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⑥ 5강_아카이브에 대한 이해
마을기록학교 수강생이 된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음에도 누군가 내게 '아카이브'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정말 궁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물론 모르는 것이 죄는 아니건만,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하셨던 사명대사의 말씀이 어찌나 내 양심을 콕콕 찔러오는 것인지······.
교육장소가 도서관이니 알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관련 도서를 빌려서 읽어보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이것 참 유구무언(有口無言)이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겠구나 새삼 사자성어 어원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강의를 통해 배우기 전에 편견을 갖고 싶지 않았다고 첨언한다면 빈약한 핑계가 되려나, 그 누구도 탓하거나 나무란 적은 없건만 괜히 입맛이 쓰다.
아, 혹시 이 때쯤이면 수강생들이 아카이브에 대해 진정으로 궁금증을 느끼겠거니 생각하고 커리큘럼을 짠 것일까? 오늘 강의가 바로 '아카이브의 이해'라는 반가운 소식!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에서 오랜 기간 몸담으셨던 아카이브 전문가, 한신대학교 '이영남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매우 흥미로운 질문과 함께!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를 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물론 진화론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진화의 결정적 원인을 한 가지만 콕 집어낼 수도 없다.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졌음에도 정보배열순서도 다르고 뇌용량도 다른 개체인 것은 둘째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 등으로 뇌의 발달이 현저하게 일어난 인류의 진화는 그야말로 동시다발적인 원인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의 초점을 바꾸어 아카이브 이론의 측면에서 유인원과 인류를 바라볼 때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기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기록 전에 몇 가지 사전단계를 떠올려야 한다.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먹게 되면서 굳이 사냥 후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필요가 없으니, 사냥 또는 채집이 끝난 후 음식재료를 익히는 단계에서 여럿이 함께 모여서 준비하고 먹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활한 협업을 위해 대화를 하게 되면서 사고를 분명하게 해주는 '언어'가 발달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동시간대에 한 자리에 모인 이들 사이에서 말로만 전달되던 언어는 필연적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말뿐이 아닌 글로 확장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교수님의 부연설명처럼,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의 전달, 친밀감 형성 등을 위해서도 문자를 통한 기록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사고능력-언어-기록-발달된 사고능력'으로 이어지는 끊임 없는 순환구조가 인류를 더욱 진화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기록 = 아카이브?!
그렇다면 '기록은 곧 아카이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두 개념이 동일한 것이었다면, 굳이 <아카이브>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카이브는 기록의 일종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단순히 기록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기록 중에서도 장기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기록물 또는 그 기록물을 관리하는 장소를 이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카이브는 필연적으로 조사-평가-조직-보존-활용에 이르는 일련의 '기록관리' 과정이 파생된다.
뿐만 아니라, 아카이브는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보아야 한다.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복지·의료·교육 등 사회적 제도를 바탕으로 가치를 선별해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카이브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 제도로서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의 목적을 가지고 등장했으며, 이를 위해 공공기관의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법률을 바탕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바로 그 분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유럽 등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국가들에서는 '설명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대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미국 거대 기업의 소유주인데, 그 기업에서 제조하는 무기들로 인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무기제조산업에서 즉시 손을 떼겠다고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무책임한 태도를 스스로 지적하면서 사용한 단어가 바로 'Accountability'이다. 굳이 우리 말로 번역을 하자면 '설명책임성'이 되지만, Responsibility와 같이 '책임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Responsibility와의 차이점은 단순한 도덕적 책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책임지고 설명할 수 있냐는 뉘앙스가 가미되어 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런 배경을 고려해볼 때, 아카이브의 시작은 '공공 아카이브'의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공공 아카이브 vs. 민간 아카이브?!
우리나라 역시 아카이브의 시작은 공공 아카이브 측면이 강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전에는 행정수반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공적인 기록이 삭제되거나 은폐 또는 비공개되는 일이 잦았던 만큼,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공공 아카이브가 민주주의 체화의 일부로 이해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거니 무의식적으로 동의하는 순간, 교수님의 기습적인 질문이 날아든다.
"공공 아카이브와 민간 아카이브라는 이 관행적 분류법은 타당한가?"
"민주주의 관점에서 이런 아카이브 분류는 정당한가?"
"지금 이 자리(공공 아카이브의 보조적 또는 부수적 위치)가 겨우 민간 아카이브의 위치인가?"
즉답을 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강의는 아카이브의 개념과 역할을 재이해함으로써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간다.
공공 아카이브가 아닌 민간 아카이브만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삶의 의미와 행복,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내면적 물음' 측면에서는 민간 아카이브가 좀 더 효율적이고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평범함도 어떠한 계기를 만나면 충분히 비범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문화와 예술, 의료와 복지, 인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지극히 평범한 입장이었던 공공 아카이브가 다양한 시민의 노력과 만나 비범한 아카이브로 탈바꿈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처럼 민간 아카이브는 공공이 아닌 시민의 자발적인 주도와 지속적인 노력으로 서서히 표준모델을 정립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참여 중인 마을기록학교 역시 마을아키비스트(마을기록활동가)와 도서관 아카이브의 조합이 만들어낸 형태로 이 역시 시민의 참여로 이뤄진 민간 아카이브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낡은 시설을 재활용하면서 작은 아카이브 공간 및 협동조합(수원페이퍼, 서울메모리플랜트, 아카이브랩, 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원)이 출현해 꾸준한 실천으로 아카이브의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손쉽고 다양한 기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도시 곳곳에서 자유롭게 이루지는 도시 아카이브 모델도 만들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헌법 2장의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커지면서 농업, 의료, 인권, 복지, 교육 등 자유와 평등을 위한 다양한 아카이브가 생겨나고 있다고. 세월호와 관련된 4.16 구술, 장애인권 구술, 여농센터의 홍동허스토리, 꿈뜰농장의 기록농사, 메모리플랜트 아찾사 등이 그 훌륭한 예시이다.
아카이브의 미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아카이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아카이브를 재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굳이 이분법적인 사고로 '공공'과 '민간'으로 구분지은 뒤, 아카이브의 시작은 공공 측면에서 열었으나 향후에는 민간 측면에서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야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의문이 남는다.
애초에 공공 아카이브와 민간 아카이브를 케익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에 속해 있는 아키비스트 역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떼어놓고 본다면 민간 아카이브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민간 아카이브 조합이 공식인가를 받아 공공 아카이브로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 공공기관의 협력 없이 시민들만의 힘으로 공인된 기록을 창조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집단지성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시민들의 지지가 없다면 공공기관의 기록은 발전은 커녕 존립하기조차 어려운 법이다.
결론적으로 '아카이브는 그냥 아카이브일 뿐이다.'
가치가 있다면 기록으로 남길 뿐 공공과 민간의 구분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어느 누가 한 점 반박의 여지가 없는 잣대로 공공과 민간을 구분지을 수 있다는 것인가?
공공과 민간은 상호보완적 동반자의 의미일 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상위 또는 하위에 서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민간의 관심 또는 인식 부족으로 그간 참여율이 낮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카이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그 참여율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카이브의 당연한 축으로 자리잡을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카이브의 확실한 미래가 아닐는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