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인삼 관련 사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엔 나는 인삼을 접는 것은 물론 깎는 풍경을 별로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가끔 들르던 고모네 집 사촌 누나들이 이 작업을 해내는 것을 가끔 어깨너머로 본 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인삼의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정성껏 벗겨내는 공정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우선 꼬리라 부르는 작은 ‘미’를 떼내고 흙부스러기를 깨끗이 씻어냈다. 이 인삼 깎는 품삯은 개당 단가로 책정이 되었다. 그래서 인삼이 몇 뿌리인가를 일일이 확인하며 반출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나중에는 단가 계산 방식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한나절 또는 하루 종일 일당으로 바뀌었다. 내가 사촌 누나들이 작업하던 광경을 지켜보던 시절엔 껍데기를 벗겨내는 도구는 대나무 재질의 칼이 전부였다. 대나무를 2등분하여 끝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삐져낸 대나무 칼을 마련했다. 나중엔 철재 칼도 혼용을 했다.
내가 초등시절과 지금 시세를 비교할 때 그랬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이 인삼처럼 시세가 오르지 않은 품목도 아주 드물었다. 어쩌면 물가상승률과 괴리가 가장 큰 품목임에 분명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후만 해도 이 인삼은 애지중지해야 하는 보물 단지에 다름이 없었다. 당시는 인삼 주인집에 모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50 뿌리’ 일감을 정해서 인삼 실물을 각자의 보금자리에 고이 모셔다가 작업을 완료한 후 다시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일의 완성이 목표인 도급의 일종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행여나 다칠세라 다리가 혹시 부러질까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했다. 어쩌다 다리를 부러뜨리기라도 하면 이쑤시개 모양의 코챙이로 임시 봉합 수술을 거친 후 주인에게 반납해야 했다. 껍질을 벗겨내고 몸통이나 ‘뇌두’의 검은 둥근 테 등은 손수건 크기의 삼베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 기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간 인삼 경작자와 재배 면적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러자 이제 이 인삼 깎는 작업은 인삼 소유자의 자택이나 창고, 5일장 공터 평상 위에 한데 모여 이루어지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삼베 조각은 나중엔 ‘목’이라 불리는 흔히 밥상보로 쓰이던 헝겊 재질로 대신했다. 특히 뇌두의 둥근 검은테를 제거하고자 할 때는 삼베 조각의 한 끝을 입에 물고 다른 한쪽 끝은 손으로 잡아서 조심스럽게 삼베 조각의 한 모서리로 왕복운동을 반복하여 닦아내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그 많고 많은 약재 중 인삼은 이른바 황태자 대접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
그 이후 인삼을 다루는데 절절매는 수준에서 좀 완화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시세가 저렴해졌고 많이 대중화가 된 탓이었다. 우리 창고집 콘크리트 바닥 여기저기 포대를 깔고 앉거나 방 안에 여러 팀이 들어섰다. 5일 시장 공터에 서너 개의 평상 위에도 이 인삼 깎는 노동에 투입된 일꾼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이 인삼 한 뿌리를 제대로 깎아내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20 내지 30뿌리를 담아낸 대야 안쪽 아래엔 물을 자작자작할 정도로 담아 놓고 작업을 이어갔다. 인삼 표면의 수분이 많이 증발해 버리면 이 물에 한두 번씩 축인 후 그 작업을 계속 이어 가야 애로가 없었다. 인삼이란 약재는 몸통은 물론 꼬리(미) 심지어 벗겨낸 껍데기도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이 모두가 쓸모가 있었다. 껍데기도 말려서 차를 끓여내든가 다른 용도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했다. 한우 한 마리를 잡으면 살코기는 물론 가죽부터 내장 등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이 알뜰하게 모두 그 쓰임새가 있는 것과 똑같았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깎아낸 인삼은 늦여름이나 초가을 햇볕 아래 널어 말렸다. 무공해 햇볕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말려야 빛깔이 자연스럽게 구현되었다. 무작정 오랜 시간 말려선 사달이 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백삼이면서 곡삼이란 최종 상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인삼 깎는 공정에 이어 접는 공정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연탄불로 따로 마련된 건조실에서 고추를 말리듯 해서는 절대 안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보물덩어리가 익어버리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도가(양주장) 앞 너른 앞마당 위에 막걸리를 빚어내기 위해 지푸라기 재질의 멍석 위에 널린 고두밥 건조 수준이 이와 딱 맞았다.
꾸들꾸들해지도록 타이밍을 정교하게 잘 맞추어야 했다. 이제 껍데기를 벗겨낸 인삼 다리를 한데 모아 보기 좋게 몸통에다 밀착시키는 공법인 ‘인삼 접기’ 코스가 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껍데기를 벗겨낸 인삼이 이제 접을 수 있는 공정에 알맞게 건조되었는지를 꼼꼼하게 한 뿌리씩 랜덤으로 골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눌러보기도 했고 또는 치아를 동원하여 자그시 깨물어보기도 했다. 이제는 접는 공정으로 넘어가도 충분하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