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작년 이맘 때 쯤 거실 책꽂이에서 먼지가 쌓인 책을 꺼내 읽었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이 전해 주는 그 막연함이 무엇인지 몰라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채 그대로 다시 책꽂이에 꽂아두었다.최근에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를 읽으며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서사‘에 대한 관점들이 모두 연결되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읽는 내내 떠올랐다. 내가 느꼈던 그 막연함을 풀 실마리가 이 책에 있지 않을까?
‘뫼르소는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 뫼르소는 성실한 인물이고 규칙적인 데다가 근면하며, 회사 생활도 충실하게 했다. 조용하고 평범한 회사원인 인물이다. 그는 학생 때에는 야심이 좀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해야만 한 이후로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며 사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애도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저 어머니 나이를 모르고,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불편함이 싫을 뿐이다. 단지 죽음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갔다 오는 데 걸리는 시간, 지금 회사에 알려야 하는 번거로움 등의 현실적인 문제만을 고민한다.
뫼르소에게는 죽음만 의미가 없는 게 아니다. 여자 친구 ‘마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뫼르소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뫼르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창고업’을 하는 상대방이 원하면 그저 친구하자고 하는 식이다. 거기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런 뫼르소가 뜨거운 태양 아래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을 쏘며 친구 ‘레몽’의 일로 살인을 하게 된다.
뫼르소는 자신은 원래 감정은 뒷전이고 육체적인 욕망이 먼저라고 말한다. 즉,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에 이방인이었던 셈이다. 감정에 이방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삶에서도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조차도 의미를 두지 않으니 말이다. 심문을 받는 동안에도 뫼르소는 심문에서조차도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재판관, 검사,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뫼르소이지만, 뫼르소 본인은 정작 그것을 관망할 뿐이다. 심지어 검사가 사건을 파악하는 방식이 아주 명쾌하다고 판단하기까지 한다.
뫼르소는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든가 오늘 일, 또는 자신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정스럽게 대하거나 호의를 보이거나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도, 삶에도, 재판에도 이방인이었던 뫼르소는 자신의 친구 ‘셀레스트’가 증인으로 나와서 자신을 위해 변호해줄 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껴않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 그도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수용한다. 분노를 하며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감정들을 쏟아낸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서야 죽음에 대해 성찰한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 주고 희망을 없애 버리기나 한 듯 온갖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두었다.
뫼르소는 그저 살았다.
그저 장면이 바뀌고, 사람들이 오고 가고 그게 다였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지는 날이며 의미도 없는 단조로운 연속적 나열에 불과하다. 그저 시간과 날의 나열이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4월, 5월, 6월, 1924년, 1925년, 1926년. 세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머니의 죽음조차도. 사랑조차도. 여기서 근무하든 파리에서 근무하든. 더 나은 미래의 직장이든 아니든 말이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이다.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몰입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유의미해 보인다. 이러한 의미 덕분에 자신의 삶에 안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방인의 소설을 통해서 감정을 돌보고 성찰하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