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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r 21. 2022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⑭ 실습3_현장 답사(1)

드디어 마을기록을 위한 현장 답사를 나서기로 했다. 출발점은 현재 한창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정문이다. 이 곳을 시작으로 성매매 집결지(집창촌), 쪽방촌을 거쳐 영등포시장 역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영등포전통시장 내 상가들과 재래시장을 둘러볼 계획이다.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은 집을 나와 도보로 7~8분 거리에 있다. 내 일상 속에서 평소 오가며 지나치던 거리 풍경임에도 '현장 답사 및 사진 촬영'의 목적을 가지고 보려니 왠지 모르게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 또한 같은 대상이라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볼 때의 단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언급했겠거니 싶다.


  '그래, 기록을 하려면 자세히 보아야 또 여러 번 오래 보아야 예쁘지!'


걸음을 재촉하니 오늘 현장 답사의 출발점인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의 윗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리모델링을 위한 공사 장막이 쳐져 있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휴일인데도 공사가 한창이다. 조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한 것도 잠시, 아쉽게도 공사현장 출입은 건축주 허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와 그만 풀이 죽는다. 하지만, 현장에 계시던 소장님처럼 보이던 분이 이곳의 자산관리회사에 연락해 방문 목적만 잘 설명하면 가능할 거라는 귀띔을 해주신다. 마을기록이라는 비영리 목적이긴 하지만 개인 자격보다는 공공기관의 의뢰가 더 수월할 듯 싶어 마을기록학교를 운영 중인 도서관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일대 모습 © 彼我 >


대선제분 영등포공장 정문을 뒤로 하고 좁은 찻길 하나만 건너면 왼쪽은 타임스퀘어, 오른쪽은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골목길의 시작점이다. 최근 몇 년간 서울 및 수도권 시내의 성매매 집결지가 정비되고 있어서 이곳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라고 한다. 아직 한낮이라 그런 것일까? 모든 가게의 짙붉은 커튼이 내려와 있고, 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을씨년스럽기만 한 풍경이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 보니, 유리창마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기한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곳 역시 팬데믹으로 인한 대면 제한 때문에 타격을 입은 것이라 생각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일대 모습 © 彼我 >


영등포역 인근에서 가장 유명하고 붐비는 타임스퀘어 뒤에 이렇게 이질적인 풍경이 자리잡고 있을지 그 누가 짐작이나 할까? 영등포에서 오랜 기간 살아오거나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알 길이 없을 묘한 이질감의 공존이다. 1.5층? 2층이 될까말까한 낮은 건물들이 일자로 늘어서 있는 이곳의 지붕 위로 우뚝 솟은 타임스퀘어를 올려다 보려니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타임스퀘어를 병풍처럼 거느린 듯한 모습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팬데믹 시기가 아닌 평범한 날에, 한낮이 아닌 밤중에 이곳을 바라본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려나?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 성매매 집결지 위로 우뚝 솟은 타임스퀘어 모습 © 彼我 >


이곳의 재개발 및 정비사업을 알리는 현수막을 지나치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쪽방촌으로 향했다. 영등포역 방향으로 대로변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쪽방촌으로 향하는 골목길이 나 있다. 골목길 입구에 있는 급식소 역시 '코로나 19'로 인한 일시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급식소 오른 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왼편에는 홈리스 복지센터, 맞은쪽 오른편엔 요셉의원이 자리잡고 있다. 요셉의원은 영등포의 노숙인들을 위한 자선의료기관이다. 곧 진행될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완료된 후에도 공공주택지구에 함께 입주할 예정일만큼 이곳의 필수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 영등포 쪽방촌 일대 모습_ 골목길 시작 부근 © 彼我 >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길 곳곳에 폐휴지 수거용인 듯한 녹슨 리어카들과 공공주택사업에 대한 안내문들이 붙어 있고, 이어서 영등포역 고가 차도 밑의 공터가 나타난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빈 소주병, 토사물, 빗물 웅덩이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렇게나 제 집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도 모르게 순간 긴장하게 되는 순간이다. 길가이긴 하지만 그들의 마당이나 다름 없는 공간을 허락 없이 방문한 만큼 가급적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나쳐본다.


< 영등포 쪽방촌 일대 모습 © 彼我 >


미로처럼 나 있는 곳곳의 골목길.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골목길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길치인 내게는 정말로 버거운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몇 년 전 서울시의 프로젝트 기획으로 봉사자들이 그렸다는 벽화들이 꽤 많아서 그나마 쪽방촌의 어두운 골목길을 조금이나마 밝게 덧칠해주는 느낌이다. 조만간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이 그림들이 거주민들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본다.


이곳에서도 역시나 타임스퀘어는 참 잘 보인다. 타임스퀘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보이려나? 아니겠지 싶은 마음에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려는 찰나 재개발에 항의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띈다. 반대하는 이들은 과연 이곳의 거주민일까, 아니면 그저 이곳의 토지 또는 건물 소유주일까? 자꾸만 삐딱해지려는 심사를 뒤로 하고, 쪽방촌을 빠져나왔다.


< 쪽방촌 재개발에 항의하는 내용의 현수막 © 彼我 >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최근 영등포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영등포시장역 근처 시장들이다. 이미 일부 구역은 재개발이 끝나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일부 구역은 관리처분계획이나 조합설립 인가가 나서 곧 이주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등포시장은 워낙 넓은 지역에 여러 개의 상가들이 여기저기 조금씩 거리를 두고 분포되어 있어서 사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시장이라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영등포에 오랜 기간 살아온 사람들도 시장 상인이 아니라면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 그래서인지 뉴타운 재개발 지역도 구역별로 나뉘어서 개발되는 듯하다. 이미 개발 및 입주가 끝난 곳은 1-3 구역(포레나영등포센트럴)과 1-4 구역(아크로타워스퀘어)이고, 1-2 구역과 1-12 구역은 조합설립 인가, 1-13 구역은 관리처분 인가가 떨어져 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이 중 1-12 구역과 1-13구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1-13 구역은 영등포재래시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1-12 구역에는 동남, 로터리, 삼구, 남서울, 제일, 영신상가 등이 포함되는 곳이다. 보통 이 구역들을 모두 합쳐서 통상 '영등포전통시장' 또는 '영등포중앙시장'으로 불리는 듯하다.오늘 모든 곳을 둘러보기란 어려운 노릇이어서 시장은 재개발이 될 구역들의 전반적인 겉모습만 훑어보며 위치를 파악해보기로 했다.


< 영등포전통시장 內 남서울, 영신, 제일, 삼구, 로터리, 동남상가 일대 모습 © 彼我 >


1-12구역은 여러 개 상가들이 낮은 3~4층짜리 건물에 밀집해 있는 곳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까지는 재개발 분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1-13 구역의 재래시장 쪽은 일부 아케이드와 통로 정비사업을 통해 바뀐 곳들과 아직 정비 전의 모습 그대로 있는 곳들이 대조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 영등포전통시장 內 재래시장의 야시장 입구 일대 모습 © 彼我 >


마지막으로 돌아본 영등포전통시장의 '야시장 입구' 쪽에는 1-13 구역의 재개발을 반대한다는 철거상인 대책위원회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대로변의 차량들에도 이주대책에 대해 영등포구청의 입장표명을 요청하는 현수막들이 보인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재개발'이라는 단어는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보다는 억울함이나 상처를 주는 듯한 어감이 있다. 개발을 주도하는 행정기관부터 해당 지역의 토지 또는 건물 소유주, 현재 해당 지역에서 살고 있는 거주민 또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인 등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너무나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서 서로의 목숨줄을 죄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곳 역시 잘 해결되어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해피엔딩이길바라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안일함일까,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이의 어리석음인 걸까나.


< 영등포전통시장 재래시장 재개발에 항의하는 현수막 © 彼我 >


약 3시간에 걸친 현장스케치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 앉아 오늘의 현장 답사에 대한 생각들을 나눠본다. 현장을 둘러보고 나니 이제서야 뭔가 밑그림이 대충 그려지는 기분이다. 2차 현장 답사는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이 목표! 반드시 성사시켜서 80년도 더 된 공장 건물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싶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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