리치고 치즈의 강을 넘어서야 만나게 될 디저트. 우리 모두가 그 행복한 삶 속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