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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r 21.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관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⑬ 실습2_마을기록 기획(2)

프로젝트에 대한 의욕으로 활활 불타올라 앞만 보고 전력질주하던 2주 동안은 정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만 같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상하다? 왜 이렇게 순조롭지?'하는 반대급부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학생시절 그리고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겪었던 그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단 한 건도 수월했던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나 보다. 사실 1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해도 때로 생각지 못한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인데, 생각이 저마다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어찌 난관이 없겠는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염려했던대로 프로젝트의 난관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난관, 계속해서 바뀌어가는 기획 방향


연이은 두 번의 회의를 통해 대략적인 기획방향이 확정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조 구성원들의 저마다 다른 생각과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 예상보다 빠듯한 일정이 결합되면서 본래의 기획 방향에 차질이 생겼다. 본래는 기획의도를 설명하는 들어가는 말부터 시작해 기-승-전-결을 보여줄 수 있게 '마을기록 보고서' 형식의 1차 창작물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포토에세이나 인터뷰집, 드로잉북 등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전시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 마을기록학교 수강생들이 진행하는 실습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은 소책자 형태로 11월까지 발간되어야 하므로 디자인/인쇄작업을 위해 9월말 늦어도 10월 초까지 작업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상세한 설명과 자료가 포함되어야 하는 보고서 형식을 두 달여 만에 완성하기란 어려운 노릇. 결국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진과 인터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면서 '포토에세이+인터뷰 기록'의 형식으로 기획 방향이 변경되었다.


사실 그 동안 나름 기획의도와 영등포역 인근에 대한 범위 정의 및 특징, 영등포역에 부는 변화사항 등에 관해 간간이 문헌조사한 자료들을 참고해 보고서 형태로 조금씩 정리해오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컸지만, 조별 프로젝트인 점을 우선해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로서 일해온 분들의 생각이 모인 만큼 다수의 의견이 혜안인 경우가 많았음을 경험으로 체득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껏 열심히 정리해온 보고서 자료를 이대로 사장시키는 것 또한 너무 아까워서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나름 홀로 작업을 진행하되, 최종 결과물에 일부 발췌해서 사용할 수 있으면 포함시키고 나머지는 이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포스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 역시 마을기록 활동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 2021 마을기록 프로젝트 최종 기획안 © 彼我 >



두 번째 난관, 사진의 초상권과 저작권


기획 방향을 변경하고 나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포토에세이에 활용될 '사진'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발생한 커다란 난관 한 가지! 원한다고 해서 현장에 나가 제약 없이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인물 사진을 찍을 경우 해당 인물의 초상권으로 인해 촬영에 대한 허가는 물론, 촬영한 사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승인까지 서면으로 작성된 동의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아닌 건물이나 소유물 등은 초상권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특정인의 소유물로 식별될만한 사진의 경우에도 역시 사유지/사유물 동의서가 필요하다. 물론 마을기록은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위함이 아닌, 비상업적 나아가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가깝지만 해당 사진들이 책자 발간 또는 온라인 게시 등의 형태로 공개되므로 초상권이나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보니 현장답사를 나가더라도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염려와 일일이 사진을 찍기 위해 동의서를 받는 번거로움을 감당할 생각을 하니 우리 조 모두 시작하기 전부터 정신적으로 번아웃(?)이 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다!!!



세 번째 난관, 인터뷰 대상 선정과 실현 가능성


사진과 함께 큰 축을 담당할 인터뷰 역시 대상자 선정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시장, 공장, 집창촌, 쪽방촌의 사라지는 상황과 변화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인터뷰 대상자는 분명 그 현장에서 오랜 세월을 발부티고 살아온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잡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재개발 이슈인데다가 개발구역 범위가 넓다 보니 찬반의견도 분분하기 마련인지라, 안그래도 흉흉한 분위기에 본인의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흔쾌히 인터뷰를 해줄 이가 있을까? 게다가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거주민 또는 종사자들에게 있어 인터뷰 자체가 반갑게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는 위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를 인터뷰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진행일정이 빠듯한 지금 장소별로 4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고민은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깊어만 갔다.



마침내 다다른 난관의 끝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몇 번에 걸쳐 조 회의를 진행해보고 각자 고민도 해봤지만 계속해서 제자리만 맴도는 상황을 보다 못해 우리는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결정했다. 바로 우리의 든든한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마을기록학교 운영팀'과 마을기록 기획 강의를 해주셨던 '최연희 강사님'!


운영팀 사무실을 방문해 약 한 시간 정도 우리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난관들에 관해 도움을 요청했다. 또한 최연희 강사님과의 화상회의를 통해 우리의 마을기록 주제와 기획의도, 지금까지 진행된 사항과 어려움에 관해 질문하고 피드백을 갖는 소중한 시간도 가졌다.


그 결과, 100% 해결은 아니더라도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에 초상권이나 저작권 이슈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 미리 제약을 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물 사진을 촬영할 때는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 하겠지만, 우선 현장에 나갔을 때는 거리나 건물, 소유물 등을 찍을 때마다 일일이 저작권을 신경쓰기 보다는 우리의 주제와 기획의도에 맞춰 다양하고 충분한 자료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겐 '사후 동의'라는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촬영한 모든 사진을 마을기록 결과물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마을기록물을 구성할 사진을 선정한 후 해당 사진에 대해 초상권이나 저작권을 위한 동의가 필요할 경우 그 때 당사자를 찾아가 설명하고 사후동의서를 받는 방법이다. 당사자에게 활동의 의의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 동의서를 받는 절차 또한 마을기록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만약 그럼에도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과감하게 그 사진을 포기하고 대체 사진을 찾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인터뷰 대상 선정은 완전히 다른 시야로 바라보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우리의 기획의도가 영등포역 인근에서 사라져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그 지역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반드시 그 곳에 거주하거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을 인터뷰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이나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일반 주민들이나 가게를 운영해온 상인들, 영등포역 철도공사 직원들,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위해 그 곳을 지나다니는 직장인들, 집창촌이나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서 오랜 기간 일해온 관련 기관의 직원들,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들 등 제3자라 하더라도 오랜 기간 이 곳의 변화를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다!


기록물 형식에 있어서도 선입견을 갖거나 제한선을 그어두는 부담부터 없애기로 했다. 인터뷰 건수를 꼭 몇 건 채워야지, 이렇게 찍은 사진을 반드시 포함시켜야지 또는 이런 형식으로 자료를 만들어야 하니 그에 맞춰서 자료를 준비해야지가 아니라, 일단은 일정기간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인터뷰를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 둘씩 모은 데이터를 모두 모아서 늘어놓고, 논의를 통해 배치하면서 주어진 데이터 안에서 결과물을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더 있다면 추가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마음먹은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내 어깨와 마음을 짓누르던 부담감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버렸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부담감에 짓눌려 프로젝트 활동을 하기가 답답해졌다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가짐을 바꾼 것만으로도 이렇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기분이라니,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 것인가! 


이번 주말엔 우리 조원 모두 모여 단체로 현장에 답사를 나가기로 했다. 아마 이전의 나라면 정확한 이동경로부터 시작해서 찍어야 하는 사진 리스트며 사전 설명자료까지 준비하느라 정신 없이 바빴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을 비운 지금, 그 모든 것은 잊기로 했다. 대략적인 장소의 이동순서만 조원들과 확정했을 뿐, 다른 것은 현장에 나가서 마음껏 보고 듣고 기록해보려고 한다. 다만, 이번 첫 현장 답사를 통해 이것 한 가지 만큼은 확정하기를 나 자신과 조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이번 마을기록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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