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카밧진 지음 / 엄성수 옮김
그게 어디가 됐든 우리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곳과 제대로 연결되려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잠시, 그러니까 현재 순간이 충분히 인식될 정도의 신간만큼, 또 현재 순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시간만큼 멈춰야 한다. 그래야 현재 순간을 온전하게 볼 수 있으며, 그렇게 제대로 된 인식 속에 현재 순간을 붙잡음으로써 현재 순간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 속에 가둬, 우리가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또 우리가 두려워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여러 생각과 공상과 충동들에 휩싸인 채 지내게 된다.
즉, 현재 순간에 대한 인식과 깨어 있는 상태를 체계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이 바로 명상인 것이다.
명상은 그저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며, 또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 명상이란 또 좋든 싫든 당신 자신이 길 위에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이름의 길 말이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삶이라 불리는 이 길에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 길이 매 순간마다 늘 펼쳐진다는 사실과 또 지금 일어나는 일이 다음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당신은 명상할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어야 한다. 삶의 적절한 시기에, 그러니까 당신 자신의 음성과 가슴과 호흡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일 준비가 된 시점에 명상을 해야 한다. 다른 어딘가로 가야 할 필요도 없고 뭔가를 더 좋거나 다르게 만들 필요도 없이 그냥 당신 자신의 음성과 가슴과 호흡에 집중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각성하는 일과 자기 자신 및 세상과 조화롭게 사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탐구하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세상 속에서의 우리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살아가는 매 순간을 최대한 충실하게 누리는 일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연결감속에 존재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마음챙김이란 특정한 방식으로 주의를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개인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의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집중하다 보면 더 큰 알아차림과 명석함을 얻게 되고 매 순간의 현실을 보다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우리의 삶이 순간 속에서만 펼쳐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매 순간순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성장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나는 마음챙김을 간단히 의식 있는 삶을 사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체계적인 자기관찰, 자기탐구 그리고 사려 깊은 행동을 통해 완전한 당신 존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 실천적인 한 방법일 뿐이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는 좋은 방법은 잠시 '존재 모드'로 옮겨가는 것이다. .. 멈춤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은 모든 걸 멈추자마자 당신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건 더 단순해진다.
아직 살아 있어 바쁜 중에 '의도적으로 잠시 죽는' 순간들을 갖는다면, 당신은 현재를 위해 잠시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런 식으로 지금 '죽음으로써', 사실상 지금 더 활발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멈춤이 해주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명상의 경우 모든 상태가 특별한 상태이며, 모든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다.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는 걸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앞으로 크게 한 발 내디뎌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걸 만날 수 있다.
그저 '일어나고 있는 일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인 것이다.
호흡을 하다보면 설사 당신이 원한다 해도 호흡과 함께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반복해서 알게 된다. 많은 게 끼어들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집중력도 떨어뜨린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면서 우리의 마음은 마치 낡은 가방들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다락방처럼 어수선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큰 걸음이다.
마음챙김 수행이란 우리가 매 순간을 존재하는 일에 온전히 전념하는 것이다. '성과' 같은 건 없다. 그저 이 순간만 있을 뿐.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 이런 사실을 너무도 분명히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의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깨어 있는 날에만 동이 튼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 한다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루하루가 그리고 삶 전체가 부지불식간에 그냥 지나가버릴 것이다.
명상은 세상사를 분명히 보는 일이며, 세상사와의 관계에서 신중하게 당신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는 일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것이 모든 명상 수행의 핵심이다.
"파도를 멈출 수는 없어도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울 순 있다."
그러나 명상은 특정 방식으로 뭔가를 느끼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느끼는 그대로 느끼는 일이다.
명상은 그 무엇보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일이며, 또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일이다. 절대 다른 어딘가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이미 존재하는 곳에 그대로 있게 내버려두는 일인 것이다.
여기에 역설적인 면이 있다. 당신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위로부터 노력이 나오게 하고 그 노력이 소용 있을지 어떨지는 개의치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거나 또는 완벽하게 하기 위해 수행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모든 게 이미 완벽하며, 있는 그대로가 완벽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우리 자신에게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해) 수행을 한다.
인내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건 다른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어떤 것 하나 분리되어 따로 놀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절대적인 근본 원인이라는 건 없다.
또한 세상 모든 게 그 나름의 본성에 맞게 펼쳐진다는 걸 알게 되며, 우리의 삶 역시 그런 식으로 펼쳐지게 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또 아무리 고통스런 순간이라 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앉아 호흡을 하면서 매 순간 펼쳐지는 일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거기에 뭔가 보내지도 말고 자연스레 펼쳐지게 내버려두라. 그냥 지켜보고 호흡하면서 평온함을 느끼고 인내심 그 자체가 돼라.
'손에서 놓기'란 말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이다. 그것이 어떤 사상이나 물건이나 사건이든 아니면 특정 시간이나 관점 또는 욕망이든, 뭔가에 매달리는 걸 그만둔다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추구하거나 집착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서 현재 순간에 완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온함과 통찰력과 지혜가 생겨난다.
당신의 모든 판단을 유보해 '좋다' 또는 '나쁘다'로 평가하려 하지 않고, 대신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그런 상태야말로 진정한 평온함이요 진정한 자유이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그걸 평가하지 않는 마음자세를 연마한다는 의미이다. ...믿는 마음을 연마하는 것은 마음챙김 수행의 일부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믿을 만한 게 뭔지 금방 파악되지 않을 경우, 아마 평온함과 단순한 존재 속에 좀 더 오래 머물며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당신 자신으로부터 또 우주로부터 이런 선물들을 의무감 없이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하라.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당신 존재의 충만함과 당신의 가장 나은 자아, 당신의 열정, 당신의 활력, 당신의 영혼, 당신의 믿음, 당신의 열린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존재를 나누는 일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존재를 당신 자신은 물론 당신 가족 및 세상과 나누어라.
사려 깊고 사심 없는 너그러움의 힘은 이렇게 강력하다. 더없이 깊은 차원에서 볼 때, 베푸는 사람도 베풂을 받는 사람도 없다. 단지 우주 자체의 재배치가 있을 뿐이다.
약점 같아 보이는 것이 실은 당신의 강점이다. 또한 강점 같아 보이는 것이 실은 당신의 약점으로, 두려움을 덮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런 시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 심지어 당신 자신에게 아무리 설득력 있어 보여도, 결국 가식이나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느끼는 그대로 느끼고,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을 연마하면서 '오르고 내리는' 물결, '좋고 나쁜' 물결, '약하고 강한' 물결을 타라. 그러다 보면 그 모든 게 당신의 경험을 완전히 묘사하기엔 불충분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그런 충동들에 맞서고 내면 깊은 곳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자발적 단순함'을 행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내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오로지 그 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사마디를 경험하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호흡에 집중할 때 온갖 생각과 감정들, 외부 세계 등 다른 모든 것들 또한 사라진다. 사마디의 특징은 방해받지 않는 마음의 평화와 고요함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런 고요함을 맛보는 일은 아주 멋질 뿐 아니라 중독성까지 있다. 몰입과 더없는 행복으로 대변되는 마음 상태의 이런 평화와 단순함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다.
당신이 만일 살아가면서 장기간 꾸준히 명상 수행을 하고 싶다면, 말 그대로 당신 자신의 비전이 필요하다. 지속성도 있고 깊이고 있는 비전, 당신 스스로 믿는 당신 자신의 핵심에 근접한 비전, 당신 삶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비전, 당신 자신이 향하고 있는 방향에 대한 비전 말이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실제 자리에 앉아 조용히 당신의 삶에 대해 묵상하고 당신이 누구인지 또 삶의 여정에서 의미는 어디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명상은 우리가 미로 같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빠져나올 때 안내자 역할을 해준다. 가장 암담한 순간들에도 더없이 끔찍한 우리의 마음 상태와 외부 환경을 직시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명상은 또 우리에게 이런저런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도 상기시켜준다. 인간의 발전을 도와주는 안내인이자 빛나는 우리 자아에 이르게 해주는 지도인 것이다.
도와 다르마는 사물의 존재 방식, 즉 모든 존재와 비존재를 지배하는 법칙을 의미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이든 나빠 보이는 일이든, 이 세상 모든 일들은 근본적으로 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근본적인 조화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고 결정 내리는 법을 배우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때론 당신 자신이 길을 모른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예기치 못한 곳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혼이 담기고 사심 없는 당신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외적 에너지와 우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알아차림은 우리의 생각들을 담고 보존하는 용기에 가까우며,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현실로 보지 않고 그저 생각으로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해준다.
외부 세계의 유혹에 맞서 잠시 동안이나마 우리 자신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채우거나 행복하게 만들어줄 일을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거기에 앉아 단 몇 분이라도 좋으니 호흡에 집중해보라. 아무것도 찾지 말라. 꽃도 빛도 아름다운 경치도 찾지 말라. 뭔가의 장점들을 극찬하지도 말고 뭔가의 부적절한 점을 비난하지도 말라. '나는 지금 내면으로 들어가고 있어.' 이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 그저 앉아 있어라. 세상의 중심에 머물러라.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걸 단순화해 일단 호흡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느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당신 자신의 의식을 확대해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것, 그러니까 당신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인식, 충동 그리고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강의를 하다가 '품위'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그러니까 "품위를 보여주는 자세로 앉아요." 식으로 말할 경우, 모든 사람이 즉시 자세를 고쳐 몸을 더 똑바로 세워 앉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몸이 뻣뻣해지진 않는다. 얼굴 표정은 부드럽게 풀리고 어깨는 처지고 머리와 목 그리고 등은 편한 자세를 취한다. 척추는 골반으로부터 힘차게 뻗쳐 나온다.
앉아서 마음챙김 명상을 한다는 건 어떤 문제나 어려움들을 회피해 몰입이나 거부에 가까운 단절된 명상 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생각하는 걸 뛰어넘어 장시간 계속 관찰하면서 현재 순간을 지배하면서 당당히 고통이나 혼란 또는 상실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의미이다. 계속 앉은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에 신경 쓰면서 그저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앉아서 하는 명상을 끝낼 때는 부드럽고 조용한 벨소리를 써도 좋고 딱딱하고 큰 벨소리를 써도 좋다. 두 소리 모두 우리가 명상을 끝내는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것을 상기시키며, 또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는 점과 '금강경'에 나와 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도 매달리지 않는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라는 점도 상기시켜준다.
이런 의문들에 답을 하려 하지 말고, 그냥 현재 순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라. 바로 현재 순간에 대한 알아차림을 늘려라.
지금 이 순간을 믿어라. 당신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든,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떻든 그 순간을 잘 들여다보라. 그리고 끊임없이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서, 분석하거나 말을 하거나 평가하거나 비난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저 관찰하고 포용하고 마음을 열고 내버려두고 인정하면서 한 순간이 다음 순간으로 펼쳐지게 하라. 바로 지금 그렇게 하라. 오직 지금 이 걸음에, 지금 이 순간에.
명상을 하면서 마음의 눈과 몸 안에 산의 이미지를 품으면, 우선 우리가 왜 안장 있는지 그리고 또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무위의 영역에 머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새삼 되살리게 된다. 산은 본질적으로 변치 않는 존재와 평온함의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날씨를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삶의 날씨는 우리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갖고 마주하고 존중하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 알고 대해야 한다. 삶의 날씨를 이런 식으로 대할 경우, 우리는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은 침묵과 고요와 지혜를 알 수 있게 된다. 산은 우리에게 이런 걸 가르쳐주며,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더 많은 걸 가르쳐준다.
걸으면서 하는 명상에서 당신은 어떤 곳으로 각 위해 걷는 게 아니다. 대개 어떤 좁은 길에서 갔다 왔다 하거나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갈 곳이 없을 경우, 자신이 있는 곳에 존재하기가 더 쉽다. 어차피 계속 같은 길을 걷는 거라면, 굳이 다른 데로 가려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기서의 도전 과제는 당신이 매 순간 이 걸음, 이 호흡에 충실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누워서 명상을 하며 당신의 몸 전체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이다. 당신은 호흡을 하고 당신 피부 전체에 온기를 발산하면서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당신의 몸을 느낄 수 있다. 몸 전체가 호흡을 하고 몸 전체가 살아 있는 것이다. 몸 전체로 마음챙김 수행을 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몸 전체를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생명이 깃든 장소로 회복할 수 있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단순히 머릿속의 거주자가 아니라는 걸 상기할 수 있다.
자애 명상처럼 여러 특수한 명상 수행법들은 자기 자신 속에 비유적인 심장을 확대하고 활짝 열어주는 특정한 감정 상태들을 연마하기 위해 나온 명상 수행법들이다. 받아들임, 용서, 자애심, 너그러움, 믿음 등은 모두 의도적으로 심장 부위에 집중하고 심장 부위에 대해 계속 관심을 모일 때, 그리고 또 이런 감정들을 격식을 갖춘 명상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더 강화된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은 명상 수행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걸 알아볼 때, 그리고 또 의식을 가지고 그런 감정들을 만날 때도 강화된다.