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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누가 이들을 구원할까?

by Rumi Ma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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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 2024.


작가 에드나 오브라이언, 클레이 키건 그리고 뮤지션 시네이드 오코너,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티 키건 원작) 등등. 내가 생각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아일랜드, 여성, 마그달렌 수용소다. 그리고 이 세 꼭짓점이 향하는 중심엔 가톨릭이 있다.      


묘한 정적이 흐르고, 침대엔 노인이 누워있다. 구조대가 오고, 주검을 감싸는 비닐 팩의 지퍼가 채워지고, 바퀴 달린 철제 이동 침대로 병원차에 태워져 냉동고로 간다. 노인의 주검에 거리의 어둠과 불빛이 무심히 지나간다. 주검은 그렇게 처리되고, 부재는 콘클라베를 통해 채워질 것이다.      


Conclave. 전 세계에서 앙증맞은 빨간 베레모와 망토를 두른 남성 노인들이 바티칸으로 모인다. 교황의 죽음이 여느 죽음과 같은 것처럼, 가톨릭 사제들의 선거 또한 여느 선거와 같다. 1. 내가 적임자라는 착각. 2. 최고의 자리에 오를 사람에게 붙기. 3. 타인의 죄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 4. 권위가 떨어진 것을 남 탓으로 돌리기. 5. 심판의 날이 닥쳤다는 두려움 심기 등.


선거가 진행될수록, 이합집산과 중상모략이 외부와 단절된 바티칸을 채운다. 선거 단장인 로렌스 추기경은 유력한 후보에게 하나, 둘 교황이 되지 못할 치명적 약점이 드러남에 따라, 그 스스로도 교황을 갈망하는가?라는 의문에 닿는다. 로렌스는 절대 교황이 되지 않을 거라던 공표(公表)에도 불구하고,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가 투표함에 나아가 기도를 한 후 용지를 넣는 순간, 바티칸 광장에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이제 빨간 망토에는 아름다운 시스티나 성당의 부스러기가 묻고, 주름진 얼굴엔 두려움과 상처가 혼재한다. 폭탄세례로 발을 땅에 딛게 된 듯, 그들의 당당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던 매무새는 어느새 노인의 구겨진 피로로 다가온다.      


전쟁지역 등 힘든 환경에서 사역해 온 멕시코 출신 베니테스 추기경은 종교전쟁을 운운하는 강경파에 대응해 국경을 넘는, 다름을 인정하는 사랑과 포용이 이 시대에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노인들은 재투표를 하고, 베니테스 추기경은 교황으로 선출된다,      


하지만 베니테스는 타고난 유전자 이상으로 자궁과 난소를 가진 인물이다. 겉으로는 남자인데, 우연히 맹장수술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동물로 따지면 자웅동체(雌雄同體) ('암컷과 수컷이 같은 몸'이라는 뜻으로, 생물이 암컷과 수컷으로 나누어져서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만이 존재하며 암컷과 수컷의 신체적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해야 할까? 베니테스는 자궁 절제술을 받지 않고 신이 주신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Conclave는 과거의 전통이나 규율에 매어 옴짝달싹 못하는 작금의 가톨릭을 구원할 상징적 인물인 베니테스를 통해, 가톨릭 권력의 발치에 머물던 여성성의 힘을 상기시킨다. 마지막까지 아하?라는 감탄을 하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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