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나도 마을기록가] ⑰ 실습6_인터뷰
오전 9시 반.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오늘은 마을기록 프로젝트를 위한 인터뷰가 있는 날이다. 약속시간이 꽤 넉넉하게 남은데다가 가을아침이라 선선하니 딱 걷기 좋은 날씨였기에 산책삼아 걷기로 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어느 새 영일시장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이제는 보게 되면 반갑고 못보면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든(?) 대선제분 영등포공장이 고개를 내민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올라와 있는 새 건물을 보니 대선제분이 Provoke Seoul로 바뀔 날도 머지 않았구나 싶다.
오전 9시 50분. 약속장소인 영등포역 2번 출구 앞에 약속시간에 딱 맞춰 일등으로 도착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서성이다 보니 어느 샌가 하나 둘 반가운 사람들의 익숙한 실루엣이 모여든다. 그러고보니, 영등포역 2번 출구는 영등포역의 뒷면을 향해 있구나 싶다. 영등포역 앞에 서면 바로 보이는 롯데와 신세계 백화점, 타임스퀘어 건물이 있는 쪽과는 달리 이곳은 영등포역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이상하게 발걸음을 할 일이 거의 없는 듯하다.
잠시 후,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기로 한 <다시함께상담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우리를 마중나와주셨다. 아무래도 좁은 골목 사이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우리가 헤맬까봐 염려되어 데리러 오셨다고 한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씨부터 일반인들과는 다르다!!!
2003년에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개소한 <다시함께상담센터>는 성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자활을 지원하는 동시에, 성매매를 예방·축소·감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우리의 이번 마을기록 프로젝트 범위인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구역 안에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가 포함되어 있는 관계로 이곳의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다시함께상담센터의 '영등포 현장지원팀' 선생님들께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이번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우선 센터와 영등포 현장지원팀에 대한 소개 그리고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가 처한 상황에 대해 현장지원팀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1945년 해방 이후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6‧25 이후 미군기지 캠프를 중심으로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미군 철수 후, 성 매수자가 미군 대신 내국인으로 대체되고 1980년대에 야간통행금지 해제 조치가 성매매 집결지의 활성화에 일조하게 되었다고. 뿐만 아니라,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정비사업에 나서면서 네덜란드의 성매매 집결지를 모방해 커다란 유리창을 갖춘 ‘유리방’이 등장 후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니, 이것은 정부의 암묵적 동조인가 아니면 방임인 것인가...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모를 배신감(?)에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서울의 다른 집결지들이 폐쇄되면서 업주와 함께 영등포로 넘어오는 성매매 여성들이 늘어난데다가 코로나- 19 확산 상황에서도 한 번도 영업이 중단된 적이 없다는 설명을 듣다보니 그저 놀라움에 입이 벌어지고 만다. 그럼 지난 번 현장답사에서 본 '코로나-19로 인한 무기한 영업 중단 안내문'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얘기일까? 황당함에 멍하니 있던 우리에게 현장지원팀장님의 부연 설명이 날아든다. 업주들이 암암리에 단속의 감시를 피해 불이 꺼진 영업장 뒷문을 통해 몰래 영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20분간 이어진 팀장님의 현황 설명이 끝난 후, 아까 우리를 마중나왔던 사회복지사 선생님 두 분과 함께 성매매 집결지 현장 라운딩을 나가기로 했다. 현장을 직접 걸으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밀착 인터뷰의 기회였다. 영등포는 다른 지역의 집결지와 달리 유리방‧휘파리 골목‧쪽방 형태로 나뉜다. 20~30대는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여성을 전시하는 유리방, 30~50대는 여성이 직접 또는 펨프(성매매 알선자)를 통해 호객행위를 하는 휘파리 골목, 60~70대는 쪽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연령이 높아질수록 유리방에서 휘파리 골목, 다시 쪽방으로 넘어가는 구조라고 한다. 지난 번 현장답사 때 본 곳은 모두 통유리창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의 유리방이었던 것.
오전이라 영업시간 전이어서 그런지 거리와 골목이 모두 지나가는 사람 없이 한산하기만 했다. 쪽방을 지나 휘파리 골목으로 접어든 순간, 무심코 현장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드는데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황급히 다가와서 사진 촬영은 안하는 게 좋다고 귀띔을 해주신다. 선생님의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골목 곳곳에 CCTV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업주가 내외부 감시용으로 달아놓은 것이어서 누군가 자신들의 업소를 찍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경우 밖으로 나와 따지는 일도 많으니 조심해야 한단다.
이곳의 여성들은 낮밤이 바뀐 상태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데다가 오랜 기간에 걸친 성매매로 인해 각종 정신적‧신체적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음에도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업주가 이처럼 직접 또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수시로 감시하면서 각종 명목으로 불법채무를 강제하는 것도 모자라, 성매매를 그만두더라도 찾아가서 보복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기 때문에 본인이 벗어나고 싶은 의지가 있더라도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이 여성들에게 과연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인권이란 게 있는 것일까?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이 순간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듯했다.
신세계 백화점과 타임스퀘어 뒷편으로 들어서자 지난 번 현장답사 때 보았던 유리방 일대가 나타난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유리창에는 모두 짙은 붉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이 좁은 골목에 이 많은 업소들이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통유리창 바로 윗면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에어컨 실외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담담한 한 마디가 날아든다.
"저 많은 에어컨 실외기 갯수 만큼이 업소의 영업용 방 갯수라고 할 수 있지요."
30분 정도 집결지 현장을 둘러보고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센터의 현장지원팀 사무실로 돌아왔다. 회의실로 들어서는 입구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여러 장 붙은 작은 게시판이 보인다. 센터에서 상담이나 지원을 받은 집결지의 여성들이 센터에 관해 써놓은 짤막한 문구였다. 그들에게 있어 이곳은 다시함께상담센터가 아닌 <나비상담소>라고 한다. '나는 비상한다'는 말의 축약어인 '나비'. 언젠가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는 나비가 되기를 소망하는 그들을 위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현장 라운딩 전에 센터 소개와 집결지 현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신 덕에 인터뷰 때는 주로 재개발과 관련된 집결지 이슈와 집결지 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센터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전에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해 센터에 공유했던 것이 인터뷰 시간을 단축하고 양질의 답변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공공주택사업으로 이주가 예정된 쪽방과 달리, 유리방과 휘파리 골목은 민간주도 재개발 지역이기 때문에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이나 지원은 전혀 없다고 한다. 2020년 11월 영등포구 도시계획과에서 개최한 주민설명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의 45%에 해당하는 50개동이 성매매 업소 및 성매매관련 시설인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그럼에도 용적률이 기존 461%에서 최고 700%까지 상향되면서 최고 44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 6개동을 짓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성매매 집결지의 업주나 건물 및 토지 소유주에게 돌아가는 보상 이익이 막대해진 상황이다.
게다가 성매매 알선은 불법행위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 업주들이나 이들에게 토지와 건물을 제공한 건물 및 토지 소유주들에게 법적 제재가 가해진 적은 없다는 것이 암울한 현실이다.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업주들에게 토지와 건물을 제공한 건물 및 토지 소유주 50인을 일괄 고발함으로써 피고발인 조사가 진행 중인 상태라고 한다. 법적 책임을 물어서 그동안 이들이 성매매 알선을 통해 얻은 불법수익을 전부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더 이상의 불법행위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성 착취 피해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는 팀장님의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집결지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성매매 자체가 강압적인 성 착취 경험이자 피해이기 때문에, 탈 성매매는 그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센터에서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담 및 법률‧의료‧심리적 측면에서의 지원은 물론, 양말 제조과정에서 버려지는 천 조각을 재활용해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들며 일자리 경험과 함께 일상생활에 적응하도록 돕는 사부작 공방, 각종 직업훈련 교육 및 일자리 연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회의실이 바로 사부작 공방이 이뤄지는 곳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앉은 의자의 방석부터 회의실 벽면 두곳의 책장에 가득 쌓여 있는 공예품들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공예품을 자세히 바라보니 작품 종류도 다양하고 실력도 수준급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부작 공방은 아주 적은 돈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공예품을 만들어 돈을 벌어보는 경험도 하고, 이곳에서 센터 선생님들이나 다른 여성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평범한 일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목적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라고 한다. 이렇게 손재주가 많은 평범한 여성들이 작고 좁은 공간에 갇혀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채 착취를 당하는 현실이라니...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생각에 가장 큰 파문을 일으켰던 단어는 바로 '편견'이었다.
어쩌면 나도 대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시선으로 집결지의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 번쯤은 그들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빠져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지옥에 갇힌 그들을 제대로 된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는 없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지독한 오만과 그들의 자의로 일어난 일일 것이라는 그릇된 편견으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해온 이들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을기록 활동가로서 오늘의 이곳을 오늘의 그들을 어떻게 기록해야만 하는가? 몰랐으면 모를까, 진실을 알게 된 오늘 - 또는 외면해온 진실에 다시 눈을 뜬 오늘 -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더이상 외면의 길을 택할 수는 없다. 센터의 현장지원팀장님과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담담하지만 울림있는 조언이 닫힌 나의 눈을 뜨게 했기 때문이다.
영등포역 인근에 성매매 집결지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감춘다고 감춰지지 않으며, 다른 지역으로 내몰거나 없애버린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서 '잘못된 여성 성 착취의 현장'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마치 세계대전을 일으킨 역사의 과오를 수십년에 걸쳐서 사죄하고 반성함으로써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독일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된 기록과 교육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 따라서 마을기록 활동가로서 부정적이고 잘못된 지역 현장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기록을 남겨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만큼 중요한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첫 번째 마을기록 인터뷰.
일정관계 상 이번 프로젝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인터뷰가 되었지만, 그 어느 인터뷰보다도 알차고 의미있고 소중한 경험이자 기회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특히 인터뷰 전에 인터뷰 대상에게 공유할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며 사전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된다는 사실!
비록 올해는 한 건이지만, 앞으로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도 깊은 인터뷰를 진행해보고 싶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과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은 물론,
그 인터뷰 내용을 읽게 될 모든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인터뷰.
마을기록공방의 일원으로서, 마을기록 활동가로서 내가 지향하는 인터뷰의 방향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