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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r 21. 2022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픈 기억'과의 조우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③ 2강_영등포 문화와 역사 1

역사란 하루 아침에 쓰여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비록 웅장한 한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랜 기간 '영등포'란 이름 아래 이곳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켜켜이 쌓아온 더께인 만큼 그 존재감이 제법 묵직할 터이다.


비록 이곳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지라도 내 삶의 9할을 차지하는 약 40년 동안 이곳에 발을 붙이고 살았으므로 나름 영등포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자부했건만, 곳곳에 숨겨져 있는 아픈 기억들을 모르고 살아온 내가 참으로 아쉽다.



< '겸재 정선'의 '선유봉' © 겸재정선미술관 >

선유봉 仙遊峰

선유봉 아래 물에 비친 달, 선봉범월.

신선들이 머물다 갈 정도로 그 경치가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 영등포구의 작은 산 '선유봉'.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조선의 대표적 화가 '겸재 정선'마저 이 곳의 정취를 그려 남겼을까. 모습이 마치 고양이와 같다고 하여 '고양이산' 혹은 '굉이산'으로도 불렸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16년 여의도 비행장 건설, 1926년 한강 대홍수 이후 치수 관리를 위한 둑 건설, 1945년 서남부 수돗물 공급 정수장 설치 및 인천행 도로 건설을 위한 골자재 채취를 이유로, 이 아름다운 산은 절반 이상이 깎여나간다. 그리고 1962년 양화대교를 건설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산이 허물어지면서 결국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회적기업 '보노보C' 임채휘 대표님의 설명으로 전해들은 영등포의 문화와 역사는 평범한 마을이 겪었을 법한 그저 그런 순탄한 역사는 아니었다. 평범함을 가장한 이곳 역사의 뒤안길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겪어야 했던 식민지 수탈의 과정이 놀랍도록 치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곳이 교통의 요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곳에 각종 공장들이 들어설 수 있었던 환경...

시대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닌, 식민지배와 수탈을 목적으로 일본신흥세력의 거점 개발을 위한 발판으로서 물밑에서 차근차근 진행되어온 과정이라니 미처 몰랐던 영등포의 아픈 역사가 못내 안타깝게 느껴졌다.


< '보노보C 임채휘 대표'의 강의내용을 듣고 표로 재정리함 © 彼我 >


약 2시간에 걸친 영등포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이곳의 모든 역사를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등포가 서울 교통의 요지이자 대표적 공장지대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숲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아야 그 안에 자리한 수많은 나무들의 세세한 모습까지 그려낼 수 있기에...


아직 갈 길은 멀고 이제 겨우 한 걸음 뗐을 뿐이지만, 마을기록의 기나긴 여정의 시작을 이렇게 배움으로 채운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다. 다음 시간에 이어질 영등포의 역사도 기대해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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