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 후반, 시카고의 작은 아씨들
– 앤 나폴리타노, 복복서가, 2024. 허진 역.
「Hellow Beautiful」은 네 자매의 아버지인 찰리 파다바노가 딸들에게 하던 인사말이다. 그는 늘 한 손엔 술잔을 들고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딸들을 반기곤 했다. ‘안녕! 예쁜이’
이 책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의 네 자매가 펼치는 인생 드라마로 1868년에 발표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을 떠 올리게 한다. 그로부터 100년 후, 20C 후반 시카고의 이민자 거주지역인 필슨을 배경으로 한 파다바노家의 네 자매는 작은 아씨들 마치家 자매들이 입었던 코르셋을 집어던지고 청교도적 울타리를 훌쩍 넘는 아찔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윌리엄이 태어난 1960년부터 실비가 죽은 2008년까지, 파다바노家의 네 자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여정을 담았다. 같은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각 인물이 화자(줄리아, 실비, 앨리스 그리고 윌리엄)가 되고, 독자는 각 화자의 자리에서 그 시간과 사건을 느낀다. 같은 태에서 나왔고 심지어 쌍둥이 자매도 있지만, 각기 다른 삶의 지향성과 태도를 보이는 파다바노家의 여성들과 윌리엄. 이들의 삶을 통해 독자는 울다가 웃다가 공감하다 놀라기를 반복하게 되며,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단 한 번의 섹스로 17살에 임신하여 남편 없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성을 당당히 부여하는 세실리아, 같은 보육교사 출신 동성 연인과 사는 세실리아의 쌍둥이 자매 에멀라인, 결혼 1년 만에 나약하고 우울한 남편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분리하는 줄리아의 삶은 가히 부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형부(줄리아의 남편)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줄리아와 열 달 차이 나는 동생 실비까지…
파다바노家의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연대하며 삶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가꾸어나간다. '줄리아는 자신이 아주 확실한 포유동물이며, 힘을 폭발시키면 세상을 뒤흔들고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중략) 딸이 있으므로 줄리아는 온전했다.’(p158-159) 이들은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당당히 물려주고 단단한 사랑을 준다. 아직 어린 나이인 엄마들이 그저 아이의 존재에 풍덩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아이들 관련 일을 오래 한 나로서도 신선한 충격이다.
로켓처럼 솟아오르려는 줄리아와 잠수함처럼 깊고 어두운 바닷속을 부유하는 윌리엄이 어떻게 만났을까? 평생 변치 않는 굳건한 사랑을 믿은 실비는 왜 하필 형부인 윌리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쌍둥이 자매 세실리아와 에멀라인의 연대는 뱃속부터 가져온 것일까? 삶을 직면하려는 자매들과 달리 윌리엄은 늘 삶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거짓말도 비밀도 없는 삶'을 위한 의지를 실천하면서 바뀌어 간다. 그리고 실비의 장례식은 가족이 모두 모이는, 화해하는 자리가 된다.
나도 이 책처럼 지난 시간을 나와 주변의 인물을 화자로 하여, 다각도로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치료가 될 듯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자칫하면 스님 머리를 투 블록으로 해 놓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엘라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