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판사입니다. 아래와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장이 접수되고, 소송이 시작되었지요. 누구의 잘못일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디에 책임을 묻겠습니까?
순창 서리(胥吏) 최윤재는 사또님께 소지(所志) 올려
원통함을 아뢰오니 올바르게 처결해 주소서
구월 십사일은 담양 부사 생신이라
소인의 사또가 사흘 전에 달려갈 때
소인이 사령의 우두머리로 행차를 따라갔는데
광주 고을 목사와 화순 창평 남평 원님
십사일 조식 후에 일제히 모이셨네
<순창가>는 조선후기의 문신 이운영이 쓴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최윤재입니다. 직책은 전라남도 순창의 서리로, 관아에서 말단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사람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9급 공무원쯤 되겠지요. 하지만 직책이 낮다고 얕볼 건 아닙니다. 신분은 중인이고, 관청에 있었기에 평민들에겐 어려운 존재였지요.
그는 담양 부사의 생일을 맞아 사또를 모시고 참석합니다. 잔치에는 인근 마을 사또들도 여럿 모였지요.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뭘까요? 유흥이었지요. 술판이 벌어지고, 여러 기생들도 불려와 춤추고 노래 부릅니다.
호남 소금강의 경치를 보시려고
화려한 육각 양산 청산에 나부끼고....(중략)
아리따운 기생들이 의기양양 무리 지어
말 타고 군졸들과 수레를 뒤따르니
창안백발 화순 원님 기생에게 다정하사
굽이진 곳에서 자주 돌아보시기에
소인은 하인이라 말에 앉아 있기 황송하와
올랐다가 내렸다가 내렸다가 올랐다가
오르락내리락 몇 번인 줄 모르겠네
망망히 내렸다가 다시 올라타노라니
석양에 큰길 아래서 실족하야 넘어지니
돌들이 흩어진 곳에 콩 태 자로 자빠지니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은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호남의 소금강 경치를 보러가기로 합니다. 사또들의 행렬은 자못 화려했지요. 깃발이 나부끼고, 말들은 위풍당당하고, 옥패는 걸음마다 쟁그랑 울립니다. 아리따운 기녀들과 군졸들도 그 뒤를 따랐지요.
그런데 여기서 일이 벌어집니다. 나이 지긋한 화순 고을 원님이 기생들에게 관심 많으셨나 봅니다. 길을 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셨지요. 한편 중간에서 말타고 가던 최윤재는 난감합니다. 자기가 괜히 원님 시야를 막는 게 아닌가 싶었지요. 그래서 원님이 뒤돌아 볼때마다 말에서 내렸다가, 다시 올라타길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졌지요.
팔다리도 부러지고 옆구리도 삐어서
어혈(瘀血)이 마구 흘러 흉격이 펴지지 않고
금령이 지엄하와 개똥도 못 먹고
병세가 기괴하와 날로 위중하니
푸닥거리 경 읽기는 다 해 봐야 헛되도다
이제는 하릴없이 죽을 줄로 알았더니
곰곰 앉아 생각하니 이것이 뉘 탓인고
강천에서 배행하던 기생들의 탓이로다
네 쇠뿔이 아니런들 내 담이 무너지랴
속담에 이른 말씀 예부터 이러하니
소인의 죽는 목숨 그 아니 불쌍한가
소인이 죽거든 저년들을 죽이시어
불쌍히 죽는 넋을 위로하여 주옵실까
실낱같이 남은 목숨 살려 주시길 바라나이다
최윤재는 크게 다쳤습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옆구리도 삐고, 피도 많이 났지요. 치료를 해봤지만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관청에도 못 나가고, 요즘처럼 산재 보험 같은 건 당연히 없었겠지요.
그는 자기가 다친 게 누구 탓인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떠올리지요. 이 모든 게 ‘기생’들 때문이라고요. 그가 근거로 든 속담이 있습니다. ‘네 쇠뿔이 아니런들 네 담이 무너지랴.’ 남의 소가 자기 담을 부셨으니, 결국 남의 소 잘못이라고요. 자기 손해를 남의 책임으로 돌릴 때 쓰는 말입니다.
그는 소장을 올립니다. 내가 죽거든 저년(기생)들도 같이 죽여서 불쌍하게 죽는 자기 넋을 위로해 달라고요.
소장을 접수받은 관찰사는 포졸을 급파해 기녀들을 잡아옵니다. 이십대 초반의 여성 넷은 목에 칼이 채워진 채 감옥에 갇히지요. 만약 최윤재가 죽는다면 그녀들은 장형 팔십 대, 태형 오십 대, 혹은 머나먼 유배길 –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인들 역시 가만히 있진 않았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의녀 등도 원통하와 소회를 아뢸 것이니
일월같이 밝으신 순찰 사또님께
한 말씀만 아뢰옵고 매를 맞고 죽겠나이다
의녀 등은 기생이요 최윤재는 아전이라
기생이 아전에게 간섭할 일 없사옵고
화순 사또 뒤돌아보시기는 구태여 의녀들을 보시려 하셨던 건지
산 좋고 물 좋은데 단풍이 우거지니
경물을 구경하려다 우연히 보셨던 건지
아전이 제 인사로 제 말에서 내리다가
우연히 낙마하여 만일에 죽는다 한들
어찌 의녀들이 살인이 되리이까
관청에 잡혀온 기녀들은 관찰사에게 두 가지를 하소연합니다. 먼저 화순 원님이 뒤돌아본 건 자신들을 보려 한 건지,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 한 건지 알 수 없다고요. 그리고 아전이 자기 혼자 말에서 내리다가 떨어진 걸 어찌 자신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녀들을 자신들의 기구한 처지를 한탄합니다. “쌀 한 줌 돈 한 푼을 누가 주며, 먹고 입는 걸 자신들이 직접 벌어야 하는데, 교방에서 음악 익혀 닷새마다 대령하며, 관가의 고된 일을 맡게 돼 밤낮으로 괴롭고 힘들다.”라고요.
자,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겠습니까? 사실, 이건 판결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만한 정도입니다. 누가 봐도 기녀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요. 관찰사 역시 말합니다. “순창 서리 송사한 사연이 절절히 모함이구나.”라고요. 그리고는 기녀들을 풀어줍니다.
너무나 당연한 판결이지요. 그러면 궁금합니다. 왜 서리 최윤재는 애꿎은 기녀들에게 책임을 물었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약한 존재였으니까요.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화순 원님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힘없는 기녀들을 가해자로 지목해 죄를 떠넘긴 셈입니다.
어른이 되어 작품을 다시 봅니다. 세상에는 최윤재 같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직업의 귀천이, 경제적 소득이 낮다고 생각되면 - 다시 말해 만만하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부류는 반대로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선 한없이 비굴해지지요. 그런 사람에겐 결코 호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그런 적 없는지 되돌아봅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무의식중에 그가 나보다 강한(혹은 약한) 존재인지 따지면서, 태도를 달리하진 않았는지 떠올려봅니다.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최윤재처럼 강약약강의 삶을 살진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잘못한 기억이 있다면, 앞으로는 보다 주의하고 좀 더 사려 깊어야 할 것을 되새깁니다. 그것이 어른으로서의 마땅한 자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