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⑨ 8강_마을기록방법(인터뷰)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의 기본적이고 사전적인 정의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기록한다'는 행위에서 펜, 노트북 등 도구를 활용해 글을 남기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마을기록 역시 기본적인 기록의 의미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이 얼마나 안일하고 편협한 판단기준인지······. '해방촌 마을기록단' 이규원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기록'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순식간에 업데이트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마을을 기록할 것인가, 마을기록 방법의 문제
'해방촌 마을기록단'이 마을기록 연구를 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어떻게 마을기록을 할 것인가?'하는 방법 상의 문제였다고 한다. 마을기록이 공공기관의 공공기록이나 학계의 연구논문이 아니기에 마을기록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부합하는 양식이나 틀을 가진 기록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계기였는데,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이 모여 고민한 끝에 마을기록키트 <우리 마을 탐구생활>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마을기록키트를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기록의 방법도 크게 4가지로 나누어 구분하게 되었다는데, 자세하게 정리해보자면 아래의 표와 같다.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 촬영, 그림, 인터뷰 후 기사 또는 인쇄물 형태로만 기록을 남기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해방촌 마을기록단의 마을기록 사례와 마을기록키트의 내용을 살펴보고 나니 마을기록은 정말 무궁무진한 기록의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방촌 마을기록단은 기록의 경계선마저 해방시키는(?) 활용을 해왔던 것인가? ^^;)
언젠가는 영등포에 대한 마을기록도 해방촌처럼 다양하고 풍요로운 기록들로 채워지겠거니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마을기록의 기본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뷰 기술'에 관해 집중해본다.
마을기록 인터뷰의 핵심!
마을기록 인터뷰에서 핵심이 되는 사항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무엇을 인터뷰할 것인가?
둘째,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
셋째, 어떻게 인터뷰할 것인가?
'기록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질의응답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 아닌가? 뭘 그렇게 심각하고 난해하게 접근해야 하지?'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딱히 반박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딱 한 걸음만 더 깊숙이 들어가보자.
1) 정보 VS. 해석
'당신이 기록하고 싶은 내용이 그 마을에 대해 획득가능한 정보인가? 아니면 그 정보에 대해 마을 주민이 갖고 있는 기억이나 느낌, 해석인가?'
인터뷰 대상자인 마을 주민 역시 공적 인물 또는 전문가라기 보다는 일반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마을기록은 일정 기간 그 마을에 거주하면서 특정 사항에 대해 자신들이 경험한 일의 기억이나 그에 대한 느낌, 해석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뷰 시 질문의 초점도 기존의 문헌기록으로 얻을 수 없었던 중요 정보를 이끌어내는 쪽 보다는 주민들이 갖고 있는 특정 시기나 상황의 마을에 대한 기억, 느낌, 해석 등을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2) 대표성 VS. 적합성
'당신이 기록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정보에 대해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
통상 마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예를 들어 마을 유지 또는 이장, 통장 등 행정구역 단위를 대표해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그 마을의 대표적인 인물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기록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록하고자 하는 주제 및 내용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질문에 대해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동시에 현실적인 위치에서 접근이 가능한지, 시간/비용적 측면에서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줄 수 있는지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마을에 위치한 특정 공장이나 회사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을 때 대표성을 갖는 사람은 그 공장이나 회사의 대표(사장)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터뷰를 흔쾌히 수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해당 공장이나 회사의 홍보담당자, 장기 근속자 등 해당 공장, 회사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접근성이 비교적 쉬운 일반 직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3) 구조화 VS. 반구조화 VS. 비구조화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 사전에 모든 질의내용을 정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현장에서 바로 질의응답을 진행할 것인가? 또는 사전에 대략적인 범위만을 정해놓고, 현장에서 진행하면서 초점을 줄여나가며 질의응답을 진행할 것인가?'
만약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인터뷰라면 사전에 모든 질의내용을 정해 합의 후 진행하는 '구조화 인터뷰'가 적절하다.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얻고자 하는 정보에 초점을 맞추게 되므로, 표준화된 질문을 통해 중립성·객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전에 아무런 준비 없이 현장의 분위기 또는 흐름에 따라 질의응답을 진행해나가는 것을 '비구조화 인터뷰'라고 한다. 얻고자 하는 정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탐색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데, 마치 인터뷰가 아닌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 간의 수다처럼 대화가 이어지므로 의미있는 인터뷰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마을기록의 경우, 보통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심층 인터뷰이며 인터뷰를 통해 의미있는 정보를 획득하려는 분명한 목적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구조화 인터뷰'와 '비구조화 인터뷰' 모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질문의 대략적인 틀은 정해놓지만, 현장에서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반구조화 면접'이 마을기록 인터뷰 방법으로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답변에 따라 이어지는 질문의 내용을 유동적으로 바꾸면서 탐색하고자 하는 정보로 초점을 좁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기록 인터뷰를 위한 Tip!
그렇다면 마을기록 인터뷰를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을 준비하고 주의하는 것이 좋을까?
아무래도 이제 막 마을기록을 배우기 시작한 만큼 의욕은 앞서지만, 전문적인 인터뷰어가 아닌 까닭에 낯선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의욕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사실 예전에 업무관계로 짧은 1:1 심층 인터뷰 또는 서면인터뷰, 소규모 그룹 인터뷰(FGI : Focus Group Interview)를 몇 번 진행해본 적은 있지만, 주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거의 초보나 다름없다.
인터뷰 초보자들의 걱정을 눈치채신 듯, 이규원 강사님의 마을기록을 위한 인터뷰 Tip이 이어진다.
약 2시간에 걸쳐 마을기록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Tool과 인터뷰 기법에 대해서 배우고 나니, 지난 시간까지는 와닿지 않던 마을기록의 모습이 한층 뚜렷해진 느낌이 든다. 손에 잡히지 않던 이론적 내용이 조금씩 실체화되는 모습이랄까. 물론 마을기록은 여전히 내게 만만치 않은 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난 현장실습 때 문래동 예술창작촌에서 느낀 나의 생각처럼, 또 지금까지 여러 강사님들께서도 자주 언급하셨던 것처럼 마을기록에 정해진 형식도, 한 가지 방식의 정답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손대기조차 어려운 과제라기 보다는, 어떤 결과물로 마주하게 될까 궁금해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제에 가깝다.
이제 조금씩 이론에서 배운 내용을 실습으로 구체화해야 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조별 실습을 통해 마을기록 아키비스트로서 한 단계 성장해야 할터인데 잘 할 수 있으려나? 생각이 많아지는 한 주간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