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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 Mar 21. 2022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레퀴엠

[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⑯ 실습5_현장 답사(3)

마을기록 실습의 주제인 '영등포역 인근의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현장답사가 필요한 곳은 영등포전통시장과 대선제분, 쪽방촌과 성매매집결지이다. 첫 번째 현장답사 때 이 모든 곳의 전반적인 현장스케치를 할 수 있었고, 이후 대선제분은 두 번째 현장답사를 통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쪽방촌과 성매매집결지는 다음에 있을 '다시함께상담센터' 인터뷰 때 추가로 둘러보기로 되어있어서 영등포전통시장을 별도의 현장답사를 통해 둘러보기로 했다.


< 영등포전통시장 內 재래시장 전경과 아케이드의 바구니 조형물 모습 © 彼我 >


나름 영등포구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영등포전통시장'이라고 하면 그 범위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참 쉽지 않다. 교통의 중심지인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점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상가들이 여럿 형성되어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등포전통시장은 보통 영등포에서 가장 큰 '영등포중앙시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956년에 개설된 역사깊은 영등포재래시장 뿐만 아니라, 남서울·영신·삼구·제일·로터리·동남상가와 기계공구상가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시장이다.


재래시장의 북문(야시장 입구)을 통해 들어서니, 익숙한 시장풍경과 함께 천장 아케이드에 걸려있는 바구니로 만든 조형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빨간색, 파란색, 분홍색 색색의 플라스틱 바구니로 꾸며놓은 조형물이 시장의 풍경과 어색함 없이 잘 어울려서 인상적이다.


< 재래시장의 생선가게, 닭집, 채소가게, 잡화점, 두부가게, 전집 풍경 © 彼我 >


시장에는 각종 점포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생선가게의 매대 위에 놓여있는 각종 말린 생선과 시장 닭집에서만 볼 수 있는 원통형 도마 위의 토막난 생닭, 붉은색 망에 가득 채워져있는 양파와 감자, 순두부 비지와 콩물, 두부를 파는 두부가게, 명절이 다가올 즈음엔 북새통을 이루는 오래된 전집까지... 얼핏 둘러본 시장의 모습은 몽글몽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해온다. 시장의 골목길에서 드문드문 장을 보는 사람들 모습 위로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거닐던 어린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 재래시장의 오래된 골목길과 상품 진열대... 그리고 낡은 벽보 © 彼我 >


시장 곳곳에서 보이는 낡은 벽면 위의 누덕누덕 떨어져나간 오래된 벽보와 광고 전단지, 여러 갈래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여관과 점집 간판, 점포의 상품 진열대 위엔 주인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상품들이 보인다. 반찬가게의 손맛이 가득 담겨있을 밑반찬들과 잡화점에 가득 쌓여있는 바구니와 프라이팬, 양은냄비까지... 곧 있을 재개발로 사라질 모습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친숙한 시장의 모습이다.


다만,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있는 시장의 모습과 다른 점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판매되는 상품의 가지수와 양은 더 적을지언정 사람들 수 만큼은 북적거려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았던 것 같은데... 몇 년 전 주변에 타임스퀘어와 이마트를 비롯한 복합쇼핑몰과 대형마트가 들어선데다가 곧 있을 재개발로 인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 영등포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재래시장에서 곧 사라지게 될 곳들과 정비 후 남아있게 될 곳들의 상반된 모습 © 彼我 >


영등포뉴타운 재개발 1-13구역에 해당하는 재래시장은 전체가 아닌 일부가 재개발 대상이다. 따라서 절반 가량의 점포들은 이미 정비사업이 진행되어서 새로운 아케이드와 간판과 매대로 일괄 교체되어 재개발 대상인 낡은 점포들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린 모양새처럼 아케이드의 색이나 간판의 모양만 봐도 재개발 대상인지 아닌지 그 경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공간이 맞나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본 근처의 오래된 전집 주인 아주머니가 어디서 나온 사람들이냐며 말을 건넨다. 마을기록의 취지를 설명하며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보니 주인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재개발 얘기가 처음 나오고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조합을 중심으로 정비대상 구역과 재개발 구역이 나눠지고 보상과 이주가 확정되었지만, 정작 이 시장에서 몇 십년 동안 터를 잡고 장사를 해왔던 영세상인들은 노년층이 많아서 정보에 어두워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정비를 마친 구역으로 이주하고 싶어도 기존 월세보다 2~3배 이상 높은 월세를 부담해야해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주로 현금 거래로 장사를 하는 영세상인의 특성 상 세무증빙 등 보상을 위한 증빙자료를 제출하기 어려워 합리적인 보상도 받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숨만 내쉬는 주인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으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장 안팎 곳곳에 걸려있던 미흡한 이주대책과 보상협의로 인해 재개발을 반대한다던 현수막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싶다. 무거운 마음으로 재래시장을 나와 상가 쪽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 영등포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곧 사라지게 될 남서울·삼구·제일·로터리·영신·동남상가의 모습 © 彼我 >


재래시장에 인접해 있는 남서울·삼구·제일·로터리·영신·동남상가 역시 영등포뉴타운 재개발 대상 구역에 속해 있어서 재개발을 위한 이주가 시작되면 지금 이곳의 모습 역시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골목형으로 자리잡은 재래시장과는 달리 이 상가들은 건물형으로 저층의 상가건물 안에 수십 개의 점포들이 자리잡은 모습이다. 건물의 출입구 유리문이나 건물 벽면에 상가 간판이 자그마하게 걸린 형태라서 각 상가를 명확하게 구분짓기도 쉽지 않다. 다만 각 상가별로 주요 취급품목에 차이가 있어서 상인들이나 단골손님들은 상품 품목을 보고 상가위치를 쉽게 구분해낸다고 하니 참 신기하다.


< 곧 사라지게 될 상가 內 각양각색 점포들의 모습  © 彼我 >


남서울상가는 주로 완구나 문구, 체육용품 등을 취급하고, 영신상가는 한복과 이불, 커튼, 꽃, 인삼 등이 주요 품목이다. 삼구와 제일상가는 주단과 포목을 주로 판매하고, 로터리상가는 의류와 꽃, 잡화를 판매한다. 동남상가는 귀금속, 시계, 잡화를 주로 취급한다. 상가들을 차례로 둘러보며 점포를 살펴보니, 명확하게 경계가 나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가 별로 주요 취급품목의 특징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만 같다.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의 점포처럼 세련되고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는 아니지만, 차마 손대기 어려운 느낌이 아닌 쉽게 손이 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게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이 참 슬프게 다가온다. 어떤 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공간을 지켜온 이 상가들의 모습을 추억하고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기록을 위한 현장답사는 늘 호기심과 즐거움만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다. 마을기록의 주제가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은 늘 쓸쓸함이란 배경 위에 서 있다. 세월의 흐름과 이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로 인해 견디지 못하고 시간과 함께 스러져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현장답사를 하는 내내 마음 속엔 우웅우웅하는 알 수 없는 떨림같은 레퀴엠이 들려오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레퀴엠'은 늘 허전하고 아프다.



그리고... 현장답사를 마친 며칠 후, 혼자서 영등포전통시장을 다시 찾았다.


< 영등포전통시장의 각 상가로 통하는 출입구 및 동문·서문·남문의 모습 © 彼我 >


문득 첫 현장답사 때 전통시장의 각 출구가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입구를 제대로 표시해놓은 지도를 본 적이 없다고 모두 함께 대화를 나눈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다면 너무 슬픈 일이 될 것만 같았다. 지도앱을 이용해 남서울·영신·제일·삼구·로터리·동남상가로 통하는 상가 통로 출구까지 위치를 파악해본다. 그리고 영등포전통시장의 북문을 시작으로 서문과 동문을 거쳐 남문까지 걸어본다. 우리의 마을기록에 남기고 기억하기 위한 영등포전통시장 현장답사의 마지막 일정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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