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합격이다.
마레지구의 숙소에서 중3 딸의 고등학교 합격소식을 접합니다. 원래 합격한 예고를 포기하고 다시 짧은 시간 준비한 결과입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혼자서 잘 준비한 친구가 대견합니다. 모든 강남 학부모가 그렇지는 않지만 8 학군의 사교육에 움찔할 때가 있습니다. 입시학원을 통해 자소서와 면접 강의를 받는 친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1시간씩 5번의 강의로 1번에 최소 20-30만 원이라 하니 적어도 100만 원의 비용이 드는 셈입니다.
처음 부모 노릇한답시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 상담을 해봤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아니다’ 생각했습니다. 15-6년간의 삶을 단 몇 분 통화하고 입시선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입시선생의 생각을 덧씌우면 그게 딸 Z의 인생인가? 그렇게 합격하면 행복할까?
부모와 학생의 간절함에 학원 사교육이 더해진 듯해서 편치 못했습니다. 결국 아이 스스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했어요. 그래서 합격소식이 더욱 기쁩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듣게 되니 엄빠의 맘도 친구만큼이나 행복합니다.
오늘 마음 편히 오르세와 로댕 미술관을 볼 수 있겠네요.
파리에 겨울비가 내립니다. 일기예보 상 온종일 맑은 날로 예보돼도 틀림없이 겨울비가 내리는 파리입니다. 파리의 겨울은 언제나 비입니다. 먼저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리볼리가에서 69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오르세 미술관 앞에 내립니다. 9시 30분, 역시나 미술관의 입구는 전 세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뮤지엄패스의 긴 줄입니다. 1월 2일 화요일, 루브르 박물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모두 휴관한 탓에 이곳 오르세로 관람객이 몰린 탓예요. 강풍이 불어와 우산도 소용없는 날씨입니다. 비에 흠뻑 젖고 온몸에 한기가 몰려들어도 줄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7번째 오르세에 왔지만, 언제나 설렙니다. 딸 Z는 이번 오르세 관람이 처음이니 오죽 설렐까요?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미술의 허리입니다. 1800년대 초중반까지의 미술품은 루브르, 19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퐁피두 센터에 전시되어 있죠. 중간의 인상주의와 그 앞뒤 작품이 이곳 오르세의 주요 작품입니다.
파리의 모든 미술관이 그렇지만 하루에 작품을 감상하기는 무리입니다. 특히 오늘같이 사람이 몰리는 날이면 감상이 아닌 관광의 수준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먼저 봐야만 합니다. 2024년 새해 행운일까? 반고흐 특별전이 열렸어요. 그가 생의 마지막을 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린 작품들만 1층에 따로 전시된 겁니다.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아 먼저 감상합니다. 하이라이트는 네덜란드 반고흐 미술관에 있던 <까마귀가 나는 밀밭>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권총으로 자살을 합니다. 황금색의 밀밭과 짙은 파란 하늘이 어지럽게 춤을 춥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마네를 필두로 세잔, 모네, 로트렉,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 카유보트, 모리조, 드가, 시냑, 고흐, 고갱까지의 작품을 보러 5층으로 올라갑니다. 역시나 오늘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군요.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교과서에서 보았을 작품이 온통 천지입니다. 그래서 때로 비현실적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미술 관람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됩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휴식을 갖는 것이 필수예요. 오르세의 시계탑은 유명합니다. 시계 앞 레스토랑에 앉아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와인 한잔은 필수. 먹다 보니 제법 낭만적입니다. ‘낭만'!!! 오르세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이겠다 싶습니다.
이번 큐레이팅은 고흐와 고갱을 한자리에 묶어 놨어요. 내가 세상 모든 그림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지금까지 이 앞에서 머문 시간만 합쳐도 족히 6-7시간은 될 것입니다. 이번에 중3 Z도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부모 욕심이겠다 싶어 잠자코 무언수행을 합니다. 스스로의 길은 스스로 찾아가는 법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군요. 오랫동안 그림을... 고흐를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사진만 남길 수밖에… 아쉽습니다! 이곳 파리에 다시 와야 할 이유입니다.
오후에 미술관을 나옵니다. 입장하려는 줄은 아침보다 두 배는 많아졌어요.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인상주의 작품을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오르세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어 잠시 들렸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쉽게 입장이 가능합니다. 날씨가 좋았다면 아름다운 비롱 저택의 정원을 감상했을 테지만 오늘은 갈 수 없어 아쉽습니다. 로댕의 작품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은 맥이 닿아있습니다. 카미유의 비극적 이야기를 듣다 보면 로댕이 한없이 밉고 한편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나쁜 남자인 탓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보며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조각품은 앞에서 볼 때와 뒤에서 볼 때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무조건 뒤태를 봐야만 합니다. 오늘 수많은 뒤태를 봤습니다.
P.S.
오르세 미술관을 입장하면 감상 전에 먼저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비록 압생트는 아닐지라도 와인 한잔과 함께 감상을 시작한다면 제대로 미술관을 즐길 수 있다.
뭐.. 제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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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녀 1월 3일 새벽 4시...이상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