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⑪ 9강_마을기록방법(사진)
비록 한 때이긴 했지만, 대학시절 잠깐 카메라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은 존재하지 않았고, DSLR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얼마되지 않던 시절이라 사진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정말 가성비를 따져야 했던 학생들에겐 사치로 여겨지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똑딱이 카메라는 열외로 했을 때의 얘기!)
다행히 당시 내 주변엔 DSLR이며 필름카메라를 전문가처럼 다루던 지인들이 꽤 많아서 진지하게 시간을 들여가며 설명을 듣기도 했고, 때론 함께 출사를 나가서 어깨 너머로 그들의 사진솜씨를 훔쳐보며 내 나름의 작품(?)을 만든다고 공들이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문과 출신인 데다가 기계 쪽으로는 영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기계치에 가까운 성향인지라, 날씨와 장소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 속도를 조절해가며 노출을 맞추는 게 내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기종별 각종 특성과 기능을 숙지한 채 때와 장소에 맞는 노출을 딱 맞춰 사진을 찍는, 일명 뇌출(?)에 익숙한 그들과 점점 멀어지는 격차만을 체감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카메라에 대한 나의 외사랑은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인연의 끈이라는 게 한 번 맺으면 끊어내기 어려운 건 사람과 사람만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하게 된 첫 일이 언론홍보인지라 결국은 다시 카메라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은 인간보다 한 발 앞서 진보하는 법이어서, 적정 노출로 알아서 맞춰주는 오토기능 덕분에 업무상 DSLR 카메라를 사용하는 일이 난감하지만은 않았다. 또한 모든 기술은 몸이 기억한다는 게 맞는 것인지, 당시엔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카메라 작동법도 꽤 잊지 않고 손으로 기억하고 있던 것도 한 몫 했던 듯하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용케 바라보고 싶은 대상을 찾아냈다고 해도 처음 느낀 그 감정 그대로 순간에 잡아내는 일은 거의 신의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맞는 적정한 사진 구도를 잡아내는 귀신같은 감각부터 손바닥만한 액정화면 안에 순간의 연출력을 담아내는 일까지 결코 범인의 능력으로는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은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실력이 늘거라는 조언은 참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다. 기술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찍는 게 더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말도.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이 세상에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은 애초부터 나뉠 필요가 없고, 중요한 행사나 프로젝트를 위해 전문 사진작가를 섭외해서 작업을 할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어찌보면 꿈많은 아마추어를 위해 사진찍는 연습을 많이 해보기를 권하는 전문가들의 따스한 위로의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재이해
그런 의미에서 마을기록방법으로서 사진에 관해 배우는 오늘의 수업이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주로 재난이나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역에서의 사람들의 삶을 담아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현 강사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여본다.
수업의 처음은 역시나 강사님의 다큐멘터리 사진기록들. 큰 재난이 일어났거나 내전이 진행 중이어서 일반인들은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보이는 곳을 찾아가서 현지 사람들의 삶은 물론 그들의 미세한 표정까지 하나하나 잡아낸 사진들이 눈길을 붙든다. 이어서 사회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로서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유도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카메라의 순기능에 관한 강사님의 설명을 듣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진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인 <Photograph>의 어원은 그리스어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빛을 의미하는 Phos와 그리다를 뜻하는 Graphos가 합쳐진 말로, 이를 해석해보면 '빛으로 그리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하면 필기구로 글자를 써서 나타내는 기록이 아닌, 빛으로 그림을 그려 나타내는 기록인 셈이다.
'빛으로 그림을 그려 나타내는 기록'이라니 어쩐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점점 더 그 뜻이 와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진을 찍는 이유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사진은 꼭 거창한 작품을 위해서만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 거리 풍경이나 상점·사람·동물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쉬운 매체(휴대폰 카메라 등)를 이용해 찍을 수 있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마을기록으로서의 사진
그렇다면 마을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 것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눈과 기술을 따라갈 수 없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지역이 아닌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평범한 마을을 사진으로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저 다큐멘터리 사진들처럼 영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사진이 나올 수 있을까?
첫째, 무엇을 찍을 것인가?
나와 주변에 대한 성찰과 관찰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것들을 낯설게, 낯선 것들을 친숙하게 바라보면서 사진을 통해 개인적인 주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불특정 다수와의 교류 또는 역사적 가치를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욱 신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물론 선입견을 배제하면서도 자기만의 관점을 바탕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어떻게 찍을 것인가?
시각 언어이자 기호로서의 사진을 나타내려면, 기본적으로 렌즈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용하기 쉬운 휴대폰 카메라뿐 아니라 DSLR이나 필름카메라 등 다양한 카메라의 사용방법을 습득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기본적으로 카메라의 원리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자기 장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순광, 역광 등 모든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빛을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노출의 문제!) 또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주제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결과물을 얻으려는 접근법을 시도해 볼 것!
마을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위한 접근법으로 '포토 스토리'를 제작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사진잡지 <LIFE>에서 처음 개발한 방식으로, 단편소설의 구조와 같은 형식으로 사진들을 구성하는 것인데, 눈길을 끄는 발단(eye-catching beginning)으로 시작해서 발전되는 행동(developing action), 절정(climax)을 지나 인상적인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포토 스토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주제를 선정해 기획안을 작성한 후, 그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원을 컨택해 사진을 촬영하고 작업노트에 기록하면서 한 편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사진 역시 무작위로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경사진 · 미디움사진 · 클로즈업 · 포트레이트 · 상호작용 · 기호 ·시퀀스 · 결정타 등의 8가지 요소를 골고루 안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직은 마을기록으로서의 사진을 대하는 것이 내게는 조심스럽기만 하다. 카메라 작동법을 숙지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진 구도나 노출의 숙련을 고민하는 차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카메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게 될 세상을 위해 내 마음 속에 어떤 필터를 장착해야 할까의 문제인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진을 찍는 사람의 내면의 성찰과 주변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국은 사진의 결과물을 결정짓는 최후의 셔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꼭 사진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마을기록 자체를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성찰의 눈이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가 문제일 수도······.
덧글,
평소에 가장 애정해마지 않는 사진집의 표지가 떠오른다.
전 세계 100명의 사진작가들이 한 마음이 되어 만든 M.I.L.K. 컬렉션, 이른바 Moments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 (친밀감과 웃음, 그리고 가족애의 순간들)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기록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