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품이 뮤지컬, 진보하거나 진부하거나

* 출간 미공개 버전 *

by BOX

광고는 흥행업이다. 광고를 통해 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를 미칠 듯이 구매하게 됐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성공, 최고의 흥행이다. 하지만 한 번의 성공이 그다음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맞다. 연달아 대박 나기란 아프리카에서 핫팩 팔기, 북극에서 선풍기 팔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영화감독 봉준호가 대단한 거다. <살인의 추억><괴물><기생충> 시리즈 물이 아닌 전혀 다른 소재와 이야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연달아 흥행시키니 세계적인 감독이 된다. 그래야 아카데미를 받는 거다.


신박한 소재를 찾는 것도 머리가 터질 일이데, 어렵게 찾은 소재가 대중들의 마음을 홀딱 훔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1993년에 나온 ‘침대는 과학이 아닙니다’를 아직까지도 우려먹고 고와먹고 있는 거다. 찾기 힘드니까, 찾아도 흥행하기 어려우니까


진부하면 대중은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흥행업의 기본 원리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심리는 똑같다. 진보하거나 혹은 진부하거나, 흥행하거나 혹은 폭망하거나다. 성패의 갈림이다.


여기 대성당의 시대와 혁명의 시대를 이야기 한 위대한 광고인이 있다. 언제나 새롭고 드라마틱한 소재와 이야기로 흥행에 성공했다. 얼마나 대단한지, 글을 썼다 하면 뮤지컬로 만들어져 흥행 대박을 친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대가다.



빅토르 위고 1802-1885


그의 뒤를 2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따르고 있었다. 프랑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가 모인 하루였다. 당시 파리 인구가 230만 명였으니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빅토르 위고 Victor Hugo를 따른 거다. 나폴레옹의 죽음보다 더한 최고의 장례 행렬였다. 한 사람의 죽음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전체가 슬퍼했던 거다. 어찌 된 일일까? 얼마나 대단한 작가, 광고인, 흥행업자였기에 그랬던 걸까?

[그림6-1]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 빅토르 위고의 집

위고는 스위스 접경지인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군 장교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 막내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정부와 바람이 나자, 열성적 왕당파였던 어머니는 세 아들과 함께 파리로 와 자신도 열성적으로 애인을 만든다. 막장드라마의 향기다. 이런 영향인지 가업을 계승하듯 그 역시 훗날 대단한 바람꾼이 된다. 씨도둑 못한다.


어린 나이에 위고는 정치관과 가치관, 애인관이 서로 다른 부모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낸다. 빨간불과 파란불 사이에 오도 가도 못한 거다. 이때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이 바로 글쓰기다. ‘나는 샤토브리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 다짐한다. 캬~ 멋진 카피다. 14살 때다. 샤토브리앙 Chateaubriand? 우리에겐 고기나 와인으로 더 알려졌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다. 나폴레옹 시대의 위대한 작가이자 정치가였다. 이런 샤토브리앙 같은 대문호가 되겠다는 거다. 초등6학년이 '난 조정래, 박경리, 한강이 될 테다' 말하는 거다. 남다르다. 될성부른 나무다. 20대가 되자 프랑스 낭만주의를 이끌며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탄탄대로다.


29살에 드디어 완전한 흥행 작가, 스타 작가가 된다. <파리의 노트르담 Notre-Dame de Paris 1831>을 세상에 내놓은 거다. 그렇다. 우리가 아는 ‘노트르담의 꼽추’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파리의 노트르담

한 여자를 둘러싼 복수, 치정 로맨스


15세기말 파리, 중세와 대성당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프롤로는 아름다운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에게 정욕을 품는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주교다. 못된 빌런이다. 대성당 종지기인 외눈박이 꼽추 콰지모도를 시켜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다 실패한다. 붙잡혀 태형을 당한 콰지모도에게 물을 주는 에스메랄다. 그녀에게 홀딱 반하는 콰지모도. 콰지모도로부터 그녀를 구해준 근위대장 페뷔스는 약혼자가 있지만 에스메랄다의 몸을 탐하려 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나쁜 놈들 뿐이다. 질투심으로 페뷔스를 죽이고 혐의를 에스메랄다에게 뒤집어 씌우는 프롤로. 교수형에 처해진 그녀를 구해 대성당으로 달아나는 콰지모도. 다시 간교한 술책으로 ‘나랑 살래 아님 죽을래?’ 말하는 프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에스메랄다. 그녀의 교수형을 대성당 탑 위에서 웃으며 즐기는 프롤로 그리고 콰지모도의 속 시원한 응징

IMG_5491 2.jpg 파리의 노트르담의 가고일이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콰지모도는 이곳 종탑의 종지기였다 [그림6-2] 노트르담 대성당 종탑 위

빅토르 위고의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이 이야기는 출간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둔다. 흥행 블록버스터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 전역에서 대히트를 쳤다. 영국에서는 <노트르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로 불리게 된다. 흉측한 괴력의 괴물, 아름다운 여인, 파리, 대성당, 중세 판타지, 치정과 살인, 빌런, 모정, 이룰 수 없는 사랑… 대중이 흥분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로 가득했으니 초대박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림6-3]콰지모드에게 물은 물을 주는 에스메랄다, 빅토르 위고의 집

소설의 대박 성공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운명도 바꿔놓는다. 몇 백 년간 방치되고 퇴락한 성당에 대중적 관심이 쏟아졌다. 천덕꾸러기 12세기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파리 전역에서 벌어졌다. 당시 성당은 더 이상의 황폐가 어려울 만큼 황폐해진 상태였다. 도시 계획가들은 대성당의 철거를 심각히 고려중였다. 천만다행으로 1845년, 지금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복원된다. 이게 다 소설덕이다. 빅토르 위고의 대성당 보존 캠페인 광고가 대흥행한 결과였다. 2019년 화재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첨탑과 목조 지붕 등이 붕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위고가 알면 복장 터질 일이다.


영화처럼 뮤지컬도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이다. 큰돈이 들어가니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맞다.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니다. <파리의 노트르담>이 뮤지컬로 나온 이유다. 이 뮤지컬은 1998년 초연 이후 20년간 전 세계 20개국에서 1,5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다. 이게 다 빅토로 위고 덕이다. 대단하다.



1920px-La_Libert%C3%A9_guidant_le_peuple_-_Eug%C3%A8ne_Delacroix_-_Mus%C3%A9e_du_Louvre_Peintures_RF_129_-_apr%C3%A8s_restauration_2024.jpg [그림6-4]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외젠 들라크루아, 루브르 박물관

어쩌면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을 보고 온 날일지도 모른다. 위고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자신의 집 창 밖으로 보주광장 Place des Vosges을 내다봤다. 1848년 집 앞 보주광장에서 벌어진 2월 혁명으로 국회의원이 된 그다. 허나 6월 혁명에서 급진파와 노동자가 봉기했을 때, 바리케이드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이때 정부의 무차별 무력진압에 충격을 받는다. 보수와 진보적 사상 사이에서 고뇌한다. 빨간색이냐, 파란색이냐. ‘왜 무고한 민중들만 희생되나?’ ‘국가란 대체 뭔가?’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 각성한다.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나폴레옹 3세 황제로 등극한다. 반의회 헌법을 제정하자 위고는 그를 프랑스의 반역자라 선언한다. '에잇! 꼴 보기 싫다!' 생각한 위고는 '스스로' 벨기에와 건지 섬에서 망명생활은 한다. 무려 19년이다. 왜일까? 사실 1859년 나폴레옹 3세는 위고를 사면했다. 자존심과 신념 빼면 시체인 그다. ‘황제의 알량한 동정 따윈 개나 줘버려’ 거부한다. 망명지에 그냥 남는다. 참 대단한 간지다.

[그림 6-5]위고의 집 창밖으로 보주광장이 보인다.

19년의 고독한 망명생활, ‘이제 남는 건 시간뿐! 다시 흥행작을 창조하리라’ 뜨거운 창작열로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1862>을 집필한다.


사실 소설을 처음 구상한 것은 1830년대부터라 한다. 그는 사회의 비참함, 불의, 관용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1839년 위고는 프랑스 남부 툴롱을 방문, 감옥과 ‘죄수의 마지막 날’에 관한 메모를 남긴다. 죄수의 이름은 장트레장 Jean Tréjean였다. 꼼꼼하다. 그리고 1845년 집필을 시작한다. 장트레장이 장발장이 되기까지는 꼬박 17년이 걸린다. 맞다. 브랜딩 광고로 보나 성명학으로 보나 장발장이 장트레장보단 훨씬 좋아 보인다.


우리가 빵을 훔친 죄로 감옥살이 후 은식기를 훔치다 신부의 도움을 받아 회개한 남자 이야기로만 아는 <장발장>. <레미제라블>은 실은 총 2,598페이지, 655,478 단어, 5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그렇다. 분량 깡패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함께 인류사에 가장 긴 소설 Top 10 랭커다. 그렇다. 빵만 훔친 게 아니란 얘기다.


빅토르 위고는 역사, 정치, 건축, 법률, 지리, 전쟁사 등 모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가진 인물였다. 좀 재수 없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전문분야를 다뤘다. 투머치토커인 거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 거대한 서사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그의 작품이 영화와 뮤지컬로 흥행되는 이유다. 여기에 당시 <크리스마스 캐럴>의 찰스 디킨스나 <삼총사>의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들은 출판사로부터 단어수로 원고료를 책정받았다. 책이 아주 아주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뭐 스스로 선택한 망명이지만 먹고는 살아야 했을 테니까.




레미제라블

한 남자의 개과천선, 장편 낭만 시대극


2,598페이지 긴 이야기를 짧게 따라가 보자. 장발장. 젠장! 빵을 훔친 죄가 이렇게나 크다. 19년간 복역한다. 전과자라 멸시받는 그를 하룻밤 재워주는 신부. 은식기를 훔친다. 배은망덕이다. '옛다. 이것도 가져가라' 은촛대까지 받자 회개하고 새 삶을 결심한다. 회심의 개과천선! 2차 전직이다. 보석 사업으로 대박 난다. 이제 뭘 할까? 맞다. 신분세탁이다. 시장까지 된다. 딸을 위해 몸을 팔다 병에 걸린 팡틴, 알고 보니 장발장의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난 미혼모다. 못된 빌런에게 맡겨진 어린 딸을 부탁하며 죽는다. 이때, 시장이 장발장이라 의심하고 추적하는 원칙주의 경찰 자베르. 학대받던 가엾은 꼬마 코제트, 장발장과 파리에서 새 삶을 살아간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됐다. 잘 자라주었구나! 이쁘다. 학생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진다. 자베르의 추적은 계속된다. 혁명이 난다. 마리우스와 친구들이 혁명에 앞장선다. 모조리 죽는다. 코제트를 위해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구한다. 파리의 하수도로 도망치는 장발장. 또다시 자베르의 추격. 따돌린다. 결국 독거노인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 쓸개 다 빼주고 죽는 희생, 용서의 공익광고 대서사시다.


연쇄 흥행 청부업자

'대박이겠는걸!' 1862년 빅토르 위고는 스스로 흥행 대박을 예감한다. 출판사에 <레미제라블>의 줄거리나 시놉시스, 요약본조차 내보내지 못하게 한다. 독자들이 궁금해 미치게 만들 심사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같은 스포일러를 일체 금한 거다. 그가 누군가? 이미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성공한 흥행작가다. 어떻게 마케팅하고 어떻게 광고할지 누구보다 잘 안거다. 천상 광고쟁이다. 요약본 대신 이런 광고를 내보낸다. ‘<파리의 노르트담>으로 고딕 세계를 창조한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로 다시 현실을 창조하다!’ 캬~ 멋지다. 여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글로벌 동시 개봉처럼, 유럽 전역에 동시 출간을 한다. 맞다. 160년 전 마블의 어벤저스인 거다.


런던의 출판사 ‘허스트 앤 블랙캣 Hurst and Blackett’ 과의 일화도 유명하다. 휴가 중 런던에서의 흥행이 너무나 궁금했던 위고는 <레미제라블>의 반응을 전신으로 묻는다. ‘?’. 출판사는 위고에게 답신을 보낸다 ‘!’ ‘내가 쓴 <레미제라블> 독자 반응이 좀 어때요???’, ‘네, 반응이 아주 아주 초대박예요!!!’ 의미였다. 캬~ 이것마저 멋지다. 역사상 가장 짧은 편지와 답장이다. 그렇다. 빅토르 위고는 이미 숏폼 중독자였던 거다.


빅토르 위고는 가난한 전과자의 인간승리,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신데렐라 스토리, 형사 추리물, 케이퍼 범죄무비, 로맨스, 전쟁서사, 서스펜스, 액션을 버무려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창조한다. 1830년대 프랑스를 살아가는 이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 Les Misérables'의 이야기가 또다시 대성공을 거둔다. 흥행의 연금술사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인지, 일제강점기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시인 최남선은 <레미제라블>의 최초 번역본으로 <너 참 불쌍타>를 출간한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주 직관적 카피다!


이처럼 지구 반대편까지도 열광했으니 뮤지컬로 나올 수밖에 없는 팔자다. 당연하다. 1980년 뮤지컬로 만들어진 레미제라블은 44년째 공연 중이다.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 사상 최장 공연 작품이며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중 하나다. 얼마나 흥행했을까? 전 세계 55개국 약 13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봤다. 벌어들인 수익만 30억 달러다. 약 4조 원이다. 빅토르 위고, 이 정도면 연쇄 흥행 청부업자다.

IMG_0686.HEIC 오늘도 전세계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빅토르 위고의 뮤지컬이 공연된다 [그림 6-6] 런던 웨스트엔드, 손드하임 극장



쇼 머스트 고, 흥행은 계속된다


19년의 망명생활을 마치기 1년 전 위고는 <웃는남자 L'homme qui rit 1869>를 출간한다.


웃는남자


17세기, 청교도 혁명 후 영국, 어릴 적 앵벌이로 기형적이고 기괴한 웃는 얼굴이 된 주인공 그윈플렌 Gwynplaine과 앞을 보지 못하는 연인 데아 Dea, 둘의 보호자 우르수스 Ursus의 가족의 탄생과 방랑 그리고 잔인하고 권력에 굶주린 당시 왕권과 귀족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출간과 함께 위고는 스스로 <웃는남자> 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 한다. 자신의 원톱 작품이란 거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채 돈벌이와 학대로 얼굴이 변형된 그윈플렌, 기괴한 얼굴로 모든 감정이 영원히 웃음 속에 갇혀버린 주인공의 모습은 수많은 예술가, 극작가, 영화 제작자에게 영감을 줬다. 오페라의 유령과 영화 조커, 브이 포 벤데타가 그들이다. 맞다. 디씨 코믹스 DC Comics를 먹여 살리는 최고의 빌런 조커 Jocker가 다름 아닌 웃는 남자인 거다. 대단하다. 빅토르 위고


이제 한국에서도 숟가락을 얹었다. <웃는남자>는 국내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져 흥행이 현재 진행형이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홀린 빅토르 위고만의 흥행 원천을 대체 뭘까? 아마도 그가 살아온 삶과 사상 그리고 작품 저변에 무한히 흐르는 보편적 ‘인류애’ 때문일 테다. 일생 동안 혁명과 사회적 갈등을 목격했고, 때론 정치적 활동에 나서며 인류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작품엔 억압받는 자와 사회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그렇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바로 위대한 작가를 만든 거다. 빅토르 위고는 바람둥이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인류애’를 진짜 몸으로 실천한 진보적 광고인였던 거다. 가만있어보자… 이게 흥행의 원천였나???



TIP. 알아놓으면 떡이 되고 밥이 되는 <빅토르 위고>가 남긴 유산들

#낭만주의 #팡테옹 #무한상사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세계4대뮤지컬 #WaySoSerious? #베트맨 #조커 #바람끼 #끝내주는그림솜씨 #파리코뮌



이것이 연쇄 흥행 청부업자의 손이다 [그림6-7]빅토르 위고의 작은 손, 빅토르 위고의 집




*본 원고는 편집자와 논의하며, 최종 원고에서 뺀 비공개 버전입니다.


그림출처


[그림6-1] 빅토르 위고_위키피디아

[그림6-2]노트르담 대성당 종탑 위_본인

[그림6-3]콰지모드에게 물은 물을 주는 에스메랄다, 빅토르 위고의 집_본인

[그림6-4]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외젠 들라크루아, 루브르 박물관_위키피디아

[그림6-5]위고의 집 창밖으로 보주광장이 보인다_본인

[그림6-6]런던 손드하임 극장_본인

[그림6-7]빅토르 위고의 작은 손, 빅토르 위고의 집_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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