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⑧ 7강_마을기록 기획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 언제 일어나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누구와 만나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등등 하루일과는 물론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취하는 것과 버리는 것(또는 포기하는 것)이 결정되며, 그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은 바로 '왜 그것을 선택했는가'하는 필연적 이유가 되는 목적 또는 방향성일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각자 중요시 여기는 삶의 방향이나 매 순간 겪게 되는 일의 목적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에, 그에 맞춰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과 집중'의 과정을 통해 정해진 방향이나 핵심내용을 보통 《주제》라고 부른다.
마을기록 역시 이 과정을 피해갈 수 없다. 아카이빙 자체가 단순한 기록이 아닌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인 만큼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그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래서 일까? 오늘 마을기록학교 수업은 마을기록 기획에 관한 내용이다. '정말기록당' 최연희 강사님의 물흐르듯 편안한 강의와 함께 마을기록 기획 속으로 스며들어가 본다.
마을기록의 방향성?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폭풍같은 질문이 마구 쏟아진다.
- 왜 기록을 할 것인가?
-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 누가/누구를 기록할 것인가?
-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 어디에 기록할 것인가?
- 어떻게 공개, 공유, 활용할 것인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라서 그런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을기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질문임을 알고 있음에도 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는 선택 장애가 작용하기라도 한 것일까?
선뜻 답을 찾지 못하는 수강생들을 위한 배려인 듯, '정릉'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신 강사님의 실제 마을기록 사례 공유가 이어진다. 정릉을 살아가는 청년과 주민들의 생활이야기를 채집해 발간하는 '협동조합 성북신나'의 웹진 신나지, 정든마을과 국민대가 협업해 발간한 주민 6명의 생애사 아트북, 시내버스 1번 종점의 스토리를 발굴해 토크콘서트까지 진행했던 정릉버스 종점이야기 등 소소하지만 다양하고 생생한 마을기록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졌다.
지금껏 '마을기록'하면 시대와 변화의 흐름에 따라 마을단위로 거창하게만 다가오던 소재 및 주제들이 약간 버겁게 느껴지던 차에, 정릉에서 진행된 소소하면서도 다채로운 주제들이 가뭄의 단비처럼 마음 한 구석을 적셔오는 듯했다. 특히 단 몇 명의 주민들의 생애만을 가지고 생애사 아트북을 만들어낸 것은 그야말로 극히 포커스를 좁힐대로 좁혀 놓은 선택과 집중이 아닐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의 삶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 막 따온 생생한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만큼 그 기록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 중 시내버스 1번 종점의 실제기록 및 버스기사들과 안내양의 이야기를 담은 '정릉버스 종점이야기'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였다. 평소 피쳐스토리(Feature Story : 인간적인 흥미에 주안점을 두고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1번 종점과 관련된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발굴해나가는 과정을 듣다 보니, 주제 만큼이나 과정 자체도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1번 종점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했으나, 자료 수집이 원활하지 않아 고생하던 차에 정말 우연히 마을 주민의 소개로 당시 1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던 버스기사님과 연이 닿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십년 전의 종점버스와 관련된 흑백사진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마을기록의 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운행하던 버스 자체를 구해 실내를 전시회장으로 꾸미는 것은 물론, 버스기사님을 초청해 전시회장을 찾은 시민들과 함께 성황리에 토크콘서트까지 마쳤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현장에 가 있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다. 예전에 그 1번 버스를 타고 정릉 근처를 다녔던 시민들의 추억과 그 버스를 운행하던 버스기사님의 일상의 이야기들이 만나 시너지를 내는 마을기록이 되었으니, 정말 살아숨쉬는 마을기록이 아닐 수 없다.
영등포,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
정말기록당의 정릉 마을기록 사례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마을기록 기획 워크샵'을 시작해본다. 강사님의 질문에 수강생들이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등포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새삼 영등포가 마을이야기를 발굴하고 기록하기에 참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의견이 다양한 만큼 앞으로 실습단계에서 마을기록 주제를 잡으려면 쉽지 않겠다는 걱정아닌 걱정(?)도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영등포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와 영등포에 대한 관심사가 각양각색이라고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이번 마을기록학교 운영팀 내부적으로도 수강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해 개별 주제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의견을 모으고 좁혀 2~3개의 소규모 조별 주제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신 듯했다.
정말기록당의 활동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마을기록은 한 사람의 논문 연구라기 보다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협력해 만들어내는 모자이크 연구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조심스레 전달하고 운영팀과 수강생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2개의 소규모 분야로 나누어 조별 주제를 정해 진행해보기로 결정했다.
내가 속한 조는 '시장·공장 등 경제' 분야 담당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마을기록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지만, 주제 분야와 조원들이 결정된 것만으로도 뭔가 새로운 스타트를 끊은 듯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나는 어떤 모습의 마을기록과 마주하게 되려나.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간직한 채 이렇게 마을기록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어 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