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④ 3강_영등포 문화와 역사 2
꺼내보는 순간 마치 타임슬립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력, 그것이 바로 사진 한 장이 지닌 가치이자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 :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란 말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도 끊임 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변하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등포의 옛 모습
서울시 교통의 요지이자 근대 이후 주요 공장들이 들어선 산업단지로 개발되기 전의 아기자기한 사람 냄새나는 동네 골목들로 가득했던 영등포의 옛 모습들.
이제는 그저 사람들의 단편적인 기억과 추억의 사진 몇 장으로만 존재할 뿐인 것일까.
1950년대 이후 정치, 경제, 사회문화 측면에서 각종 개발로 인하여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어온 이곳.
그 중에서도 88올림픽을 맞이하여 아름답고 발전된 한강의 기적(?)을 표현하기 위해 억지로 한강물을 가두고 수심을 높이는 목적으로 김포에 '보'를 설치함으로써 결국 한강에 유람선이 떠다니게 되었지만 아름답던 한강 백사장은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 뿐일까?
일제강점기 시절, 영등포역이 들어섬으로써 교통의 요지로서 급부상하게 된 것도 잠시, 해방 후 역과 열차를 관리하던 일본 기술자들이 떠나고 난 후, 기술과 관리능력 부족으로 인해 열차전복사고는 늘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단다.
뿐만 아니라, 영등포에 집중되어 있던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동트기 전 서울 외곽지역에서 출발해 철길을 따라 졸면서 몇 시간을 걸어 출퇴근하던 여공들이 열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면서 영등포역 주변 지역에서는 유족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영등포의 변화해온 모습 뒤안길에는 분명 많은 이들의 슬픔이 가득했으리라.
영등포 옛모습을 간직한 사진 몇 장들...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았던 곳 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울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곳이 과거의 슬픔이 가득 배어나는 곳이라 할지라도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람도 그 사람이 발붙이고 있는 곳 역시 끊임 없이 변화하고 있기에, 그 과거의 슬픔을 뒤로 한 채 광명 속에서 맞이할 미래를 향해 걸어본다. 다만, 그 과거의 슬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 채......
덧글 하나,
미처 몰랐는데 의외로 영등포를 무대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꽤 있는 듯하다.
소설가 황석영님의 <모랫말 아이들>은 소설가 자신이 모랫말에서 살았던 어린시절을 그린 이야기라고 하는데, '모랫말'은 영등포구 도림동과 문래동의 경계인 도림교 근처에 있던 마을로 도림천 냇가에 모래가 많았다고 해서 모랫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998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육남매>역시 1960년대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살았던 한 어머니와 육남매가 가난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 드라마 역시 문래동에서 살았던 이관희 감독의 실제 어린시절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영등포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드라마라고 하니 새삼 반갑게 느껴져 왠지 모르게 찾아보고 싶어진다.
덧글 둘,
'모랫말'처럼 마을이나 도로, 고개 등 영등포의 지역 곳곳에 얽힌 이름 중에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름들이 참으로 많은 듯하다. 당산, 고추말, 가마골 등 그 중에는 아직까지 남아서 사용되는 이름들도 꽤 보인다. 언젠가 이 지명들만 모아서 한 번 정리해보면 어떨까.
강의가 끝나고 나와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을버스 노선도에 '고추말'이라는 반가운 이름 하나가 보인다. 도림동 고추말어린이공원 주변에서 영등포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을 때 고추처럼 매운 바람이 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지.
다음 시간은 직접 지역을 찾아가보는 탐방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영등포의 대략적인 역사를 알고 나니, 지역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