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땅을 기어 다닌다. 그는 열심히 손을 더듬어 무언가를 찾는다. 바쁘게 땅을 헤집는 그의 손엔 선혈이 낭자하다. 그는 건조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계속 땅을 훑는다. 그 모습은 마치 이성적 인간이라기보다 원초적 동물에 가깝다. 그는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땅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것을 찾으려 헤맬수록 그의 등은 초라하고 외로워졌다. 벗어나려 할수록 방황했고, 멀어지려 할수록 가까워졌다.
그는 이별했다. 그의 연인은 행성이었다. 그의 별을 도는 천체. 별과 행성 사이 존재하는 강한 인력처럼 그와 연인은 서로를 열렬히 붙잡고 있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그 행성은 어떤 별보다 가깝고, 빛났고, 친근했다. 하지만 행성이 사라진 지금, 그의 별은 황량하고 메말랐다. 그가 찾고 있던 것은 그의 조각난 심장이었다. 이별은 그에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가져가는 대신 차가운 허무만 가득 채웠다. 남자는 그렇게 심장도, 의미도 상실했다.
그는 자신이 도망칠, 아니 떠나고 싶은 어딘가를 생각한다. 몇 년 전 그가 떠났던 어느 길, 그 오솔길을 떠올린다. 눈을 뜨면 걷고, 걷고 나면 눈을 감는 게 전부였던 그때를 떠올린다. 단순한 하루의 반복, 지나치게 많은 생각과 회상, 후회로 가득 찬 그의 별에서 남자는 무작정 멀어지고 싶다. 그에겐 그저 걷고, 쉬고, 잠드는 그런 단순한 하루가 절실했다.
남자는 그곳으로 떠난다. 배낭을 꾸리고 그가 가진 가장 가벼운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나뭇잎의 냄새를, 흙의 질감을, 손끝으로 퍼져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느낀다. 무채색으로 우울하게 비치던 남자의 몸에 생기가 돋고 사람 냄새가 밴다. 내내 건조하던 몸엔 비로소 오아시스 같은 땀이 흐른다. 땀은 푸석한 피부를 봄비처럼 적신다. 그는 이전의 삶이 신기루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내 그는 꿈에서 깬다. 다시 익숙한 하늘이다. 지독한 고요와 살을 에는 외로움에 잠식된 그의 별. 그에게 있어 오늘은 또 버텨내야 할 지독한 일상이다. 그의 한숨은 오늘도 차갑다. 반면 그의 별에 닿은 햇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갑고, 별의 중력은 오늘따라 그를 더 세게 잡아당긴다. 그는 문이 있다면 이곳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 하지만 왠지 그 문 너머엔 무뚝뚝한 인상의 보안업체 사내가 그 앞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그는 결국 오늘도 무릎 속에 얼굴을 묻는다. 땅거미가 그의 어깨를 훔친다. 그는 미동조차 없다.
그는 그저 웅크린 채로 서랍 안에 고이 놓인 배낭을 바라본다. 떠남의 갈증을 느끼지만, 남자의 몸은 이미 경화되었다. 남자는 꼿꼿하게 무릎을 안은 채 떠남의 이유를 찾는다. 떠나야 할 사유는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삶을 다시 빛나게 하기 위해, 다시 그를 일어서게 하기 위해. 남자는 차갑고 옅은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공허한 눈으로 중얼거린다. "새삼 대단한 발견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