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루브르는 자체가 파리다.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들립니다. 박물관을 관람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유리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루브르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박물관은 언제나 북새통입니다. 시크하게 박물관 따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언제 다시 오겠는가?라는 생각에 모두가 루브르를 향하게 됩니다.
순조로운 시작입니다.
여전히 파리는 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립니다. 샤틀레 역에서 지하철 M1을 타고 팔레 루아얄 루브르 역에 내렸습니다. 어제 오르세 입장을 대기하며 추위로 고생한 탓에 오늘은 유리 피라미드 아래 지하 입구에서 대기를 하기로 합니다. 입장 예약을 10시로 해놨지만, 30분 일찍 도착했습니다. 대기 줄이 어마 어마 하네요. 역시나 루브르입니다!
'오디오 가이드면 충분하겠지!'
겨울옷을 라커에 넣고 오디오 가이드를 빌립니다. 루브르를 몇 번 방문해 봤다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더라도, 체력이 안되면 이 큰 박물관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만 믿고 따라가기에는 박물관 자체가 너무 크기 때문인 것이죠.
순간 멘붕이 오고 방향감각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쉴리관, 리슐리외관, 드농관으로 나눠져 있고 저마다 전시되는 작품이 수만가지라 특별히 볼 것을 정해 놓고 보더라도 힘이 드는 장소인데 몇 번 와봤다도 자만해버린 결과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기를 얼마였을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승리의 여신 리케 상 앞에서 관람을 시작합니다. 역시나 루브르는 가이드 투어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작품의 배경을 듣고 쉽게 이해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루브르를 방문한 중3 Z에게 미안합니다. 그래도 있는 지식 없는 지식 토해내며 루브르의 1일 가이드를 해봅니다.
그랜드 갤러리를 따라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바조의 작품을 감상합니다. 물론 모나리자는 감상이라기보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엄청난 인파를 감상하는 재미가 더 컸지만 그래도 멀리서 나마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봉쥬~ 마드모아젤! 모나리자의 앞은 이곳에 올 때마다 변합니다.
처음 루브르를 방문했을 때는 나무 펜스 없이 그저 넘어가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만 있었습니다. 이후에 왔을 때는 나무 팬스가 세워졌고, 이번에는 나무 펜스 뒤로 또다시 가이드라인이 세워지고 입구와 출구를 따로 나눠놨어요. 일반통행이 된 것입니다. 모나리자 감상은 고사하고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 목표가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박물관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죠.
대신 가족들을 데리고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을 감상합니다. 루브르의 남자 모나리자도 통하죠. 워낙 유명한 그림인데 아무도 보는 이 없어서, 한참을 감상하고 다시 한번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동원해서 1일 가족 가이드를 합니다. 자세며, 표정이며 루브르의 큐레이터가 말한 대로 남자 모나리자인 겁니다. 1m 앞에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립니다.
카라바조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나폴리에 있는 작품들이 이곳 루브르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화가 중에 으뜸은 카라바조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예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가 꼭 찾아가서 보려 하는데 이번에 행운이 따라줘서 못 봤던 그의 작품 한 점을 추가로 보게 됐습니다. 더없는 행운입니다.
눈치 모르고 기분이 더없이 좋습니다...무언가 잘 풀린다 생각할 때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런데 딸 Z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랜 전시로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기 위해 이번 봄까지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굴에 보이는 실망과 아쉬움에 괜스레 미안해지고 ... 아쉬운 대로 Z가 보고 싶어 한 루벤스의 연작 <마리 드 메디시스>를 보러 리슐리외 관으로 서둘러 달려갑니다.
한참을 헤매고 걷고, 루브르의 직원들에게 묻기를 수차례... 분명 있어야 할 전시실 자체가 마법처럼 사라진 버렸습니다. 그래서 또 헤매고 헤매입니다. '뭐지? 멘붕이다.' 확인해 보니 이곳도 봄까지 복원작업이 들어가 그 커다란 전시실을 통째로 폐쇄해 버렸다고 합니다. 감쪽같이 문을 막아놓고 벽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찾을 내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오후 4시, 6시간 동안 멘붕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루브르 박물관을 빠져나옵니다.
여행은 언제나 아쉽습니다. 완벽하면 완벽한대로 비워져 있다면 비워진대로 그렇습니다. 때론 기대가 실망이 되기도 합니다. 기대의 다른 말은 그리움입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입니다. 어쩌면 기대가 뜻밖의 실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리움은 언제나 그자리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다시 다음 여행의 이유가 됩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기대했던 작품을 모두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중3 딸 Z를 보니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달래준답시고 한마디 건넵니다. '오르세 미술관 마네 <피리 부는 소년>을 6번 방문해서 한 번도 못 봤는데 이번에 봤잖아, 다시 파리에 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긴 거야! 다음에는 꼭 와서 보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지만...
중3 Z에게도 또 다시 파리를 와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P.S.
루브르 박물관은 가이드 투어가 필수입니다.
장기 여행자도 가이드 투어를 먼저 하고, 시간을 내서 천천히 홀로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루브르에서 길을 잃게 됩니다.
2024년 1월 4일, 새벽...이상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