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대치동 대신 파리나 갈까?
그래 오늘을 꼭 기억하기를...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는 동료 죄수들과 함께 더운 여름날 지붕에 타르 바르는 작업을 합니다. 은행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악명 높은 간수 장을 도와주고 포상으로 맥주를 선물 받습니다. 담벼락에 기대어 햇살 아래 죄수들의 맥주 마시는 모습을 행복한 시선으로 앤디는 바라봅니다. 어쩌면 한때 자유로웠을 일상을 그리워했거나, 짧은 순간 아름다웠을 자신의 지난날을 그리워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햇살이 좋습니다. 모처럼 파리 하늘이 파랗습니다. 기온도 제법 올라갔습니다. 예보를 보니 이번주는 한 주 내 내 따스하다고 합니다.
'마카롱은 뤽상부르 공원에서 먹어야 제맛이야!'
유명하다는 근처 마카롱가게에서 마카롱을 사들고 서둘러 생제르맹 데 퓌레를 지나 뤽상부르 공원에 가기로 합니다. 어쩌면 파리 살기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인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둘러보거나 시간에 쫓겨 숨 가쁘게 서두르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초록색 공원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오후를 보냅니다
공원을 뛰노는 꼬마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파리지앵
몇 년 전 나 역시 그러했듯 홀로 공원을 찾은 동양의 여행자
사진을 찍으며 시끌벅적한 어느 유럽의 배낭 여행자들
공원의 풍경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두 눈에 깊이 빠져 있는 연인들
힘겨운 걸음이지만 행복하게 두 손을 맞잡은 노년의 커플
이들 모두 커다란 연못 분수 둘러 오늘의 파리를 기억하고, 오늘의 시간을 추억으로 채워 갑니다
며칠 전 앉았던 공원 벤치에 다시 앉아 햇살 아래 눈을 감고 있자니 따사로운 햇살이 눈두덩이를 간지럽히며 일렁이고 일렁입니다. '뭐 듣고 싶은 거 없어?' 짝꿍은 주정뱅이답게 샴페인 슈퍼 노바 Champagne Supernova를... 중3딸은 원더월 Wonderasll 그리고 나는 돈 룩 백 앵거 Don't Look Back In Anger를 한곡씩 신청합니다. 그룹 오아시스의 노래들은 듣고 있자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오아시스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공통의 가수가 있다는 것은 무척 행운입니다.
'봄에 다시 오고 싶어 졌어' 파리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중3 딸은 다음 계절도 궁금해진 모양입니다 다시 파리에 올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녀가 앞으로 살아가며 그녀의 봄이 언제나 파리를 늘 꿈꾸며 함께 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오늘은 카페 레 뒤 마고 옆 카페 플로르를 찾았습니다.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하고 싶었지만 테라스에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습니다. 별 수 없이 실내로 들어가 자리에 앉습니다. 혹시 이 자리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대화를 나누던 자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분은 더없이 좋습니다. 들뜬 마음에 커피 대신 와인을 주문합니다. 헤밍웨이를 그리며 파리 생제르맹의 주정뱅이가 되어보겠습니다.
P.S.
사실 오늘 아침에 페흐라쉐즈 공동묘지에 갔습니다. 쇼팽과 에디트 피아프의 무덤을 보고 싶었습니다. 요 며칠 파리에 불어닥친 강풍으로 월요일에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마음 상합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와야겠습니다.
딸아이의 말처럼 계획대로만 되면 그게 무슨 여행이겠어요...
2024년 1월 23일 딸에게 오늘 또 배운 BOX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