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장도 이에 해당될지 몰라서 연락을 했어요. 이번에 작년분 임단협이 타결되었어요. 작년 귀속분 임금 인상 소급분이 조만간 지급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에 퇴직한 최 부장 같은 직원도 이 소급분을 받을 수 있는지가 애매하네요.”
“이미 작년에 타결되었어야 하는 것이 이제야 되었네요. 그렇더라도 작년에 이미 인상되었어야 할 것이 이제 결정되었을 뿐이지요. 나는 작년 내내 근무했던 직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받는 것이 맞겠지요.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받는 것이 맞아요.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요?”
고맙게도 나의 동기 백 부장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신임 노조위원장에게 물어볼 까도 했다. 먼저 평소 소통이 잘 되는 신 부장을 거쳐 문의해 보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것이 금요일 오후이다 보니 다음 주 월요일에 접촉한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약 18년 전 주인이 바뀌면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의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사풍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다. 회사가 직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급여나 기타 복리후생의 경우 나름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확고한 방침이 있었다. 회사로선 아예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설령 주더라도 지급 시기를 뒤로 미루어 늦게 주거나 그것도 가능하면 쪼개서 마지못해 주는 그런 방식을 고집했다. 나름 이것도 회사의 정체성이라 자랑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퇴직자에게도 소급분을 당연히 지급할 것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노조에선 달라고 하는데 인사부서에서는 그러지 못하겠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답니다. 인사부서는 신임 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인데 노조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면 아마 좋은 소식이 있겠지요.”
신 부장으로부터 받은 답신이었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회사에서 고집하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나는 다음 날 퇴직 전에 평소 좀 소통이 되던 노조위원장에게 직접 물었다. 그런데 결과는 '아닌 밤의 홍두깨'였다.
“임금 소급분은 협상 타결 시 재직 중인 직원에 한해서 지급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노조위원장의 무미건조하고 성의 없는 단호한 답변에 나는 당황했다. 하룻밤 사이에 또 이렇게 180도 입장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통화가 귀찮으니 빨리 끝내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노조에서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쉽지 않을 텐데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노조는 밤새 인사부 담당 책임자에게 설득당한 것으로 보였다.
작금에 퇴직자에게 지급하는 조직성과급도 처음엔 회사가 거부했었다. 이에 퇴직자들이 고용노동부와 법원에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하자 마지못해 지급한 적도 있었다.
최근까지 같이 근무했던 지점장에게 한 번 더 의견을 물었다. 지급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던 중 잠시 후 지점장은 고용노동부의 유권 해석이나 법원의 판결은 부정적이라고 의견을 정정했다.
현대 민주 국가에선 '상식'을 모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의원들의 합의로 만들어 놓은 것이 '법'이라고 나는 배웠다. 그런데 이 건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엉터리 법학 공부를 했나 보다. 순식간에 수배가 된 나의 후배 노무사를 통해서 최종 결론을 들을 수 있었다. 노사합의 문서에서 퇴직자에게도 소급분을 지급한다는 명시적인 문구가 있거나 그동안 지급해 온 관행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련기관의 유권 해석이고 법원의 판단이라고 했다. 단, 판례는 오랜 세월 전의 것이었다.
한때 오랜 세월 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나로선 참으로 부끄럽기도 했다. 작년 말로 퇴직 동기가 된 신입사원 시절의 사수에게 이런 결론을 전했다.
“이런!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지요? 법이란 것이 상식을 모아 놓은 것인데 말이죠?”
비분강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나에게 퇴직 동기는 한마디 툭 던졌다.
“본래 비상식적인 것을 모아 놓은 것이 법이 아닌가요?”
비법학도의 조롱 섞인 기막힌 패러디의 압권이었다. 법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에 대한 통쾌한 빈정거림의 백미였다.
여기서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체 소송이나 대표 소송을 통하여 기존의 판례를 뒤집어 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3심 재판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최종심인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엄청난 비용과 세월이 필요하다. 나중에 퇴직자가 최종심에서 승소를 한들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럼에도 ‘상식에 맞지 않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 법’이라는 빈정거림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하고 후배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기는 일이라면 누군가는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대단히 부담스러운 소송 비용 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뜻있고 정의감에 넘치는 독지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금 이런 기대를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상식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