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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r 21. 2022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⑤ 4강_지역탐방

2주에 걸쳐 영등포의 문화와 역사를 돌아본 후, 실제로 지역탐방에 나선다. 

알고 있으되 알지 못했던, 살아왔으되 살았다고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지역을 돌아본다는 의미, 두 발로 걸으며 다시 한 번 곰곰이 짚어본다면 그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 벽화가 그려진 문래 예술 창작촌의 낡은 철공소 골목, 그리고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신축 오피스 타워의 모습 © 彼我 >


'문래 예술 창작촌'


오늘의 마을기록을 위한 지역탐방 체험 장소.

어떤 이는 이곳을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골목길이라 부른다. 맛집과 예쁜 카페가 많아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소위 '힙'한 곳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또는 재개발 이슈와 맞물려 젠트리피케이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라 평가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는 동시에, 그 어느 것 하나만 정답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살아 숨쉬고 있는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이기에······.




그렇다면, 마을기록의 측면에서 

어떠한 시선으로 이 곳을 바라보아야 제대로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영등포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넓혔을 뿐, 아직 아카이브에 대한 이론적 또는 기술적 지식과 스킬을 익히지 못했기에 마을기록활동가로서 어떠한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면 좋을지 나는 아직 체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막상 지역탐방을 나서면서 살짝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사진을 찍고 부연설명을 덧붙인다면, 일기장에 써내려간 감상평과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솔직한 고해성사를 하자면, 그토록 오랜 기간 지척에 문래 예술 창작촌을 두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이곳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저 지인들과의 약속을 위해 몇몇 식당이나 카페를 다녀가 본 정도에 불과할 뿐, 많은 이들이 주중 또는 주말에 찾아오거나 방송에서 핫한 지역으로 추켜세우며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도 큰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유명 관광지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기피해 오히려 그 관광지를 멀리 하게 되는 반발적 심리라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자꾸만 커지는 의문과 마음을 무겁게 하는 고민들을 꾹꾹 눌러삼키고, 우선은 사서 선생님들의 안내를 따라 '문래 예술 창작촌'을 살짝 둘러보기로 한다.


< 입구 안내게시판을 시작으로 창작촌 곳곳에 제작 및 설치되어 있는 철재 조형물들 © 彼我 >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이 곳만의 특징을 자랑이라도 하듯, 입구부터 갖가지 철재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당신은 곧 'Steel Art'의 성지와 마주하게 될거라고 예언하듯이 말이다.


< 창작촌의 골목길 벽면 곳곳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들 © 彼我 >


골목길 곳곳의 벽면은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진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한 폭의 캔버스가 아닐는지. 언제부터인가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골목길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철공소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어둡고 우울하고 낡은 느낌의 회색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 창작촌 곳곳에 자리한 점포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김순미 작가의 '얼굴명패' 작품들 © 彼我 >


무명예술가로 늦은 나이에 취미삼아 시작했다가 이제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주옥같은 작품들도 방문자를 반긴다. 마치 '나 여기 있으니 찾아보세요!' 하는 숲 속 장난꾸러기 요정의 모습을 한 채.


< 창작촌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다양하고 이채로운 간판들 © 彼我 >


몇 십년 동안 그 모습 그대로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벌겋게 부식되고 조각조각 벗겨져나간 철제 간판부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추측하게끔 하는 예술적 요소가 가미된 디자인 간판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는 정말 천차만별의 간판들이 공존하고 있다. 심지어 예전 점포의 주인이 떠나간 후에도 간판만은 그대로 남아, 점포와 간판의 정체성이 부조화를 이루는 곳도 많다. 비록 낡았을지라도 오랜 기간 이곳을 지키며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간판의 옛모습을 보존하고 싶은 창작촌 주민과 예술가들의 마음 때문이라고 하니,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것은 착각일까.


< 창작촌을 지켜온 낡고 오래된 골목길과 건물들 © 彼我 >


가도가도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오고 그 때마다 낡았지만 정겨운 골목길이 펼쳐지는가 하면, 내 나이만큼 세월을 넘겨왔을법한 건물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요즘 웬만한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신주와 전깃줄이 건물들 사이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어서, 잠시 정신을 못차리고 길을 헤매다 보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 순간 전깃줄 너머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이 한숨 고르고 가라는 듯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곤 하니,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며 흥얼거리던 동요 가사가 떠오를 것만 같다.


< 창작촌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술술센터 내 전시작품들과 술술센터 꼭대기층에서 바라본 창작촌의 모습 © 彼我 >


창작촌 안쪽을 깊숙이 들어가 걷다보면, 문래동의 예술종합센터라고 할 수 있는 '술술센터'와 마주하게 된다. 이곳 에서는 창작촌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해놓고 있어서 뜻밖의 개안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꼭대기층은 대관이 가능한 회의실로 통유리창을 통해 창작촌의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도 하다.


짧은 탐방을 끝내고, 창작촌에 대해 여러가지 정보를 안내하고 설명해주신 사서 선생님들과 마을기록학교 수강생들도 이곳에 모여 자유롭게 탐방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시간에 같은 지역을 돌아봤으나, 각자의 관점에 따라 관심도의 방향도 감상 결과도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이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기록의 취재 방향과 결과물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란 것은 확실하다. 탐방 전 고민했던 문제의 답도 어쩌면 이미 나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



정답이 없는 답!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을기록의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관계 없이 기록하고자 하는 그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정조 시대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처럼.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탐방실습 장소인 '문래 예술 창작촌'에 대한 나의 마을기록은 잠시 접어두려고 한다. 조금 더 배우고 이해한 후에, 나 스스로 마을기록(Urban Archiving)을 시작할만큼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껴질 때쯤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와 느끼고 보고 기록하리라 약속해둔다.


< 창작촌 내 위치한 펍 '올드문래'의 입구 전경,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신축 오피스 타워의 모습 © 彼我 >


나는 지금 이곳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곳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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