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살던 집을 팔았습니다. 평생 살면서 우리가 마련한 첫 내 집이며, 새집이고, 아직도 너무나 아끼는 그런 집입니다. 그럼에도 우린 이 집을 팔았습니다. 팔 수밖에 없었다고 하기엔 생활의 극적인 변화 또한 없었습니다. 평범히 하루를 지내 온 우리의 집을 그렇게 반나절만에 팔고 말았습니다.
석촌동 투룸빌라 신혼 시절
저의 20대는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하며 회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20대 초반, 여자 혼자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처음 상경하여 지낼 곳을 구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돈으로 머물 곳을 구해야 했기에 '집(house)'이라는 개념보단 '방(room)'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위주로 물색하게 되었습니다. 학원 앞 고시원, 대학로 반지하, 옥탑방 등을 전전하며 몇 년을 보냈습니다. 이후 회사를 옮기며 역삼동, 신천동 등 단기 임대 등을 거쳐 최종 석촌동에 원룸을 구하였습니다. 석촌동 원룸에서는 5년 정도 꾸준히 지냈습니다. 공원, 석촌호수, 잠실롯데백화점, 지하철, 동서울터미널 등 생활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원룸이지만 옮기지 않고 오래 살았습니다.
이후 남편을 만나 결혼할 때 남편과 둘이 모은 돈 위주로 집을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둘이 모은 돈으로 집과 혼수, 결혼식 등을 진행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욕심부리지 않고 적은 돈에서 구할 수 있는 집과 적당한 수준의 혼수와 예물, 결혼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첫 신혼집은 석촌동 투룸빌라였습니다. 기억하기엔 전세 1억 4천만 원 정도로 필로티 구조 건물의 2층의 한 호실이었습니다. 큰 방 하나에 작은 방 하나, 작은 부엌이 다였지만, 저와 남편은 함께 살게 된 집이라고 열심히 쓸고 닦으며 신혼의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덕분에 결혼 1년 만에 큰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보니 막상 이 작은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2층이라 창문엔 감옥 같은 방범창이 있었고, 이 방범창이 저를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다른 둥지를 찾으러 부동산을 물색하였습니다.
위례신도시 상가주택 시절
제일 먼저 찾아간 부동산은 저희 신혼집을 구해준 동네 부동산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서울 신축 빌라를 매수할 것을 권하면서 서울 신축 빌라를 수도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2억 5천에서 2억 7천만 원선의 서울 석촌동, 송파동의 신축빌라를 둘러보며 매수를 추천하셨지만, 당시 이제 막 개발 중이던 위례신도시로 저희 부부는 눈을 돌렸습니다.
당시 위례신도시 아파트들은 대부분이 분양이 완료된 상태였고, 몇 억이나 하는 분양가는 우리 부부를 더욱 기죽게 만들었습니다. 아파트는 좀 더 돈을 모은 다음 가기로 하고, 상가주택의 투룸, 쓰리룸 구조의 전셋집을 알아보았습니다. 2억에서 2억 7천만 원 정도면 깨끗한 신축 주택이 가능했고, 서울 신축 빌라 매수 대신 위례 상가주택 전세로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대출금액도 기존 3000만 원에서 1억 1천만으로 커져 우리 부부에겐 이마저도 도전이었습니다.
부동산에 무지하기도 했고, 겁도 났고, 당장 아이까지 키우려니 대출도 무섭고, 매수 보단 전세 한번 더 살면서 상황을 지켜보자 했습니다. 다행히 새로 이사 간 집은 동네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건물이라 자부심을 느끼며 더욱 쓸고 닦고 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덕분에 큰 아이 출산과 육아를 하며 둘째 아이까지 생기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복덩이를 임신하자마 또 저는 둥지에 대해 깊은 고민으로 흔들렸습니다.
이제 아이 둘을 낳고 키우게 될 텐데 매번 전세로 이사 다닐 수 도 없는 형편이니 작은 둥지라도 내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습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부동산이라곤 1도 모르던 저희 부부가 둘째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향 후 나오는 아파트 분양에 대해 모조리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혼 3년 이내, 아이 둘, 신혼특공 아파트 당첨
다행히 우린 신혼 3년 이내의 아이 둘이라는 막강한 카드가 있었습니다. 아이 둘은 임신도 포함으로 임신증명서(임신확인서)로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신혼특공이 7년이지만 당시는 3년이었고, 소득구간도 해당되어야 했기에 나름 분석이 필요했고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청약을 바로 하였습니다.
당시 청약이 나올 아파트는 순서대로 여러 아파트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살고 싶지만 분양가가 높은 아파트, 평수가 넓지만 지하철역이 없는 아파트, 지하철은 있지만 집이 작은 아파트 등 여러 아파트 중에서 저흰 출퇴근을 위해 지하철이 있지만 돈에 맞춰 작은 평수로 청약하였고, 그렇게 신혼특공으로 당첨되었습니다.
당시 분양가는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있는 분양가는 아니었지만, 대출이라는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도하였습니다. 당시는 2~3%대의 저금리 기조로 분양가의 70%까지 대출을 받았습니다. 30년 상환으로 대충 계산해도 약 2억 원이라는 이자비용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딱 2억 원만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양가 대비 2억만 올라도 이자비용이 빠지니 그럼 됐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사에 대한 부담 없이 편히 지낼 수 있는 내 집 마련 목표가 이루어졌단 생각에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실입주까지는 공사기간이 남았지만, 결혼 3년 만에 청약을 통해 내 집마련을 했다는 안도감이 우리 부부를 더욱 기쁘게 했습니다. 아이 둘 육아하며 외벌이 살림은 빠듯했습니다. 여행도, 살림도 변변하게 하지 못했지만, 내 집이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저에게 집은 의미가 아주 컸습니다. 서울 상경하고 고시원부터 반지하, 옥탑방, 원룸, 투룸, 쓰리룸 등을 거쳐 생활한 저는 더 이상 남의 집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을 품어줄 안락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저에겐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고 그리고 기특한 일이었습니다.
(계속)
02. 집을 팔았어요. 왜?
두 번째 목차 대로 글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이 집에 대한 애정이 있었구나를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원래는 분양된 이 집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집을 팔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에 대해 작성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분양받을 당시를 떠 올리다 보니 나와 남편, 우리 가족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더군요. 내 손으로 쓸고 닦으며 지내온 신혼집들을 거쳐 지금 집까지 오게 되면서 저는 단한순간도 집에 대한 애정이 없던 적이 없었음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집이라는 공간, 집이라는 삶의 안식처에 마음 깊이 감사함을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02. 집을 팔았어요. 왜?'는 1부, 2부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1부는 이 집을 분양받기까지의 이야기, 2부는 입주 후 실생활 이야기로 나누어 연재하오니 꾸준히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