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아 Mar 21. 2022

'YD 마을기록공방'의 탄생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⑩ 실습1_마을기록 기획(1)

매주 계속되던 마을기록학교 강의가 이번 주는 휴강이 되었다. 강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수강생들이 마을기록을 해보는 실습이 필요한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2주 전에 대략적인 분야와 조원들은 결정이 되었지만, 구체적인 주제를 정해서 실행하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가만 있어보자, 주제를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잡아야 하는데? 컨셉이 확실해지도록 기획의도부터 써야하고 또 뭐가 있더라. 아, 진행일정도 잡아야 하지?'

회사를 그만둔지 3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직업병만은 사라지지 않고 몸에 배어서 어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지난 시간들 어떻게 참고 지낸건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우리 조의 구성원은 나를 포함해 모두 4명인데, 정말 다양한 연령대에 저마다 다른 분야의 일을 하시는 분들만 모여서 흥미롭다. 박물관 학예사 관련 일과 강의를 하시는 B쌤, 영화 시나리오 쓰는 일을 하시는 C쌤, IT기업 전산실에서 일하시다가 퇴직 후 기술감리 일을 하시는 L쌤, 그리고 기업에서 ESG 업무를 담당했던 나까지 정말 겹치는 곳 하나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조원은 5명으로 한 분이 더 있었지만, 강의에서 실습단계로 넘어오면서 실습을 통해 결과물을 창출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끼고 빠지게 되었다. 마을기록 자체가 정답이 없이 마을주민 스스로 자유롭게 원하는 내용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는 게 제일 큰 매력이지만, 때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자체만으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제한 없이 마음껏 뛰어놀라는 상황을 즐기는 천방지축같은 나의 천성에 감사해야하는 것인가? ^^;



첫 번째 프로젝트 회의


시기가 시기인 만큼 화상회의로 첫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했다. 몇 주간 함께 강의를 수강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화상으로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려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분위기를 깨고 래포를 형성하는 것! 그저 단순히 아이스 브레이킹을 원했던 것뿐인데 본의아니게 Facilitator 역할을 자처하게 되는 나. 잠깐의 시간 동안 각자의 소개와 가벼운 얘기들로 처음의 어색함을 날려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론이다. 우선 주제에 관한 이야기부터!

각자의 관심사에 관해 자유롭게 얘기한 후 그 결과를 통해 '시장·경제 분야'와 '문화 분야'로 두 조로 나뉜 터라, 좀 더 주제의 범위를 좁히고 명확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등포역에 관심이 많으신 B쌤과 그 주변의 시장을 언급하신 L쌤, 공장지대 그 중에서도 경성방직에 관해 관심을 표현하신 C쌤, 그 모든 것들 안에서 피쳐스토리를 찾고 싶은 나까지······.


한동안 정말 제한없는 브레인스토밍이 이어졌다. 생각에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실험해보는 기분? 아이디어가 샘솟는 조원들이 모여서 참 좋구나 흐뭇해하다가 '아, 이게 아니지!' 번뜩 정신을 차려본다.


이제는 좀 정리를 할 차례다.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기록한 메모를 보며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본다. 우리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00여년 간 영등포역 인근에서 벌어진 변화'를 제시했다. 반색하며 동의해주는 조원들과 함께 큰 프레임 안에서 시장과 공장 등 몇 가지 구체적인 스팟을 설정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해본다. 일단 1차 회의는 이 정도 선에서 만족! 각자 관련 내용에 관해 온라인 문헌조사를 한 후 정리해서 다음 회의 때 다시 심도깊게 얘기해보기로 했다.


< 2021 마을기록 프로젝트 1차 기획안 © 彼我 >



두 번째 프로젝트 회의


온라인 문헌조사 후, 그 결과를 정리해서 다시 모인 두 번째 회의시간이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묘하게도 같았다. 바로 아직도 주제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우선 100년간 영등포역 인근의 변화라는 큰 프레임만 잡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기록의 중심이 되는 포커스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조원 모두 동의했다.


우선 그동안 자료조사를 하면서 얻은 정보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역사책부터 논문, 보도기사 등 영등포역인근에 대한 각종 자료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유사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곧 없어진다', '사라진다', '못보게 된다' 등등 요즘 한창 재개발 이슈로 어수선한 영등포역 인근인 만큼 그 모습이 크게 바뀌거나 사라질 곳들이 꽤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사라져가는 것들에 기록의 초점을 맞춰보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그리고 영등포역 인근에 부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원인으로 먼저 제시해보자는 내 생각이 덧붙여지고,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것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보자는 결론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정해진 우리의 첫 마을기록 프로젝트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영등포역 인근의 사라져가는 오늘을 기록하다!"

'공장, 시장, 쪽방촌,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영등포역 인근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도 붙여본다.


진행일정은 11월말에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예상해 역으로 산출해서 5단계로 구분해서 일정을 수립했다. 그리고 마을기록학교 운영팀을 통해 프로젝트 최종 결과물이 책자로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나는 '마을기록 보고서' 형태로 1차 결과물을 완성하되, 여유가 된다면 부록으로 마을연표나 인상적인 순간을 드로잉(연필스케치)으로 표현하거나 자료조사를 통해 발견한 의미있는 통계를 인포그래픽으로 나타내보는 것 등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보고서 내용 안에 영등포역 인근의 변화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로 기록하는 것 외에 마을기록을 하면서 각 장소에서 느낀 단상들을 시로 표현하자는 C쌤의 의견도 반영하기로 결정! 이로써 마을기록 프로젝트 주제명과 기획의도, 진행일정, 보고서 목차까지 담긴 '2021 마을기록 프로젝트 기획안'이 완성되었다!!!


< 2021 마을기록 프로젝트 2차 기획안 © 彼我 >



뭔가 이번 주 할 일을 충실히 끝냈다는 뿌듯함으로 노트북을 닫으려는 찰나, 갑자기 뭔가를 빠뜨렸다는 허전함이 스며든다. 그게 뭘까 머리를 또록또록 굴려가며 생각을 한 끝에, 멀리 달아나려는 그 녀석을 잡아챘다.


'이름, 바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우리 조에 아직 활동명이 없다는 것!'


시장·경제 분야 조 또는 1조로 단순히 두 개의 조를 구별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이름이 필요했다. '영등포를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상징을 포함하면서 진심으로 마을기록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던 중 자료조사 차 도서관에서 빌려온 '영등포의 역사와 지명이야기'가 눈에 띈다. 그 책에 의하면, 영등포란 지명의 어원은 영등(민속전통놀이인 연등놀이 할 때의 연등 또는 영등굿에서의 영등신을 의미하는 '영등')+포(포구)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등포에서 '영등'의 머리글자를 따서 'YD'로 하고, 마을기록 프로젝트에 진심인 우리 조원들의 마음가짐을 반영할 수 있게 '마을기록공방'으로 하면 어떨까?


영등이 아닌 YD라고 영어이니셜로 한 이유는 지금은 영등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활동범위를 영등포에서 서울, 나아가 한국 전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기에 그 때를 대비하는 것도 있고, Young Dreamer처럼 추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와, 벌써부터 야심차다?! ㅎㅎㅎ)


< 마을기록 프로젝트 활동명 소개 © 彼我 >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붙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활동명과 이를 설명하는 의미를 적어 조원들에게 동의를 구해본다. 이름의 의미상 이번만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B쌤의 유쾌한 반응에 괜히 신이 났다. 그게 이번 마을기록학교의 취지인 것 같다고 동의해주는 C쌤과 늘 애쓰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L쌤까지!


YD 마을기록공방 여러분! 앞으로 계속될 마을기록 프로젝트에 늘 함께 해주실거죠? (^O^)/


                                                                                                                                            to be continued...

이전 09화 정해진 답은 없다! 무궁무진한 기록의 세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