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 깎고 접는 날(3편 완)

by 그루터기

접는 단계에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는 인삼 뿌리 더미는 대나무 또는 싸리나무 재질의 광주리에 수북이 쌓아 모았다. 그 위에 물기를 축여낸 광목 재질의 밥상보보다 훨씬 여유 있게 너른 천으로 덮어놓고 드디어 접기 작업에 돌입했다. 접기 직업을 이어가다 수분이 팔요 이상 증발이 되면 원활하게 작업의 진도를 뽑을 수가 없었다.

이즘 어머니는 칼국수를 홍두깨로 밀아낼 때 아래에 받히던 두껍고 길쭉한 나무 받침대인 ‘국수용 도마’를 이미 여러 개 동원했다. 인삼 다리를 감아 모아 몸통에 균형 있고 보기 좋게 밀착시키기 이전에 또 하나의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인삼을 한 뿌리씩 들어 이 국수용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 가운데 부분으로 몸통을 지그시 눌러 전후로 힘을 주어가며 굴렸다. 이는 몸통의 주름을 펴고 몸통과 다리가 부러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잘 굽혀지고 접히도록 유연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인삼이란 놈은 한 뿌리마다 굵기, 길이, 다리 개수, 생김새 등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인삼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다리를 어느 쪽으로 몇 개를 어디까지 감아올려 종국엔 몸통의 어느 부위에 밀착시켜야 보다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인지 작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초기엔 인삼을 접어 다리를 몸통에 올려 고정시키는 재료로 왕골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였다. 이 왕골은 아주 부드러운 재질을 자랑하다 보니 인삼 몸통은 물론 다리 등 그 어느 부위에도 생채기를 내거나 감겼던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나중엔 이 왕골은 흰색 굵은 실에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 왕골은 그 재배에 들어가는 각종 정성과 시간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조달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젠 인삼 몸통에 생긴 작은 생채기나 감긴 흔적 정도는 인삼 상품성을 따질 때 그리 큰 고려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꾼 모두는 나름 설계자 역할에 이어 시공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책무를 떠안고 있었다. 경험이 일천한 일꾼들은 오랜 기간 노하우가 쌓인 내공이 꽉 찬 베테랑 선수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순서였다.


“이것은 참 독특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이런 질문도 던져가며 ‘정밀 기술’을 익혀가는 나름 보람 있는 여정이었다.

“윤주야, 어제 마시던 소주 좀 가져오렴.”

우리 고장에선 이미 대단한 애주가로 이름이 높았던 큰고모부는 간식으로 어제 키핑을 해두었던 술을 찾았다. 삼학소주 사 홉들이 유리병을 여동생은 급거 대령했다. 딱지를 접는데 요긴하게 쓰이는 딱딱한 종이를 돌돌 말아 병 입구를 틀어막은 술병엔 아직도 소주가 반 정도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벼 보리 베기, 모내기. 밭매기 등 다른 농사일에 비해 이 인삼을 깎고 접는 노동이란 어쩌면 신선놀음이었다. 우선 한낮의 땡볕을 피할 수 있었고 팔다리를 격하게 움직이며 힘을 많이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늘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며 이어갈 수 있었고 몸을 다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은은한 인삼 향내를 맡으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냄새만 맡아도 보양강장이 되는 듯했다. 다만 일 년 내내 이 인삼을 깎고 접는 일자리가 보장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아쉬운 점이었다.

“스르륵 척 스르륵 척”

굵은 실에 칭칭 감긴 인삼 뿌리마다 이 실을 제거하는 작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초등시절 학교 앞 조 씨네 가게에서 한 무더기의 굵은 알사탕을 송판 위에 올려놓고 설탕을 골고루 묻히기 위해 뒤적거리던 소리에 딱 맞았다.


아버지는 인삼 건조용 도구로 '잠박'이란 명품을 고안해 냈다. 제재소를 거친 송판과 쫄대 모양 목재로 직사각형 틀을 잡고 군청색의 모기장 천과 가는 철망으로 이중 바닥 마무리를 했다. 이 ‘잠박’ 안엔 이제 완전히 건조된 곡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탱글탱글하게 잘 익은 알밤 조각을 방불케했다. 인삼 한 뿌리마다 감긴 실타래를 한알씩 풀어내는 것은 품과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성인 남자 주먹 서너 개 크기 인삼 무더기를 양손 열 개 손가락을 총동원하여 한꺼번에 뒤적거리다 보면 여러 알에 감긴 실타래가 함께 풀려 제법 능률이 올랐다. 그럼에도 나중까지 마저 풀리지 않은 것은 한 알씩 개별 마무리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뿌리마다 각각 작은 예술작품이 된 이 인삼은 이제 본격적인 건조작업을 마쳤다. 그래서 드디어 인삼조합 검사원의 손을 거쳐 ‘송, 죽, 매’란 각각의 등급을 받았다. 이리하여 이제 건삼 유통시장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인삼 깎기와 접기란 신선놀음 알바 일자리가 지금 내게 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고소득자 대열에 다시 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직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게 가능하다면 나는 자진해서 자유직업 내지 일시소득으로 세무 당국에 자진신고하여 국가의 세수 증대에 기여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아주 숙련되고 내공이 가득 찬 최상급 노동자로 일터마다 불려 다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창고집 콘크리트 바닥 위에 이리저리 널린 잠박 안의 인삼 실타래를 풀어내는 정겨운 소리가 아직도 내 귓전을 맴돈다. 하얀색 긴팔 러닝셔츠만 가볍게 걸치고 쪼그려 앉아 아버지와 형제들이 어울려 오손도손 작업하던 풍경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졌다.

작금엔 중국산 인삼이 밀물듯이 들어오고 있다. 인삼의 희소성이 떨어지니 상대적으로 그 시세 또한 예전 수준에 훨씬 못 미쳤다. 약효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인삼이 약재의 황태자 자리를 다시 탈환하기란 요원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