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생은 나를 꿈꾸게 한다

* 출간 미공개 버전 *

by BOX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과거 쿡 QOOK 광고다. 옛날 광고라 잊혀졌지만, '집 나가면 개고생' 광고 카피만은 생생하다.


독립광고회사라는 해괴망측한 말이 있다. 아니, 광고회사면 회사지 ‘독립’광고회사는 또 뭔가? 우리나라만의 좀 특이한 구조다. 쉽게 말해 삼성,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계열의 광고회사가 아니라는 거다. 좀 웃긴다. 계열 광고회사를 인하우스 에이전시 In House Agency라 한다. 이것도 웃기다. 집안회사라는 거다. 대기업계열 광고회사는 다 인하우스 에이전시다. 그러니까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말하자면 지들끼리 다 해 먹는다는 거다.


좀 보자. 제일기획은 삼성, 이노션은 현대차, HSAD는 엘지, 오리콤 두산, 대홍기획은 롯데, 농심기획은 뭐 뻔하다. 대기업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계열사에 광고를 나눠 주거나 의뢰한다. 요즘은 좀 덜한다는데 나는 믿지 않는다.


암튼 이러면 광고가 치열해지지 않는다. '어이구! 내 새끼 내 새끼'하며 엄마가 떠먹여 주는 밥만 받아먹는데 어찌 경쟁력이 생기겠는가? 집안에만 있으면 배부르고 따스하겠지만 세상을 놀라게 하는 광고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광고가 국제 광고제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다. 물론, '배부르겠지. 등 따숩겠지' 그렇지만 꿈꾸는 광고인이라면 집 나가서 개고생하라 권하고 싶다. 그래야 성장한다. 그래야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제 독립을 꿈꾸며 개고생한 젊은 작곡가, 독립 광고인을 만나보자. 그 개고생은 무엇을 남겼을까?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는 광고인이 가져야 할 모든 소양과 덕목을 갖춘 광고인였다. 음악, 파티, 맛있고 좋은 음식, 술, 당구, 섹스, 도박에 빠져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하며 보냈다. 한량이다. 지금의 광고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마디로 아주 열정적 광고쟁이였다는 거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신이다. 궁정 하급 작곡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아들로 태어난다. 익히 잘 아는 천재다. 밥숟가락도 뜨기 어려운 세 살 나이에 이미 건반악기를 마스터한다. '못다 한 내 꿈을 이뤄줘!' 아버지는 모차르트 교육에 올인한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모차르트를 위해 6세부터 10년간 뮌헨 , 파리, 런던, 로마 등 여러 궁정을 돌며 연주 여행을 한다. 음악 신동을 광고할 속셈였다. 게다가 왕과 왕비, 귀족, 교황 앞에서 연주하고 다녔으니 모차르트 덕에 가족 생계도 한 번에 해결됐다. 소년가장인 셈이다. 명성이 쌓이자 이윽고 전 유럽에 걸친 아이돌 스타가 된다. 이 과정에서 8세에 첫 교향곡을 12세에 첫 오페라는 작곡한다.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다.


10년간의 유럽 투어를 마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이제 단순 신동이 아녔다. 직장인이 돼야 했다. 취준생이다. 아버지의 고용주인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가 된다. 어라?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유럽을 호령한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ia와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도 연주한 그다. 전 유럽에 걸친 아이돌 스타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취업 자리였다. 이유가 뭘까? 광고인답게 생각해 보자. '어머 어머 신기방기해라' 어린 꼬맹이가 복잡한 곡을 연주하니 세상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곳저곳 초대받았다. 그렇지만 나이 든 신동이란 있을 수 없다. 신동의 유통기한이 끝났다. 인기가 식어버린 거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의 취업환경은 어땠을까? 당시 음악가라 하면 대부분 궁정악사, 악장이나 교회 전속 음악가가 되는 게 전부다. 맞다. 계열 광고회사 소속의 광고인인 거다. 계열 광고회사는 고용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자기검열한다. 입맛에 맞춰줘야 한다. 세상을 놀래킬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최악의 조건인 거다.


대주교 콜로레도는 모차르트를 음악가가 아닌 단순 기능공 정도로 취급했다. 사사건건 모차르트의 음악활동을 간섭한다. 감나라 배나라다. 그렇다. 꼰대다. 게다가 연봉 수준도 형편없었다. 한때 우주 대스타, 전유럽을 누비며 월드 투어로 각광받던 모차르트 아니던가. 치욕였다. 흔히 우리가 겪는 일이다. 꿈이라도 주던지, 그게 아니라면 돈이라도 주던지. 맞다. 모차르트에겐 둘 다 없었다. 결국 사표를 던지고 음악과 예술의 도시 빈으로 떠난다.


빈에 도착한 모차르트는 이제 더 이상 왕궁이나 귀족들에게 굽실거리거나 자리를 구걸하지 않았다. 거침없이 ‘프리랜서 독립 작곡가의 길’을 선택한다.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 내 배알 꼴리는 대로 음악을 창작하겠다 선언한 거다. 전례 없는, 대담한 선언였다. 이 강렬한 메시지는 마치 시대를 관통하는 광고처럼 후배 음악가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베토벤, 슈베르트와 같은 음악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자유로운 영혼의 간지'를 보았다. 그렇다. 모차르트가 독립 작곡가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거다.



작곡과 돈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


그렇다면 빈에서 그의 삶은 어땠을까? 그가 누군가? 오스트리아가 낳은 우주대스타다. 우리는 안다. 어딘가를 접수하려면 그 동네 일진만 꺾으면 그만이다. 1781년 크리스마스 이브,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정에서 무치오 클레멘티 Muzio Clementi와 피아노 대결을 벌인다. 이탈리아 출신 클레멘티는 당시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즉흥 연주와 테크닉을 겨뤘다. 맞다. 쇼미더머니다. 배틀의 승자는 누굴까? 당연하다. 모차르트다. 황제는 은근히 모차르트의 손을 들어줬고 빈에서의 성공을 알렸다. 이제 겁날 게 없었다.


그의 음악이 연이어 성공한다. <피가로의 결혼>은 빈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모차르트가 방문한 프라하에서는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이제 모차르트의 음악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로 알려진다. 구경거리 신동이 진짜 음악가가 된 거다.


<피가로의 결혼>이 대성공을 거두자 프라하 오페라하우스는 그에게 다른 작품을 의뢰한다. 17세기 스페인의 전설적 인물, 바로크 시대 최고의 바람둥이이자 난봉꾼 한량인 돈후안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달라는 거였다. <돈 조반니>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최고의 작품이다. 뚝딱!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완성한다. 그렇다. 작곡이 제일 쉽다. 오페라가 대성공을 거두자 기세 등등이 된다. 대화를 보자. <돈 조반니>를 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인 광고주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모차르트 불러 묻는다. ‘어이! 모차르트! 음표가 거 너무 많은 거 아니오?’ 이렇게 타박하자 모차르트가 명카피를 하나 날렸다 한다.‘필요한 만큼만 넣었습니다. 폐하’ 캬! 간지난다. 모차르트다운 광고카피다. 모차르트와 당대 최고 권력자인 황제, 예술과 권력 간의 긴장 관계, 광고인과 광고주, 그 결과는 과연 어찌 됐을까? 맞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낭만을 얻고 흥행을 잃는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보수적이고 전통을 고수하는 빈의 특성 때문인지 빈에서는 만은 흥행에 실패한다.


어쨌든, 독립 작곡가로서 모차르트의 빈 진출은 성공적이었다. 부와 명성도 얻었고, 결혼도 했으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윗사람도 없었다. 오페라가 성공하고 작곡과 연주로도 충분한 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개고생이다. 왜일까? ‘로또 1등 1년 만에 거지되다’ 해외토픽에 나오는 이야기다. 딱 모차르트가 그랬다. 돈은 버는 족족 물 쓰듯 썼고 도박과 사치에 그 이상을 지출했다. 아무리 벌어도 계속 돈이 모자랐다. 게다가 아내 콘스탄체의 낭비는 더 심했다. 벌면 벌수록 더 가난해지는 마법에 걸린 거다.


자신이 쓴 진혼곡의 첫 관객이 된 모차르트


이러는 사이 결정적 의뢰가 들어온다. 레퀴엠이다. 레퀴엠 requiem 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 진혼곡이다. 죽은 이의 음악이란 거다. 이 의뢰가 모차르트를 죽게 만든다. 따라가 보자. 광고인으로 살다 보면 가끔 끔찍한 광고주를 만나게 된다. ‘월요일에 내용 확인할게요.’‘명절 지나고 편한 시간에 제안서 주세요.’‘여름휴가 끝나고 주시면 돼요.’점차 병약해지고 가난해진 모차르트에게 이런 광고주가 나타난다. 모차르트를 다룬 불멸의 영화 <아마데우스 1984>에서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경쟁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신분을 숨기고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요청한다. 의뢰한 마감 일정에 맞춰 완성해야 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결국 죽고 만다.


물론 영화적 허구이지만, 실재 1791년 7월 어느 날, 회색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모차르트에게 찾아와 작곡을 의뢰한다. 레퀴엠 바로 죽음에 대한 진혼곡이다. 모차르트 사후 그가 사실 아마추어 음악가인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란 게 밝혀졌다. 익명의 남자는 이 레퀴엠을 마치 자신이 작곡한 곡인 것처럼 하려 했던 거다. 이를 알리 없던 모차르트는 극도의 스트레스, 마감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으로, 식음을 전패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작곡에 매달리다 건강 악화로 그만 죽는다. 사망 직전까지 작곡에 매달렸던 거다. 자신이 작곡할 곡이 자신의 진혼곡이 될 줄도 모른 채.


그러니 갑들이여! 광고주들이여! 제발 그 선량한 웃음으로 ‘연휴 후에 편히 주시면 돼요’ 그러지 마시길. 광고인이 제작하는 광고가 자신의 진혼곡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1280px-Wolfgang-amadeus-mozart_1.jpg [그림5-1]모차르트, 1819, 바바라 크래프트
K626_Requiem_Mozart.jpg 모차트르가 자신을 위해 쓴 진혼곡, 제문이다. [그림5-2] 모차르트 친필 악보의 첫 페이지, 레퀴엠




*본 원고는 편집자와 논의하며, 최종 원고에서 뺀 비공개 버전입니다.


그림 출처

[그림5-1] [그림5-2]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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