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휴대폰이 버벅인다.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원인이야 뻔하다. 음식이 목구멍까지 차있으면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 마냥 휴대폰의 저장소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몸집 불어나는데는 장사가 없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맘에 드는 영상이 보이면 다운로드부터 해놓고, 날씨가 좋거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셔터부터 누르다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어느새 용량이 제법 쌓여있었다. 거기에 메모장 대신 인터넷 창을 띄워놓는 버릇까지 더해지다 보니 아무리 최신폰이라도 정신을 못 차릴 만 하다.
최신폰의 빠닥빠닥 함이 그리워 오랜만에 사진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갤러리에 들어가 한 장씩 사진을 넘기다보니 겨울을 앞두고 곡식 쌓아두는 것도 아닌데, 저장해두고 보지도 않을 사진과 영상을 참 바지런히도 모아뒀더라.
이런 사진은 대체 왜 찍어둔 걸까???
휴대폰을 몇 번을 옮겨 온건 지 모를 정도로 아득한 저 아래 사진부터, 아무리 봐도 기억나지 않는 그날의 기록들까지. 손바닥만 한 화면 안에는 수년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담겨져 있었다.
사진을 넘기다가 슬며시 미소 짓고, 그날 일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애써도 감조차 잡히지 않은 사진들도 여러 장 있다. 그럴 때면, 대체 이런 걸 왜 찍어놨는지 싶기도 하고, 진짜 내가 찍은 사진이 맞나, 혹여 다른 이가 셔터를 눌러둔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경험상 극히 드물다. 대개는 친한 지인에게 사진을 내밀면 그가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주고는 한다. 기억의 파편을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유용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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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손놀림으로 하나씩 불필요한 사진을 지워나간다. 거의 대부분은 음식이나 화창한 날의 풍경사진이다. 그 순간만큼은 오래도록 저장하고 싶은 기억일지 몰라도, 이런 것들은 대개 감정의 휘발성이 빠르다. 몇 달 뒤, 혹은 일 년쯤 지나고 다시 보면 블로그에 흔하게 떠돌아다니는 남의 사진만큼이나 감흥이 덜하다.
운치 있어보이지만, 이런 사진은 대개 자리만 차지하다가 용량이 부족할 때면 가장 먼저 삭제된다.
추억이 녹아있는 사진은 볼품없어 보여도 오랫동안, 휴대폰을 바꿔가면서도 살아남는다.
이렇듯 추억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마치, 냉장고를 뒤져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는 일처럼. 어떤 사진은 잘 숙성된 음식처럼 감칠맛 나는 감정을 선사한다. 감정의 잔여물이 가라앉은 뒤의 정갈함이랄까. 그러나 또 어떤 것들은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한번 끄집어 보지도 않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하기도 한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오래된 포도주통을 비워야 새것으로 채울 수 있다.’
휴대폰도, 냉장고도, 사람의 기억력도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오래되고, 불필요한 내용물을 한 번씩 비워줘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